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하면 역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혁신>이다.

새롭게 막 개발된 좋은 기술로 사용자의 편의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문화현상까지 일으킨다. 또한 이미 기존에 있었던 기술이라도 그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활용함으로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창조해낸다. 이런 모든 것이 업계를 리드하며 애플의 좋은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애플이 채택하면 뒤늦게 다른 업체가 따라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본격적인 GUI, 마우스의 채택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멀티터치와 자이로스코프 센서까지 애플은 항상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다른 업체를 뒤따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애플의 혁신이 절대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이나 서비스 향상쪽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자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런 선도적인 <혁신기술>을 채용하기도 한다.

애플이 만들어낸 반갑지 않은 혁신기술은?

첫번째로 가뜩이나 한국 소비자들에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은 애플의 AS에 관련된 기술로 <침수라벨>이라는 것이 있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 등에 장착된 이 침수라벨은 작은 종이 조각 정도로 보이는 물건이다. 보통 때는 흰색이지만 물에 잠기거나 하게되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이 침수라벨이 각각 두군데 삽입되어 만일 소비자가 고장된 제품을 가져왔을 때 이 침수라벨이 붉은 색이라면 무상 AS를 거절당한다.



여기서 애플의 AS정책인 리퍼까지 맞물리면 침수라벨 판정 한번에 무조건 기기교환용 수리비인 거금 29만원을 내야 한다. 사용자가 정말로 완벽히 실수해서 물에 빠뜨렸거나 했다면 몰라도 애매한 상황에서 침수라벨이 반응했다면 매우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가 있다. 맑은 날 야외에 나갔는데 별안간 우산도 없는 상황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최대한 아이폰을 가리며 근처 건물로 피했지만 약간의 빗방울은 피할 수 없었고 그게 아이폰에 적은 양의 물이 스며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럴 때 침수라벨이 반응했다.

그래도 AS센터 입장에서는 이런 소비자의 사정이나 노력 따위는 별 관심이 없다. 침수라벨이 반응했다면 소비자가 그냥 아이폰을 대놓고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일부러 빠뜨려버린 것이나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판정을 내리게 된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침수라벨에 의해서 말이다.

최대한 애플편을 들어주자면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불완전한 판정을 방지하기 위한 최신의 디지털식 침수판정 기법이다. 라고 할 수는 있다. 인간이면 이게 조금 젖었는데 고장난 억울한 경우라는 아날로그적 판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침수라벨은 디지털의 0과 1처럼 물에 닿지 않았다의 0과 닿았다의 1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유죄 아니면 무죄. 딱 그것 뿐이다.



침수라벨에서 더욱 발전한 각종 센서로 충격까지 검출하는 시스템을 애플이 특허까지 낸 상태다. 소비자과실을 철저히 가려내겠다는 의도다. ( 출처 )

생각이 달라서인지 다른 회사 휴대폰에서 침수라벨이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삼성 휴대폰에도 있다고 하는데 이 침수라벨로 인해 억울하다는 말은 거의 없다. 아마도 이 라벨만으로 무상 AS거부를 하지는 않거나, 리퍼가 아니니 수리비가 적게 나와서 인 듯 하다.

본래 이렇게 업체의 이익을 아주 잘 보호해주는 혁신기술은 채택이 빨라야 정상이다. 늘 기술을 선도하는 애플의 정전식 타블렛이나 UI같은 것은 안되면 베껴서라면 만들어내지 않는가? 애플의 종합적인 소비자 과실 판정시스템은 참으로 혁신적이다.


그러나 침수라벨만 해도 아직 많은 업체에서도 이것만으로 소비자 과실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이것이 가져다 주는 소비자의 불만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소비자의 글 등에서도 침수라벨에 대한 부분은 애플이 그다지 옹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건 아마도 침수라벨이 단지 감시자일뿐 그 자체가 제품의 기능이나 편의성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인 듯 싶다.

그러다보니 침수라벨이 젖고도 무상 AS판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심지어 주사기로 은색페인트를 라벨에 조금씩 묻혀 붉은 색을 전환시키는 기법까지 인터넷에 등장한 상황이다. 어차피 라벨이라는 건 감시자에 불과하니 이렇게 속이는 것에도 거부감이 덜한 것이다.

차라리 발상을 전환해서 이런 건 어떨까? 감시자 밖에 되지 못하는 라벨 대신 내부에 스며든 습기나 물방울을 일정부분 흡수해주는 <물먹는 하마> 같은 흡습재 같은 재질로 어느 정도 습기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을 삽입하는 것이다. 마치 안전벨트나 에어백처럼 말이다. 그러다 일정이상은 더이상 흡수하지 못하게 되고 그때부터 붉은 색으로 변한다면?


그러면 소비자도 <이 기술은 내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결국 내가 부주의해서 이 혁신부품의 한계치를 초과했구나.>라고 조금은 더 쉽게 수긍하지 않을까? 조금도 반갑지 않은 감시자에서 보호기능으로 탈바꿈한 부품이라면 일부러 속이는 데도 약간 더 가책을 느끼고, 또한 속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기왕이면 나는 애플이 이런 방식의 혁신을 해주길 바란다.

두번째로 최근 이런 방식의 <감시용 혁신 기술>에 대한 소문이 또 하나 흘러나왔다. 바로 탈옥 여부를 소프트웨어로 판별해 흔적을 남긴다는 <워터마크>에 관한 정보다. ( 출처 )

애플이 최근 아이폰용으로 내놓은 iOS 4.1 베타의 기능 가운데 <워터마크>가 있다. 

이번 버전은 운영체제 안에 소프트웨어 기능으로 탈옥된 기기들 확인을 위한 디지털 워터마크를 채용했다. 이 디지털 워터마크는 제거될 수 없고, 애플 직원들은 iPhone 서비스 때 탈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건 침수라벨과 같은 감시자용 혁신기술의 소프트웨어 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애플은 이제까지 일종의 기기해킹인 사용자의 <탈옥>에 대해서 완전히 불법으로 몰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AS보장을 해주며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개인의 선택이라는 입장이었다. 다만 탈옥해서 쓰다가 제품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의 AS는 철저히 거부한다는 정도가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러나 탈옥폰은 다시 정품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되살려 가져가면 그만이었고 애플은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탈옥을 했었는지 여부를 이제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 판정하기 위한 칼을 뽑아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것은 상당한 기술력이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탈옥툴 역시 정교하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한번이라도 탈옥을 했다는 걸 지울 수 없게 자국을 남긴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이고, 그것에 쓰인 코드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혁신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마 이 기능을 어느 소비자도 반기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다른 것은 전부 디지털화되고, 정량화되어도 AS나 각종 서비스만은 아날로그를 원하는 것이 소비자의 감성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쓰던 제품이 고장나서 서비스를 받으러 가면 옆집의 친한 아저씨같은 분이 미소지으며 <그래, 어디가 문제인가? 흐음, 이거로군. 잠깐 기다려보게.> 라며 친절히 상담도 해주고 고쳐주기를 바란다. 무슨 법정출두라도 되는 것처럼 긴장하고 센터에 가서는 <침수라벨이 반응했습니다.> , <워터마크가 남았군요.> 라는 유죄선언을 들으며 <그러니까 무상 안됩니다.> 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판정을 듣고 싶지는 않다.


아이폰이나 애플 제품이 안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용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그 좋은 제품이 막상 고장나면 감성 하나 없는 이런 감시자용 부품에 의존해 소비자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차피 싫으면 안사면 그만이라지만 제품에 개선책을 요구한다는 것이 무리한 일은 아니다.

아직 워터마크 건은 확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탈옥툴을 개발하는 해커그룹은 워터마크 같은 건 없다고 부정했다. ( 출처 )  하지만 이건 애플이 공식 해명한 것도 아니고 탈옥툴을 개발하는 해커그룹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얼마만큼 공신력이 있을 지 모르겠다.


결국 용어의 차이일 뿐 탈옥탐지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탑재되어 쓰일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아직은 탈옥이 정확히 불법인지, 이것을 해서 AS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침해인지 아닌지 조차 법정에서 가려지지 않은 만큼 대체 이 기능을 애플이 어떤 목적으로 쓸 것인 알 수가 없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탈옥 워터마크 판정자의 형사고발 에서부터 단순히 탈옥 사용자가 얼마나 되는가 통계만 내는 목적까지 사이의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어쨌든 우리가 바라는 애플의 혁신기술이 반드시 소비자의 이익과 편의만을 위해 개발되고 채택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애플은 단지 자사이익의 보호만을 위해서도 그 기술을 쓸 수 있을 것이고 그건 애플의 자유다.

 다만 나는 제안할 뿐이다.


이런 단순한 감시자용 혁신기술은 전혀 반갑지 않다, 차라리 최소한의 제품 보호기능과 함께 가는 감시기술이어야 좀 더 애플답고,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좋은 글을 원하시면 아래쪽 추천버튼을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