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IT업계에는 정말 많은 정보가 넘치고 있다. 신뢰성 높은 언론사와 현장취재 정보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나왔는 지 모를 황당한 루머까지 정보는 과할 정도로 많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정보가 많은 가치를 지니려면 어떤 관점에 따라 정돈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관점이 있는 정보를 좋아한다. 그러기에 IT관련 글에서도 단순한 정보 소개글이 아니라 정돈된 관점이 있는 정보를 보여주고 싶다.



앞서 아이패드 대항마라 불리는 몇몇 업체의 타블렛이 발표되었다. 의외로 삼성이 빠져있기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가 했더니 역시나 곧바로 관련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삼성이 드디어 가칭 S-PAD라 불려오던 타블렛을 발표했다. 공식명을 갤럭시 태블릿 혹은 갤럭시 탭(Tab)이라 명명한 이 제품은 삼성의 남아프리카 공식 트위터를 통해서 사진을 공개 했다가 지금은 갑자기 사진이 삭제된 상태라고 한다.

꽁꽁 숨겼다가 살짝 치마자락 들추듯 보여주는 애플을 모방하려는 고도의 홍보전략일까? 그렇다면 매우 유치하고도 몰개성한 홍보임에 분명하다. 전세계에서 지금 그런 방식의 홍보전략이 먹히는 기업은 애플이 유일하다. 나머지 기업은 흉내내봐야 역효과만 나올뿐이다.

그럼 아이패드에 대항하겠다는 삼성의 갤럭시타블렛의 모습을 살펴보자.




옆에 있는 건 스마트폰인 갤럭시S다. 공개된 외관 사진과 함께 간단한 제품 사양도 밝혀졌다. 이번에는 노트북 재활용품을 연상케 했던 다른 회사 타블렛을 보았을 때와는 달리 화도 나지 않았다. 역시나 너무도 무난하면서도 지극히 삼성다웠기 때문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야심만만하게 내놓은 이 갤럭시 타블렛은 그저 아이패드의 그림자만 따라가는 제품일 뿐이다. 그 이유를 하나씩 말해보겠다.

1. 화면은 7인치 와이드 규격을 채택했다.
아이패드의 다소 부담되는 크기인 10인치와 다르게 만든 점은 좋은 시도다. 하지만 와이드 채택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가뜩이나 7인치로 줄어든 화면에서 만일 표준 비율의 동영상을 보게 되면 화면이 참 작아보일 게 분명하다.

중요한 건 화면에 있어서 딱 이 정도의 고민 밖에 안 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아이패드에게 뒤늦게 도전하면서 화면크기나 규격, 슈퍼아몰레드 채용만으로 차별성을 홍보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컬러전자잉크라든가, 반투과형스크린 같은 걸 채용해서 <우리 제품은 대낮에 햇빛 아래서도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 절대로 불가능하죠!> 이 정도는 되어야 발표되었을 때 언론에서도 열심히 써줄 게 아닌가. 모험이긴 하지만 세상에 모험 없이 얻어지는 건 그리 많지 않다.

2. 무선랜을 비롯해 3세대(3G) 무선통신 기능이 내장됐다. 음성통화 기능이 장착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아이패드에 전부 있는 기능이니 별 개성없는 부품채택이다. 음성통화 기능이 만일 있다면 헤드셋으로 하게 될 텐데 나름 신선하고 좋은 시도일 수 있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통하면 멋져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실용성은 별로 없을 듯 싶다.




3.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환경(UI)은 갤럭시S에 탑재된 터치위즈와 동일한 듯 하다.
삼성의 독자 운영체제인 바다가 아닌 안드로이드를 쓴 것으로 최악의 선택은 피했다. 하지만 몰개성은 피할 수 없다. 삼성 정도의 회사에서 내놓은 야심작이다. 운영체제를 구글에 의존하면서 고작 자사 스마트폰에도 쓰이는 공통UI 하나만 얹어서 내놓는다는 건 급조했다는 인상 밖에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터치위즈 자체가 아이폰 UI에 비해 그리 독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4. 삼성 로고 옆에 전면 카메라가 달려있다. 화상채팅을 위한 저해상도 카메라로 보인다.
아이패드에 없는 카메라 채택은 나름 훌륭한 점이다. 그런데 기왕이면 고성능 카메라를 달았으면 어떨까? 회전식으로 전후면 전부를 커버할 수 있는 방식으로 500만화소 정도를 달면 더 좋지 않는가? 그로 인한 원가상승요인이 있긴 하겠지만 아이패드에 없는 요소를 넣을거라면 최고부품을 한번 넣어보면 좋지 않을까? 너무 소심하다.

5. S패드의 국내 출시는 8월경이 유력하며, SK텔레콤을 통해 독점 공급될 예정이다.
8월이면 아직 아이패드가 국내에 발매되기 전일 것이다. 이통사를 통해 독점공급된다는 건 3G모델에만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혹은 와이파이 모델 자체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6.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아이패드가 갖추고 있는 블루투스라든가 전자나침반, GPS는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게 역시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가격도 499달러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도 외국제품인 아이패드에 대항해보겠다고 한국의 자존심 삼성이 총력을 다해 설계했을 제품이다. 외관이나 사양에서 그다지 뒤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난한 구성에 나름 노력했는데...

바로 그점이 문제다! 애플은 무엇을 발표하든지 그 제품에서 열정이 느껴지고 뭔가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그런데 삼성이 만든 이 갤럭시 타블렛에서는 아무런 설레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패드가 채용한 건 비슷하게 따라하면서 아이패드가 하지 않은 건 자기들도 하지 않는다. 그림자만 쫓고 있는 셈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위에서 회장님이 어떻게든 대항마를 만들라고 호통치니까 잔뜩 주눅이 든 엔지니어들이 대충 이 정도면 크게 혼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수동적으로 만든 티가 난다. 바로 그게 내가 느끼는 답답함이다.

그래서 나는 단 한마디로 이 제품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다.
철저히 아이패드의 그림자만 쫓는 삼성 갤럭시 타블렛.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뭔가 혁신적인 제품을 구상하려고 했지만 위에서 결제권자가 안받아줬는지 모른다. 아니면 고위층은 마음껏 해보라고 독려했지만 삼성 엔지니어들의 창의력이 너무 빈곤하고, 과감한 도전을 했다가 책임지고 사표쓰면 어쩌나 해서 알아서 기었는지도 모른다. 내부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적어도 이 제품의 디자인과 하드웨어에서는 아무런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혹시 앱이나 비지니스 모델 같이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무엇인가 혁신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기대하기에는 현재 삼성이 보유한 소프트웨어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



문득 몇 년전 삼성이 MS, 인텔과 함께 야심차게 내놓았던 오리가미 프로젝트-UMPC 제품이 생각난다. 센스Q1 이라 명명된 그 제품은 무거운 윈도XP를 셀러론으로 구동하면서 배터리시간은 짧았다. 그러면서도 삼성이란 이름 때문에 동급 제품보다 훨씬 비쌌다. 판매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때 관련 임원이라는 분이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적은 초라했다.

이번 갤럭시 타블렛을 본 내 심정은 그때 센스Q1을 본 심정과 비슷하다.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이 제품을 삼성이니까 하고 고가 프리미엄 정책까지 써서 내놓으면 그 판매실적은 끔찍한 재앙이 될 것만 같다.

특별히 애국심이 남다른 것도 아니고, 애플제품을 좋아하는 나지만 솔직히 이 제품을 보자 삼성이 걱정된다. 열정과 혁신마인드가 없이 급조한 양산형 제품을 가지고, 천재들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만든 제품을 맞설 수 있을까?

나는 삼성을 과대평가하지는 않는다. 전자회사로서 삼성이 가진 역량이란 이미 형성된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지극히 보편화된 부품구성을 가지고 양산화 기술로 밀어붙이는 게 거의 전부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휴대폰 등으로 다져진 삼성의 저력은 이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최소한 이것보다는 좀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렸을까?
 
<그럼 네가 한번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간단한 제안을 내놓아보자.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패드는 모노 스피커 하나밖에 지원하지 않는다. 갤럭시 타블렛은 스테레오 스피커를 지원하고, 아이패드에 부족한 음장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삼성은 이미 mp3 옙을 만들며 쌓인 기술력이 있지 않은가? 이런 건 특별히 돈도 많이 안 든다. 혹은 게임기능을 위해 조작버튼에서 과감히 PSP 비슷한 소형 아날로그 스틱을 넣어본다든다 이런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왜 딱 아이패드에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가? 그 생각의 고정이 바로 이 경직된 타블렛 하드웨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S패드라는 가칭을 뗀 이 갤럭시 타블렛이 부디 완성되서 발매되었을 때는 좀더 내 예상을 깬 좋은 제품이 되어 나와주었으면 한다. 삼성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떠나서 한국 시장에는 경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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