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막 근대화에 돌입했을 때 그 발전모델로 삼은 나라는 어디였을까. 얼핏 생각하면 미국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구나 자원, 문화에서 미국은 우리와 너무도 다른 나라였기에 모델이 될 수 없었다.

한국이 모델로 삼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각종 문화나 경제여건에서 일본은 한국과 비슷했다. 단기간에 급성장을 해낸 점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는 경험이 투지도 불러일으켰다. 한국은 일본식 경제발전 모델을 써서 급속히 성장했다.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이 모두 일본의 기업이 걸었던 길을 모방하며 발전했다.



이 때문일까.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의 모든 것을 뛰어나다고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노력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유럽조차도 쉽게 따라갈 수 없다는 일본 하이테크 기업에 대고 이렇게 엄청난 자신감을 보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발전을 한단계 낮춰본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게 커나간 듯 해도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인데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의 성장에 대해서는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로 칭찬하는 것에 비하면 일부러 평가절하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흐름조차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슬슬 한국의 업체가 발전한 듯 하다. 세계에서도 최강으로 인정받는 삼성 반도체에 관한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출처)

니케이는 도시바가 칩 제작을 위해 삼성과 아웃소싱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도시바의 전략 변화는 자사로 하여금 오직 플래시 메모리에만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의 중역은 최근 파트너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신 LSI 칩들을 아웃소싱 생산할 계획을 확인해 준 바 있다. 이 칩들은 IBM과 공동개발한 것이다.
두 회사들은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는 직접적인 경쟁자들이지만, 도시바는 삼성의 기존 생산 능력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웃소싱으로 인해 도시바는 생산공장들과 장비 업그레이드와 관련된 경비들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시바는 최근 나가사키 소재 제작 공장들을 소니에게 5억9,900만 달러에 매각한 바 있다.


현재 세계 반도체는 뚜렷하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뉘어 있다. 우선 반도체의 설계와 디자인만 하고 생산은 다른 업체에게 위탁하는 펩리스 업체가 있다. 스마트폰에 많이 쓰이는 칩 업체인 영국의 ARM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외부에서 주문을 받아다가 오로지 생산만 해서 납품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있다. 대만의 TSMC란 파운드리 업체는 세계 최고 규모로서 오히려 생산을 맡기는 업체들에게 큰소리를 칠 정도다.



이런 전문화는 기본적으로 설계와 생산 업체 두 가지를 다 가지는 것은 낭비라는 판단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것만이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충분한 생산역량과 디자인 능력, 판매능력까지 갖춘 세계적 업체라면 굳이 한 가지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두 업체가 그런 부류에 속하니 바로 인텔과 삼성이다. 이 둘은 한쪽으로 가지 않고도 충분히 효율적인 운영을 할 능력이 있다.

이 가운데 삼성은 수율이 좋은 생산능력도 뛰어나 파운드리 업체로도 세계적인 업체가 되겠다고 이미 선언해놓은 상태다. 대만의 TSMC를 제외하면 삼성은 단연 최고 생산능력을 지녔기에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결국 반도체에서 오랜 라이벌이자 콧대높은 일본업체인 도시바까지 삼성에게 위탁생산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삼성 반도체, 생산능력으로 경쟁자를 압도하나?

도시바는 삼성보다 훨씬 앞서 반도체를 생산했으며 한때 미국업체를 제압했던 실력자다. 이런 도시바가 정면경쟁을 포기하고 삼성에게 플래시 메모리 이외의 반도체 생산을 위탁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깐깐한데다 불량이나 헛점을 용납하지 않는 일본업체가 보기에도 이미 삼성은 일본업체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능력으로 삼성을 앞서기 위해 따로 공장을 세우거나 해외업체를 이용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긴 애플 아이폰의 APU를 비롯해, 램 등을 맡아 생산하는 것도 삼성이다. 최고급 부품만 쓰기로 유명한 애플이 인정했을 정도면 다른 업체의 인정을 받는다는 게 필요없다. 그런만큼 도시바의 이번 뉴스는 삼성의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곧 세계의 파운드리 업체는 대만과 한국, 그 가운데서도 삼성이 양분해서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어떤 의미로는 아래쪽 위치인 하청업체라고 볼 수 있지만 경쟁업체가 제품을 위탁할 정도면 그냥 하청업체가 아니다. 이건 오히려 큰소리 떵떵 칠 수 있는 하청업체인 셈이다. 한때 삼성이 스승으로 삼고 배웠던 일본업체와의 바뀐 입장이 유독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