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란진영은 어느 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건물인 미사일 터렛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야심차게 내놓은 미사일 터렛4의 핵심기능인 적위치 수신기능에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이전부터 건설하던 중간에 프로토스 옵져버 등이 미사일 터렛 안쪽에 숨어들면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버그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특정한 한 점에 적 유닛이 위치하게 되면 미사일이 나가다 말고 끊기게 된 것이다.

결함을 알아낸 테란은 그 원인을 추궁했다. 그들은 처음 미사일터렛을 짓기 위해 필요한 건물인 엔지니어링 베이에게 책임을 묻는다. 새로운 신종 미사일 터렛을 전량 리콜해야 한다는 의견이 널리 퍼지는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렸다. 엔지니어링 베이의 대표자 잡스 박사는 말했다.

<우리 미사일 터렛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미사일도 많이 쏘고 회전속도도 빠르다. 가끔 적을 못찾아낸다고? 아! 우리는 이제야 뭐가 문제인지 알았다. 우리는 단지 <엔지니어링 베이>다. 단지 개발만 할뿐 짓는건 SCV가 한다.

다른 종족에게도 결함이 있다. 프로토스 포톤캐논은 연사가 느리다. 심지어 성큰 콜로니는 디텍팅도 제대로 못한다.  사람들은 누가 잘하면 혼내주고 싶어진다. 엔지니어링 베이가 저그 건물이었으면 좋겠느냐? 아니면 테란에 남아 미사일 터렛을 계속 만들어 주길 원하는가? 우린 여태까지 12년동안 신뢰를 쌓았다.>

이러는 동안에서도 다른 종족과 전쟁을 벌이는 일선에서는 어서 미사일 터렛을 지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미사일 터렛의 가격대비 성능을 상기한 테란은 미사일 터렛에 공짜 3D 케이스를 씌워주겠다는 조치에 만족하고 다시 전쟁을 수행한다.




블리자드의 스타 크래프트2 발매를 축하라도 하려는 건가? 비슷한 시기에 애플은 안테나 전쟁을 시작했다.

우주를 놓고 세 종족의 운명을 건 다툼처럼, 애플이란 종족이 벌인 안테나 전쟁은 스마트폰 업계에 전쟁의 불을 붙였다. 물론 미국 언론에서는 더이상 이 사건을 이슈로 다루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미 불길은 언론을 넘어 애플과 경쟁하는 다른 종족으로 번져나간 상태다.

얼마전부터 애플 홈페이지에 가면 색다른 항목을 볼 수 있다. 바로 안테나 문제를 다룬 새로운 페이지인데 발빠르게 한글 홈페이지로도 잘 번역되어 올라와 있다. ( 애플 안테나 )

친절하게도 발견되는 즉시 업데이트까지 된다. 모토로라의 드로이드X는 최근에 추가로 올라오기도 했다. 아마도 이후로도 업계의 다른 스마트폰에서 어떤 문제라도 발견되면 다 넣어 백과사전을 만들 것 같다.



소비자에게 올바른 진실- 우리만 안테나 결함이 있는게 아니라 모든 스마트폰이 다 그렇다! 라는 걸 알리자는 이런 <공멸 마케팅>은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걸까? 테란의 궁극 무기인 <뉴클리어 웨폰>처럼 내가 이기지 못한다면 모두 함께 죽자는 걸까? 가미가제처럼 아이폰4로 상대 진영에 자살공격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보다 긍정적이고 서로를 함께 살려주는 페어플레이와 상생의 마케팅을 기대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는 매우 헛된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애플이 마치 진주만 공습처럼 선공을 날리자 다른 회사도 가만 있지 않았다.

삼성은 애플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를 패러디한 광고를 통해 반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출처 )


그래도 직선적이고 날이 서 있으며 너무 경직된 애플의 공격에 대한 응수치고는 부드러운 위트를 강조했다. 적어도 안테나 문제에 관해서 도전자의 위치는 애플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연합군 가운데 모토로라의 반응은 약간 과격하다. 모토로라는 드로이드X가 아무 것도 씌울 필요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 출처 : 기즈모도 )


이 광고에서 모토로라는 휴대폰을 처음 만들었으며, 30년 이상 안테나를 연구한 역사가 있음을 강조했다. 애플에게는 많은 돈과 우수한 인력은 있어도 아직은 이런 역사가 없다.

애플도 어차피 공격당한 이상 반격해야 하는 업계의 속성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애플의 안테나 전쟁도 똑같다. 어차피 전쟁이란 무엇이 되었든 명분이 필요하며, 수단이야 어쨌든 이기는 게 중요하다. 또한 시작하는 건 자유지만 멈추는 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최후의 보루일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미 <우리가 한국회사였으면 좋겠냐?>는 말까지 입에 담았다. 그러니 물러설 수가 없다. 타협도 없다. 이대로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업계가 지난 30년간 해온 노력이 애플이 고작 4년간 해온 노력과 똑같다는 인식을 해도 상관 없다는 태도다.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애플은 만일 삼성이 막 개발된 바다 OS의 결함을 지적 받았을 때 애플의 iOS를 끌어들이며 <스마트폰 OS는 완벽하지 않다. 아니, 운영체제란 자체가 완벽한게 어디있냐?> 라고 외쳐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애플은 휴대폰이란 걸 처음 만들고 역사를 열어간 모토로라의 안테나 기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끌어내렸다. 마찬가지로 PC를 개척기부터 만들고 매킨토시로 GUI의 역사를 열어간 애플의 운영체제 기술 역시 새내기 신참에게 모욕당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분할 것인가? 이미 권위는 스스로 다 파괴해버린 것이다.


애플은 왜 스마트폰 안테나 전쟁을 하는가?

애플을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번 애플의 안테나 전쟁은 다소 치사하고 째째한 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애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방적으로 자기 회사만 얻어맞는 수세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치고 나간 방어적 측면이 있기에 그런 것이라 변호한다.

맞다. 안테나 전쟁을 하는 애플의 목적은 지금의 방어하는 위치에서 더이상 몰리지 않기 위해 공격을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여전히 애플을 사랑하지만 다른 환경은 예전과는 다르다. 왜 옛날처럼 언론이 애플에 호의적이지 않는 걸까? 왜 옛날처럼 애플의 허물을 감싸주지 않는 걸까?

그건 지금 애플이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한때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불리며 애플은 항상 약자였던 적이 있었다.
IBM과의 첫번째 대결이 그랬고, 마이크로 소프트 와의 두번째 대결도 그랬다. 그때 언론은 대체로 애플에 호의적이고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애플은 더이상 다윗이 아니다. 기업가치나 매출량에서 스스로가 충분한 골리앗이다. MS마저 제친 최고 선두기업이란 말이다.

휴대폰 시장 전체로 따져도 애플은 힘없는 약자가 아니다. 엄청난 거인이 약자가 받는 호의를 받을 수 있을까? 애플은 더이상 약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등에 업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원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업계가 함께 안테나 기술을 향상시키길 원한다. 서로 싸우면서 <우린 전부 다 결함이 있다!> 라고 외치면 그 다음엔 뭘 어쩌라는 말인가? 그냥 어느 걸 사든 마찬가지니까 앞으로 스마트폰 안테나 품질을 평가할 때는 룰렛이나 주사위를 굴려서 정하면 된다는 뜻인가?  이게 정녕 기술의 진보고 혁신인가?

애플은 좋은 점이 많은 회사다. 그들은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들이 추구한 신선한 바람은 업계에 영감을 주며 유행을 만들었다. 마치 IBM이 처음 PC시장에 들어왔을 때 시장 자체를 늘리며 업계 전체의 이익을 가져왔듯, 애플도 능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당장의 판매량을 위해 안테나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만 둬야 한다. 언론은 이미 더이상 이 문제를 핵심쟁점으로 삼지 않는다. 애플은 케이스 무료제공을 통해 고객의 행복을 원한다고 했으면 고객만 상대할 뿐 더이상 다른 업체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 업체도 이 이상의 대응은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나는 애플을 포함한 모든 스마트폰 업체들이 조금 더 냉정해지고, 조금 더 창의적이 되길 바란다. 축구시합을 보는 관중들은 선수들이 공을 차며 골을 향해 돌진하는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한다. 서로의 발목을 걷어차며 팔꿈치로 얼굴을 때리는 난투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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