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느 대학의 마케팅 개론 과목에서 담당교수가 늘 내놓는 시험문제는 똑같았다. <마케팅이란 무엇인가?>란 것이었다. 그래서 늘 이 과목을 듣는 학생들은 그 항목에 대한 시험대비만 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시험시간에 담당교수가 문제를 내는데 <도...> 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전혀 다른 문제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가슴이 철렁했다. 자칫하면 준비해온 모든 답이 허사가 될 판이었다.
그러나 막상 교수가 낸 문제를 본 모두는 안심했다.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도 내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한 가지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를 성공적으로 규정할 수 있으면 그걸로 모든 것은 거의 파악된 것이다.

많은 경영자와 언론에서 궁금해하고 있는 애플이란 회사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가를 성공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면 애플에 관해서는 어떤 의문도 전부 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애플이란 회사에 대해 한번 파고들어 보자.


애플은 도대체 어떤 회사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애플의 모든 특징을 단 두 가지로 압축해 보았다. 잡스의 애플이 가진 놀라운 특징 두 가지는?

1. 애플은 하나의 거대한 목적을 지향하는 단체다.

아시다시피 저는 시장점유율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만들 방법을 강구하고, 거기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시장점유율 또한 높아질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 1999년 3월, 채널 아시아와의 인터뷰 중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애플의 정신은 <회사>에 맞지 않는다.
본래 회사란 이윤창출과 영속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체다. 그런데 차고에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애플이란 회사는 이윤창출을 최우선으로 놓지 않았다. 공동창업자 가운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저 자기가 만든 컴퓨터를 널리 퍼뜨리고 싶었을 뿐이고, 스티브 잡스는 이것으로 세상을 바꾸고 자기 이름을 널리 알리려 했다. 돈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단지 또 한사람인 투자자 마이크 마큘라는 이윤창출의 가능성을 크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후 애플 이사회에 몸담으면서 애플을 회사로서 발전시키려 애썼다. 특정인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한 <회사> 말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이에 맹렬히 반발했다. 가장 주도적으로 애플을 만든 잡스의 생각에 애플이란 회사는 <혁신>이란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집단일 뿐이다. 그것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회사였을 뿐이지, 이윤추구에 집착하는 회사의 목적 때문에 혁신이라는 본래 목적이 덮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매킨토시 출시에 즈음해서 벌어진 애플의 권력다툼은 결국 이것이 문제였다. 애플이 진정한 의미의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윤추구를 위해 혁신이란 목적도 버릴 수 있고, 잡스란 개인이 없어도 상관없어야 했다. 그것이 본래 조직의 생리다. 때문에 애플은 잡스를 버렸다.


이에 잡스는 애플을 박차고 나가서 자신의 목적을 구현해줄 또 하나의 회사이자 단체인 넥스트를 설립했다. 넥스트는 목적에 충실해서 수많은 진보와 혁신을 이뤄냈지만 시장에서는 처참히 실패했다. 그래서 이윤 때문에 목적을 상실해버린 애플과 목적 때문에 이윤을 내지 못한 넥스트의 결합은 나름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다시 잡스의 마법이 빛을 발했고 애플은 회생했다.

우리의 경쟁업체인 게이트웨이, 델, 그리고 컴팩은 실제로는 유통위주의 회사입니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기술을 가지고 아시아에서 물건을 만들어 와서 판매를 합니다. 그들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유통모델과 물류의 효율성입니다.
그들은 창조를 하지 않습니다. 이 업계에서 혁신의 속도는 엄청나게 느려졌고, 멈추기까지 했습니다. (중략) 애플은 업계에서 전체에 대해, 즉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마케팅에 대해 구상을 하는 유일한 회사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애플이 가진 주요한 전략적 무기입니다.
     - 스티브 잡스, 타임지, 1999년 10월 18일.


그러니까 잡스가 다시 만든 현재의 애플은 혁신이란 목적을 향해 달리는 단체다.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면 하지만, 만일 둘 중에 선택이 필요하면 실패 가능성이 커도 개발해서 제품을 내놓는다. 다른 회사 같으면 당장 돈도 안되고, 기술 개발비만 엄청나게 들어갈 바보같은 짓이지만 애플은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애플의 명백한 설립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애플이 다른 회사와 명백히 다른 점이며 그들을 굳이 회사로만 부를 수 없는 중요한 이유다. 애플은 돈이 된다고 해서 아무런 혁신성도 없는 물건에 함부로 애플 로고를 찍어 내놓지 않는다.

넷북이 유행처럼 번질 때도 애플은 아톰 플랫폼과 저가 제품에 의존한 넷북 제조를 거부했고 대신 넷북 사용자의 웹서핑 등 가벼운 용도를 위한 아이패드를 내놓아 크게 성공하며 시장구조를 바꾸어가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자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곳을 <자선단체>라고 부르지, <자선기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윤을 추구가 최고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 역시 엄밀히 따지면 <혁신기업>보다는 <혁신단체>에 가깝다.


2. 애플은 목적을 위해 모든 비효율을 배제한다.

흔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놓는다. 여러 사람이 평등하게 토론하고 지혜를 모아서는 다수결로 결정하면 가장 합리적이고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임을 믿는다. 혼자의 생각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민주적인 방식을 쓰면 적어도 최악의 판단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의 회사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다. 조직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으면 사장이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리지만 그 중간 과정에는 시행착오를 피하기 위한 토론과 투표, 의견수렴 시스템이 있으며, 과학적인 시장조사와 통계자료가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런 민주적 절차는 최악의 결정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뒤로 수많은 비효율이란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


애플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매우 비밀주의적이고 폐쇄적이다. 실질적으로 애플의 결정권과 지휘권은 오직 한 사람에게 있으니 바로 스티브 잡스다. 그가 반대하면 어떤 일도 허락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가 하라고 하면 어떤 것도 더 이상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애플의 문화는 대립적이고 직접적이며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시끄럽고 거칠다. ‘고함 문화’라고 이 회사의 스타인 한 젊은 프로그래머는 말한다.
애플에는 한쪽에는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 다른 쪽에는 관리부라는 2개의 큰 라인이 존재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직원 3만4천 명이 있는 제국은 4명에서 25명으로 만들어진 팀들로 구성됐으며, 그 팀은 팀장이 지배한다. 그 위에 CEO와 부회장,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있고, 이 작은 평행 우주에는 이사회와 자신들의 요구를 표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몇몇 고객과 계약 파트너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잡스가 군림한다.

애플은 미팅이 많은 회사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회의가 열리지만 결정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집으로 돌아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는 법을 배웠고, 수년 동안 천재라는 소리만 들어왔다. 그 때문에 그는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나서 어제 시행을 결심했던 프로젝트를 중단해버릴 수 있다. “잡스가 무대 위에 올라가 추종자들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소보타는 말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0년 7월호.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시스템이다. 단지 명령체제가 매우 간결하게 일원화되어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스티브 잡스 혼자를 위한 것이다. 즉 스티브 잡스가 두뇌이고 나머지는 수족에 불과하다. 애플이란 회사 전체는 잡스란 두뇌를 위해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여주는 최적화된 팔다리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 불만을 품거나 반항하면? 해고만 남는다. 회사의 민주화나 노동조합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애플은 직원이 3만 5천명이 넘지만 여전히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이며, 아마 직원이 10만명이 넘는다고 해도 똑같을 것이다. 회사 내의 기밀을 함부로 흘리거나, 실수로 누출시켜도 가차없이 해고당한다. 하긴 아무 잘못도 없이 그냥 스티브 잡스와 엘리베이터만 잘못 타도 해고지만 그렇다고 법정에서 싸워서 이길 가능성도 없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 엄수 서약에 서명한다. 이 서약은 그들이 애플을 그만둔 뒤에도 몇 년간 계속 유효하다. 잡스가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고, 애플은 소송에서 이겼다. 심지어 애플 직원들은 간행물마저 금지당했다. 그들은 자신의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들 자신도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제품 분야는 코드와 숫자와 알파벳이 부여돼 있다. 핵심 엔지니어조차 코드만을 알고 있고, 제품이 완성됐다 할지라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들은 설계 도면은 알지만 디자인을 알지 못한다
쿠퍼티노의 캠퍼스는 최고 보안 구역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일하는 건물만의 코드 카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예외는 스티브 잡스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언제나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를 제지하는 경비원이 있으면 그 경비원이 해고될 뿐이다.

젊은 프로그래머 마이클 모어(가명)는 말한다. “잘나갈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우리가 두 번 연속 실패작을 내고, 스티브가 세상을 떠나면 금방 그렇게 될 걸요.”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애플에 관해서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침묵 서약을 깨는 사람은 바로 해고됩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고 다시는 고용되지 않아요. 그리고 애플의 변호사들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젊은 프로그래머가 묘사하는 회사는 불공평하고 거칠며, 때로는 목적 없이 떠돌다가 다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엄격하지만 동시에 창조적이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0년 7월호.


즉 애플은 매우 활력과 창의성이 넘치는 하부구조와 함께 잡스란 일인독재 체제란 매우 경직된 상부구조를 동시에 가진 모순적인 회사이며 그것이 바로 독특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나오게 한다.
애플이 이런 구조를 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목적을 위해 모든 비효율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결정과 목적설정, 반성과 수정같이 모든 전략과 전술적 판단은 잡스가 한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그저 개발과 마케팅 같은 행동을 위해 최적화하면 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의 민주적 운영이나 의견수렴기구 같은 건 거추장스러운 요소일 뿐이다.


오늘날 애플이 보여주는 경이적인 혁신과 다른 회사들이 따라갈 수 없는 기민함은 모두 이 두 가지 점에서 나온다. 철저한 목적지향이라는 기업 철학과 그 철학에 맞게 일체의 비효율과 낭비를 배제한다. 그리고는 잡스 한 명의 구상과 결단에서 나온 것을 철저히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과 자금을 집중시킨다. 애플 기적의 원동력은 결국 여기에 있다.

과연 이것을 다른 기업들이 따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도 잡스 같는 타입의 천재가 한 명 더 나와서 기업을 만들고 지휘한다면 가능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무턱대고 애플이 되자고 하며, 제 2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자는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