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가지 상반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말이야, 잘나가면 원래 시기를 받기 마련이야. 못난 놈들은 자기들이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늘 남의 험담만 하거든. 그럴 시간에 일을 열심히 했으면 더 성공했을 걸. 그러니까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마. 다 루저들이 하는 헛소리야. 그저 넌 네 갈 길만 가면 돼.

똑똑하고 잘나가는 놈? 그런 놈치고 인간적으로 좋은 놈 못봤다. 그 놈은 모든 게 자기 중심으로 있는 줄 알아. 친구도 별로 없고, 자기한테 이익이 안되면 아무 일도 안하려 들어. 그러니까 다들 욕해. 물론 잘나가는 놈이니 뭐라도 뜯어먹으려고 친한 척 하는 녀석도 있지. 하지만 그 잘난 놈이 조금만 삐끗해봐. 대번에 전부 떨어져 나갈 걸?

우리가 학창시절에 혹은 회사에서 누군가를 두고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지극히 평범한 말이 때로는 보다 넓은 범위에 적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 슬프다.
그래. 맞다. 바로 내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련된 일이다.


사실 애플이 스스로 도덕적인 기업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 공익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러니까 누구도 그들이 천사라서 많은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인류 평화와 복지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스티브 잡스가 말년에 노벨 평화상을 삶의 목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렇게 여기고 넘어가기에는 점점 애플과 관련된 잡음이 심각하게 들린다는 게 안타깝다. 애플이 그저 작고 작은 회사로 머물러 시장점유율 한 자리숫자 정도일 때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들이 지금은 참을 수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딱 하나가 떠오른다. 창의성이 엄청난 천재, 그러나 인격적으로는 미성숙한 소년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대단한 발명을 통해 어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 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전혀 기대에 못미치는 소년 말이다.

이런 소년이 단지 어른들 사이에서 적당히 인정받으며 발명에 전념할 정도면 좋을 텐데 어느새 그 능력 때문에 모든 어른들을 누르고 그 윗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 빔병기를 들고 과거로 타임슬립한 소년처럼, 희극과 비극이 수시로 벌어지게 된다.


애플의 제품들을 EMS방식으로 생산하는 대만의 대표적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폭스콘(Foxconn)이 최근 중국 공장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로 인해 궁지에 몰렸다. 그 원인으로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지적되었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폭스콘은 중국 종업원들의 임금을 두 배 이상 인상하는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원가 상승 압박으로 폭스콘의 경영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중국에 공장을 둔 다른 업체들도 임금 인상 요구에 크게 시달리는 등 역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혹자는 미국을 자본주의가 빚어낸 모든 악의 제국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인권도 나름 챙기는 면이 있다. 이번 D8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에게 이런 폭스콘의 상황을 두고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나름 스티브 잡스가 자유분방하고 경직되지 않는 사고 방식을 가진 것에 기대한 많은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 문제는 착실히 조사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회사의 모든걸 조사하고 있죠. 몇가지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드리자면 Foxconn은 소문처럼의 강제 수용소가 아닙니다. 단순히 공장입니다. 공장인데도 레스토랑이나 영화 극장까지 있죠. 하지만 공장은 공장입니다. 그리고 최근 직원의 자살 및 자살 미수 사건들이 있었죠. 이 공장에는 직원이 무려 40만명이나 됩니다. 이번 사건의 자살 빈도는 미국 전체의 빈도보다 낮아요. 그리고 문제인건 사실이죠.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답변이었다.
이걸로 끝이었다. 무엇보다 미국 전체의 빈도보다 폭스콘의 자살빈도가 낮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에 의거해 어휘선택이 매우 정교하고도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꼭 이렇게 언급해야만 했을까. 나는 상당히 실망했다. 단지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가일 뿐이라고 해도, 미국인 입장에서는 별 의미도 없는 중국인의 죽음이라고 해도 인간의 죽음을 두고 저렇게 말해서는 안되었다.


우리가 예전에 효선이미선이 사건을 두고 분노할 때 미국은 단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미군 입장에서야 백인소녀도 아닌 동양인 소녀 하나둘은 별 것도 아니었을 지 모른다. 중국인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는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기형>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모든 이를 뛰어넘는 미래예측과 창의력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이에 훨씬 못미치는 소매상 마인드가 있다. 애플은 회사가 어려워도 동네 구멍가게지만, 회사가 잘 되어도 똑같은 동네 구멍가게 마인드다. 어쩌면 이들은 그저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한쪽에서 열심히 제품이나 만들어 시장에 파는 게 어울릴 뿐, 어떤 권력이든 쥐어주면 안되는 존재일지 모른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는 어쩔줄 모르는 어린애를 보는 것만 같다.


폭스콘에 EMS를 의뢰한 애플이 한 발 양보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맞는 답이다. Evertiq의 기사에 의하면 애플은 매 분기 기록적인 이익을 올리면서도 , 폭스콘에게는 'Zero Profit Deal(이윤이 남지 않는 거래)'를 강요하고 있다. 폭스콘의 애플에 대한 미약한 협상력이 원가 절감 압박으로 이어지고, 그 부담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어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바나나와 커피를 둘러싸고 벌이는 노예노동 논란과 거의 일치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애플은 소비자에게도 비싸게 제품을 팔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누가 보기에도 대단해보일 정도로 막대한 순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하드웨어 장사에서 순이익률 40프로라는 경이적 실적 뒤에는 한쪽으로는 이렇듯 중국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숨어있다.


인간의 탐욕이란 원래 끝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순수익률 가운데 단 5프로라도 떼어내서 납품업체에 근무환경을 위해 쓰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애플의 어떤 주주도 쉽게 이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평등이니 하는 이야기는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당장 내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줄어든다는 말은 너무도 현실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문제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그의 위치도 그렇거니와 성품은 본래 정말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한다. 더구나 오늘날 애플의 회생과 성장이 전부 잡스의 공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순수익 40프로 가운데 5프로나 10프로를 잡스가 양보하겠다는 데 그 어떤 간 큰 주주가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스티브 잡스는 전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잘나가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욕먹는 이유는?
바로 이런 소매상 마인드에 있다. 자기 위치가 아무리 올라가고 세상이 그들에게 양보의 미덕이나 다소의 희생을 원하더라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절대권력을 쥔 어린애 같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자기가 사회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쯤되니 한숨이 나온다. 전에 내가 올렸듯이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애플의 창의력과 혁신이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런데 그 인문학에는 <사회에 대한 배려와 책임>, <인간에 대한 사랑> 도 들어있다. 단순히 <기업 이익의 극대화>, <자유로운 기업활동> 이런 거 말고 말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애플의 철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하나의 헤프닝이 벌어졌다.

장애인 한 명이 아이패드를 현금으로 구입하려고 하자, 다량구입을 막기위해 신용카드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본사 방침을 들어 점원이 교육받은 대로 판매를 거부했다. 그냥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이 언론을 타고 장애인 차별 논란으로 번졌다.
장애인 차별은 미국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자 당황한 애플은 황급히 방침을 바꿔 애플 스토어에 아이디를 만드는 방식으로 현금 구입을 허락했다.
다른 기업이라면 애초에 이런 문제는 전부 대비가 되어 있기에 별 문제도 안되던 것이 애플에서는 전혀 대비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까지는 장애인이든 뭐든 소비자가 애플의 방침에 맞춰줘야 했던 셈이다.

나는 위에서 상반된 두가지 예시를 들었다.
잘 나가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욕먹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단지 애플이 잘나가니까 그 뒤에 처진 <루저>들이 헐뜯기 때문일까? 아니면 잘나가는 이들이 주위를 제대로 배려하지 않기 때문인가?

현재의 애플은 <대인배>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 <소인배>다. 물건을 기차게 잘만드는 소인배 말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 말한 인문학을 좀 더 공부해서 그와 애플이 제발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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