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한글날이었다. 그래서 나름 한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다지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를 부를 때도 벅차는 감동 같은 걸 느낀 적이 없다. 또한 TV에서 한국의 위상이 어쩌고 해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그저 월드컵 거리응원에 나가 기분에 휩싸여 응원하고, 한국이 이기면 어쩐지 기분이 좋은 정도다.

그러나 어떨때 나는 애국심이라고 말하기도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분노다. 반대로 내가 익숙하게 여기며 쓰는 어떤 것을 상대가 칭찬하면 기쁘다. 이것을 굳이 애국심이라고 한다면 나는 애국심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3용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려는 한국 개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대로 한번 한국을 무시한 적이 있다. 한국 소프트웨어 진흥원이 주최한 개발자 만남인데 이 자리에서 소니는 불친절하고 성의없는 개발조건을 들고 나온데다 고압적인 대답을 연발했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닷컴)
 
- 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게임완성도나 상품성이 낮으면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에는 진흥원에서 지원했던 자금을 100% 되돌려줘야 한다.
- 프로토타입 당시에 SCE에서도 개발툴킷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정식게임으로 출시되지 않더라도 그 게임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SCE가 갖는다. 물론 게임 소스코드도 SCE의 것이다.
- 첫번째 게임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져 후속작을 만들 경우에도 이후에 만드는 모든 시리즈물의 저작권은 SCE 소유다.
- 게임을 상용화하거나 패키지로 판매할 경우 우선적으로 SCEJ에서 투입한 자금을 먼저 회수하고 이후 수익금을 가지고서 개발사와 나눠 가진다. 개발사와 어떤 비율로 나눌지는 말할 수 없다.
- PS3에는 네트워크(온라인)에 특화된 기술이 많다. 하지만 아직 공개할 수 없다.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개발사는 PS3는 스팩이 뛰어난 차세대 게임기라는 것만 알고 만들면 된다.

이런 개발조건 외에도 소니는 <솔직히 한국의 기술력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해서 그 자리에 모인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체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까지 나오는 자리였었다. 당연히 국내 개발사들의 분위기는 썰렁했고, 이후 한참동안 PS3로는 제대로 된 한국게임도, 온라인 게임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엑스박스를 내놓은 MS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우리는 한국 개발사의 실력을 신뢰한다.>는 MS의 말은 소니의 행보와 대조되며 이후 한국 개발사의 온라인 게임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대조적인 대응과 결과는 단지 2006년만의 사건일까. 그건 아닌 듯 싶다. 한글날을 맞아서 본 오늘날의 스마트폰 회사 애플과 구글의 엇갈린 한글 행보는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구글에서 내놓은 뉴스를 보자. (출처: 한겨레신문)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은 지난 6일과 7일 미국 본사의 개발 책임자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한국어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를 잇달아 발표했다. 스마트폰에 대고 말을 하면, 그 내용을 문자로 바꿔 전자우편이나 문자메시지용으로 입력해주는 ‘음성인식 문자 입력’ 서비스다. 걷거나 운전하는 중엔 문자를 입력하기 힘든데, 말을 문자로 바꿔 보내므로 스마트폰에서 유용한 기능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영어에 이어 한국어가 두번째로 출시됐다는 점이다. 검색어를 모두 입력하기 전에 검색 결과를 미리 예측해서 보여주는 ‘순간 검색’ 기능도 함께 출시됐다. 영어·에스파냐어처럼 알파벳을 쓰는 언어를 빼고는 한국어가 처음이다.

다양한 언어로 전세계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구글한테 한국과 한국어는 결코 ‘특별한 시장’이 아니다. 아시아 지역만 치더라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우리보다 인구도 훨씬 많고 구글의 시장 점유율이 월등히 높은 나라도 여럿 있다. 그런데도, 한국 시장이 이처럼 특별대우를 받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쓰는 한글의 과학적 구조가 정보화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구글의 음성인식 연구를 총괄하는 마이크 슈스터 책임연구원은 “음성인식은 글로 쓰인 문장에서 발음을 자동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데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어는 발음 예측이 매우 힘들다”며 “한글의 경우엔 예외가 있긴 했지만 아주 쉬웠고, 과학적 구조도 음성인식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뤄진 덕에 간단한 한글 문장을 읽는 것을 배우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내가 배운 다양한 언어와 견줘, 읽기가 매우 쉬운 언어였다”고 덧붙였다.


시장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글이 워낙 우수하고 편하므로 영어 다음가는 순서라는 대우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특별히 애국심이 없는 나도 약간은 우쭐할 수 있었다. 한글날을 맞아 나온 좋은 뉴스였다. 구글은 한글을 특별히 대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본의 아니게 비교체험을 또 해보자. 이번에는 애플이 한글을 대하는 자세다. (출처: 재경일보) 9월자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가 지난 4월 출시된 이후 5개월 만에 정식으로 한글을 지원한다. 그동안 아이패드에서 한글을 사용하려면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거나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애플이 16일 발표한 아이패드용 새로운 운용체계(OS) iOS 4.2의 베타버전에서 지원하는 30개 언어 중에 한국어가 포함됐다. iOS4.2 베타버전을 아이패드에 설치하고 언어를 지정하면 한글 메뉴와 한글 키보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이에따라 아이패드의 국내 출시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는 아이패드의 출시지연의 이유로 글로벌 판매호조로 인한 수급의 어려움과 함께 더디게 진행된 한글화 작업 등을 꼽아 왔다.
한편 OS는 오는 11월 배포될 iOS4.2 버전의 베타판으로 개발자 전용으로 한글 지원 외에도 게임센터가 신설되고 멀티태스킹, 폴더 기능, 에어프린트 기능 등이 추가됐다.

애플은 이제 애플 제품을 팔 만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아이패드를 출시한 가운데, 중국보다 늦게 한국에서 출시할 것 같다. 물량이 한창 달릴 때는 전혀 기약도 없었다. 이제는 살 사람은 대충 다 사고, 물량이 남아돌면서, 아이패드2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자 재고처리(?)라는  의혹까지 받는 시점에서 정식 한글입력을 지원하며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구글이 한글의 우수성 때문에 한글을 특별히 대우해 준 것과 애플이 시장규모도 적고, 또 여러 가지 짐작도 못할 이유로 한글을 맨 나중에 지원하는 것은 분명한 극과 극의 차이로 보인다. 구글이 그냥 한국에 인심써 준것이고 애플처럼 한국 정도는 맨 나중에 놓는게 당연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제일 먼저 익히고 말하는 언어인 한글과 그 모국인 한국이 좋은 대우를 받으면 기쁘고, 푸대접을 받으면 화가 난다. 아이패드를 한국에서 쓰는 사람 가운데는 모국어가 영어이거나, 까짓거 영어를 쓰면 되지 뭘 그리 한국어에 집착하냐고 말하는 유창한 언어능력자들도 많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세종대왕님께서 만든 한글 외에는 그리 유창하지 못한 사람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애플과 구글, 한글을 대하는 서로 다른 자세가 보인다.


애플의 한글 경시는 이번 한번이 아니다.
매킨토시에도 쓰이는 애플의 정식 한글 폰트는 매우 다양성이 떨어진다. 애플 고딕이라는 가독성도 떨어지는 폰트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 아이패드에서도 Pages를 통해 다양한 한글 폰트로 아름다움 문서를 만들어놓아도 워드파일이나 PDF로 변환만 하면 그냥 애플고딕으로 변해 버린다고 한다. 아이폰에서는 탈옥을 통해 사용자가 애플고딕에서 나눔고딕으로 바꾸는 방법까지 소개될 정도이다.


아시아권의 2바이트 언어가 애플에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풍부하고 다양한 영문폰트와 대조적으로 빈약한 애플의 한글폰트를 알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위에서 든 구글의 예처럼 혁신기업 애플도 한글이란 좋은 문자가 가져다 주는 인류의 혁신에 좀 더 주목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한글을 영어 다음으로 취급해서 지원해준다면 좋지 않을까?


이봐요! 스티브 잡스씨, 부탁 좀 합시다! 애플이 굳이 한국기업이길 바라지는 않아요. 다만 당신도 한글 좀 공부해 보세요! 구글 개발자는 하루 만에 배웠다잖아요? 한글은 쓰는 사람도 적고 시장도 작다고요? 그건 어느 회사나 하는 뻔한 대답이잖아요? 우리 좀 다르게 생각합시다! Think Differ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