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실감을 못하는 진리가 있다.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은 어려워도 부수거나 망가뜨리기는 참 쉽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을 성공하게 만드는 건 어려워도 실패하게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사업이나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로 부흥시키기가 어렵지 망하게 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이 IT강국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소비에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생산적인 IT 분야를 찾아보면 의외로 강국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 게임에서는 온라인 게임, 그 중에서도 MMORPG만 좀 강할 뿐 나머지인 FPS, 전략, 콘솔 게임 등에서는 모두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리니지나 카트라이더의 인기에 힘입은 게임은 많이 나와있지만 나머지 분야는 처참할 지경이다.

그런데 그나마 발전하고 있는 이런 온라인 게임조차 부작용에 대한 염려가 더 큰 탓인지 규제논의가 현실화되고 있다. 바로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 이용시간을 규제하자는 셧다운제이다.플레이 시간이 일정 시간 이상되면, 특히 저녁 시간에는 게임이 자동으로 중단되어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논란을 밎은 이 제도는 결국 모바일에서는 보류된 채로 16세 미만인 중학생 이하에만 적용되는 채로 통과되려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 못마땅했는지 19세 이하로 높이는 수정안이 등장했다. (출처)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셧다운제 적용 대상을 기존 16세에서 19세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안에 한나라당 의원 등 모두 31명의 서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현재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심야시각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포함한 청소년보호법에 합의해 4월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신 의원 측에서 셧다운제 적용 대상을 늘리는 수정안을 갑작스레 들고나온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셧다운제 적용 대상을 19세로 높이면 대학생들도 포함되게 된다. 셧다운제는 중학생 등 미성숙된 인격체의 게임 사용을 제한하는 것인데 19세면 이미 어른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신 의원측이 준비중인 수정안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모두 31명의 서명을 받은 상태로 상정 최소요건인 30명을 넘은 상태다.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수정안부터 찬반투표가 이뤄지고, 가결될 경우 원안과 함께 통과된다. 부결될 경우엔 원안에 대한 찬반 투표만 실시된다.

본래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신적 미성숙 연령인 16세- 중학생 이하의 나이로 했다. 그런데 민법상의 미성년자 나이인 19세 이하여야 형평성에 맞는다는 논리가 나온 것이다. 얼핏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 논리를 적용하면 심지어 대학교에 갓 들어간 1학년생조차 정신적 미성숙자로 분류되어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게 된다.



게임 셧다운제, 대학생에게도 적용해야 하나?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에 대해 언제부터 이렇게 보호에 애를 썼는지는 일단 접어두자. 이번 사안은 크게 두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로 미성년자의 인격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미성년자에 대해 지나칠 만큼 가혹하다. 학교에서 교칙에 의거해서 함부로 두발을 싹둑 자르고 길이를 규제하는가 하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말을 해도 곧잘 무시당한다. 논란은 있지만 체벌을 허용했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권을 포함한 인격을 매우 무시하는 압박이 있다.


게임 셧다운제 역시 어른 세대가 자식 세대의 정신적인 성숙이나 자제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시나 다름없다. 또한 정당한 교육이나 자상한 캠페인, 대체하는 유익한 취미, 놀이거리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의무는 포기한 채 그저 규제로 보이는 현상만 때려잡겠다는 의도다. 그럴 바에는 아예 모든 미성년자를 24시간 감시하며 공부만 시키는 기숙사에라도 넣으면 어떨까? 아마 그러고 싶은 부모도 많을 것 같다.

둘째로 게임산업이 위축될 것이 우려된다. 물론, 나는 청소년이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게임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게임만 못하게 하면 과연 청소년이 보호되는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게임에 몰입해서 다른 것을 하지 못할 정도라면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 무협지에도 빠질 수 있다. 그럼 만화책을 없애고 판타지 소설을 규제하며, 무협지에도 셧다운제를 도입할 것인가?

온라인 게임은 그나마 청소년들이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방시켜주는 곳이었다. 또한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e스포츠로서 재능있는 청소년들이 프로게이머로 성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 아마 셧다운제가 있었으면 프로게이머도 늦게 나왔을 것이고, 게임산업의 발전도 늦어졌을 것이다.


대학 초년생에게조차 적용하려는 게임 셧다운제는 이런 이유에서 보면 실효성도 적고 쓸데없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아주 잘 만든 법도 단숨에 게임산업을 발전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졸속으로 단숨에 통과시킨 법은 단숨에 게임산업을 파멸시킬 수 있다. 잘못되도록 하는 것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부디 남은 국회 처리과정에서 현명한 심사와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