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드디어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그동안 여러 기회를 자꾸 놓치다가 드디어 쓰게 된 애플 제품인데 여러가지로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었다. 겨우 며칠이지만 그동안 내가 주위에서 들어오던 애플의 장점을 체험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기기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다. 나는 아이패드가 마음에 들면 제품을 잘 사용하는 것 뿐이지, 이것 때문에 애플이나 잡스를 찬양하거나 변호해줄 생각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애플 제품 좀 써보면서 비판하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이제부터 실컷 쓸 테지만 내 생각이 변할 가능성은 없을 듯 싶다.

얼마전 아이폰4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왔다. 기다리던 제품인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벌써 40차를 넘어 예약자가 나오고 아이폰은 통합 100만대가 넘는 보급대수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가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뛰어난 기술 덕분이라고 나는 분명히 인정한다.


솔직히 아이폰이 우수하다느니 하며 푹 빠진 사람 가운데 많은 경우는 터치스크린 기기와 휴대용 정보단말기기를 처음 접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애플 제품만의 특징과, 터치스크린을 가진 계보의 기기들이 가진 공통점조차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2001년에,  3com의 팜파일럿-애플이 개발한 뉴턴에서 파생된 기기를 통해 터치스크린 을 통한 정보 단말기인 PDA를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그게 뭐냐. 인터넷은 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답해주는 일도 많았다.
이후 카메라가 내장된 마그네슘 몸체와 컬러스크린을 가진 소니 클리에를 거쳐 HP의 TC1000이란 타블렛PC를 썼다. 이후 소니의 UX시리즈를 거쳐 지금은 라온의 베가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패드를 쓴다.
하드웨어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기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지 잘 알 것이다. 터치스크린과 휴대용이다. 즉 나는 10년동안 감압식일 망정, 한번도 터치스크린을 갖춘 휴대용 정보 기기 아닌 것을 써본 적이 없다. 접을 수 있는 4단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며 글도 쓰고 인터넷도 했다. 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새삼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 그냥 좀더 진화된 애플의 터치 스크린 기기일 뿐이다

또한 나는 리눅스를 3년째 쓰고 있기도 하다. 바이러스 없는 쾌적한 환경이나 보안에 강한 환경 같은 것도 매우 잘 알고 있다. 맥 OS X에도 관심이 많으며 익숙한 편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이폰4의 수신문제다. 데스그립 논란으로 인해 수신바가 떨어지는 시각적 문제는 제외하고라도 실제 통화가 끊긴다든가, 전화 자체가 오지 않는다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의 불만과 일부 블로거들의 체험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몇몇 매체에서 기사가 나갔다.

나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이것이 아이폰4의 하드웨어 문제일 가능성보다는 KT의 기지국 통화품질이라든가, 아이폰과의 하드웨어적 조절이 부족했다든가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폰4 자체의 결함이라든가 기기 불량일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런 냉정한 판단과 별개로 예상했던 대로 인터넷과 블로그스피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반대편을 모 그룹 직원이라느니, 신원이 확인이 안되어 믿을 수 없다느니, 심지어 매수된 알바라고 매도하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애플과 아이폰의 우수성과 편의성을 찬양하며, 동시에 반대편에 선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를 평가절하하고, 상관도 없는 정치적 문제를 끌어들여 욕한다. 거기에는 일체의 예의를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에는 딱 두가지 부류가 있는데 겉으로 직접 욕을 하는 부류와 빙빙 돌려서 상대에 대한 비난을 하는 부류다.

아이폰4 문제보다 심각한 건 사회적 수신불량이다.

냉정하게 말해 그 어떤 기기든 그저 인간을 편하게 하고 사람 사이를 이어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제품이 너무도 좋아서 감정을 이입하고 아껴주는 건 좋지만 제품 때문에 사람을 불신하고, 서로를 욕하는 건 말도 안된다. 마치 수신불량처럼 서로가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해서는 어떤 발전도 없다.

프랑스의 한 여배우는 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두 야만인이며 그런 나라는 야만국가라고 말했다. 개는 분명 사랑스럽겠지만 도대체 개 때문에 사람과 문화를 모욕한다는 게 제대로 된 것일까? 한국에서 수차례 대화를 시도한 그 여배우는 한 마디로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개는 먹으면 안되며 개를 먹는 행위를 중지해야 될 뿐이다.


지금 아이폰4와 애플을 노골적으로 감싸는 <일부 극렬한 애플 팬보이>들의 행태도 결국 저 여배우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조건 애플은 잘했고 아이폰4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모그룹의 알바거나 애플을 미워하는 사람일 뿐이다. 수신불량을 호소하는 사람 대부분은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은 불순한 무리들이며, 언론은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꼭두각시다.


미국에는 흔히 음모이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UFO가 실재하는데 미국 정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이것을 숨기고 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는 살아있고, 세계를 움직이는 건 프리메이슨이다. 히틀러는 살아서 아직도 세계정복의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컴퓨터는 악마의 도구다. 하나님을 믿지않는 우매한 대중은 곧 이마에 악마의 숫자 666의 바코드가 찍혀 사탄의 제물이 된다. 이런 사람들의 믿음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다. 자기 믿음만 옳고 남은 무조건 틀리거나 사악한 의도를 가진 무리들이다.

아이폰4를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이렇게 분명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모조리 음모로 몰아붙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무조건 애플을 비판하는 모든 것이 모 그룹의 음모라는 데야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예 애플을 시기한 외계인의 음모라고 하면 좀 더 현실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곧 취직조차 못해본 직원이나 뒷 돈을 받은 블로거로 간주할 게 분명하다.


광우병을 둘러싸고 벌어진 촛불집회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에는 분명히 배후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들이 전부 순수하게 모였다는 걸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이 전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단체에 세뇌되어 움직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고생과 여중생과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들까지도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아이폰4의 수신결함 따위>가 아니다. 그거야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가? 있으면 있는대로 곧 기술이 해결해줄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든 진실이 밝혀질 텐데 말이다. 중요한 건 이런 도구와 물질이 정작 중요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다는 점이다. 아이폰4의 수신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어도 그때문에 닫힌 사람들 사이의 상처와 반목은 쉽게 해결될 수가 없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 대화도 해본 일 없는 사람끼리 <나는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불신과 단절을 선언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인터넷과 정보기기가 사람을 보다 가깝게 하고 인간답게 만들거라는 예측은 결국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에서나 가능한 건가?


나는 아이폰4 문제보다 이런 사회적 소통 불량이 하루속히 치유되고 해결되었으면 한다.

인간이 정보기기에 휘둘리지 않고, 정보기기를 이용해 서로의 정감을 나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애플이든 다른 회사든 결국 이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돈 말고도 말이다.
이것은 IT블로거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네티즌과 사람으로서의 소망이다.
우리가 서로 조금씩만 서로를 믿어주면 해결될 일이다. 도구는 결국 도구일 뿐이다.
나는 도구보다 인간을 믿는 사회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