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티브 잡스가 미국에서 아이폰 4G를 발표했다.  <잡스이론>을 이어서 이야기해 보자.
흔히 역사에는 <만약> 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모든 일은 각각 일어나게 된 절실한 원인이 있다. 그렇기에 그걸 되돌려 다른 선택을 상상해보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만약 케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말하며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이 없었다면? 로마는 어떻게 됐을까? 만약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라고 말하며 조선수군에 복귀하지 않았다면? 조선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상상은 아쉽게도 소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감정을 가진 인간인 이상, 지나가버린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흥미로운 상상을 하는 것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때 옆 자리에 앉았던 빼빼 마른 여자애가 나중에 미스코리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는 심정과도 비슷할 것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유심히 관찰하고 배울 만큼 혁신적이고 활기에 넘치던 이노베이션 그룹 <소니>가 이후 어떻게 기울어져 갔을까?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의 실수를 했는가를 살펴보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본기업임에도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아마도 내가 청소년기에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워크맨을 만든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보다.


어떤 국가가 기울어져갈 때는 모든 선택이 대부분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울어져가는 기업에서 행해지는 의사 결정은 그것이 선의에서 나왔든, 성공하던 예전의 관습에서 나왔든 결과는 항상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소니에게 있어서 최악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앞서 나는 소니와 애플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선택 이란 글을 통해 중요한 선택 실수를 지적했다. 이것들은 대체로 소니가 기존에 주력하고 있던 분야에서 어떤 판단미스를 저질렀는지에 관련된 문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도 더 치명적인 실수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소니가 미래 전략에 대한 중대한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가장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소니는 애플보다 먼저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다.

다소 자극적인 말이지만 이제부터 하나씩 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부분을 동의하리라 믿는다.

90년대에서 2천년으로 넘어온 소니는 다방면에 걸쳐 많은 계열기업을 이끌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전통적인 음악과 영상 기기 부터 시작해서 컴퓨터와 노트북 같은 IT기기는 당연히 주력업종이다. 게다가 영화사와 음반사를 소유한 컨텐츠 업체이고, 플레이스테이션과 PSP라는 휴대용게임기도 만든다. 소니 엔터테이먼트를 통한 게임제작과 유통도 한다. 게다가 합작기업인 소니 에릭슨을  통해 핸드폰도 만들었다. IT전체에 걸쳐 소니가 손대지 않는 분야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소니 역시 이런 다양한 제품군의 연결과 융합을 시도했다. 메모리스틱이란 독자표준을 이용해 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과 텔레비전, 게임기를 하나로 묶어 정보를 공유하도록 노력했다. 컨텐츠를 보호한 채로 음악을 넣고 빼는 매직게이트란 기술도 개발했다.

이런 제품 개발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행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소니의 PDA시장 진입이었다.


PDA는 지금의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 역사를 이야기할 때 종종 무시되곤 하는 기기다. 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애플(!)에서 최초로 내놓은 정보단말기 <뉴튼>에 뿌리를 둔다. 잡스가 떠나있을 때 선보인 이 단말기는 타블렛으로 필기입력이 가능한 전자수첩 정도의 기능을 지녔다. 상당히 정확한 필기인식률과 여러가지 첨단기능을 자랑하는 좋은 기기였지만 비싼 가격과 확실치 않은 쓰임새로 인해 실패한다.


하지만 이 기기의 가능성에 눈을 뜬 다른 업체가 곧 <팜>이라는 저가형 정보단말기를 내놓는다. 마치 리사가 저가형으로 나온 매킨토시처럼 팜은 쉽게 접근가능한 가격과 개인정보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사용자가 직접 개발해서 인스톨 해서 쓸수 있는 <앱>을 제공해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대중적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PDA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꽤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일본에서도 소니가 PDA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는 팜의 운영체제를 약간 고쳐서 일본화시키고 소니의 색깔을 더한 <클리에>란 기기를 내놓는다. 이때 클리에는 디자인에서나 기능에서 오히려 팜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후 MS의 윈도우CE가 이 시장에 진출하고나서 핸드폰과의 융합을 통해 초창기의 스마트폰까지의 발전을 모색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멀티미디어 재생이 가능하지만 너무 무겁고 오류가 잦은 윈도우CE는 오히려 PDA를 쓸모없는 물건으로 인식시키며 시장 전체를 붕괴시킨다. 한편으로 팜과 클리에는 가볍고 좋은 운영체제이지만 자금력 부족과 기술에서 더이상의 진보를 보이지 못해서 자멸했다. 물론 그 과정에 MS의 불공정한 압박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 우리에게 아이폰이란 이름으로 혁신적인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그 사이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마트폰 시장은 중세시대의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다. 소니 역시 클리에를 포기하고는 기존의 PC를 줄여서 만든 UX시리즈로 선회한다.

이 무렵 소니가 유일하게 세계를 리드하고 승승장구하는 분야는 단 하나,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게임 분야였다. 플스1과 플스2가 거의 압도적으로 시장을 장악했고, 플스3도 비교적 좋은 출발을 보였다. 이에 소니는 휴대용 게임기인 PSP까지 내놓으면서 휴대 게임기를 통해 게임 만이 아닌 웹브라우징이나 음악과 동영상 감상 등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널리 홍보했다. 2006년에는 전용 외장 키보드까지 특허를 냈을 정도였다.


PSP는 참으로 잘 만든 하드웨어였다. 비단 게임기로서만이 아니라 게임 외적인 범용을 지향하고 있었다. 다양한 엔터테이먼트 기기로서 터치스크린만 없었다 뿐이지, 아날로그 스틱이나 각종 버튼을 이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역시 미려하고도 쓰기 쉬웠다. 또한 모든 것이 소니의 제품과 컨텐츠 하에 통일되어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이런 가운데 이 PSP를 입수해서 해킹하던 해커들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소니가 내놓은 이 PSP는 독자적인 운영체제가 아니라 리눅스를 약간 변형시켜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게임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소니가 허락한 게임만 구동 가능하던 방지장치가 간단한 소프트웨어 크랙만으로 무력화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해커들은 PSP의 펌웨어를 뚫고는 메모리스틱에서 게임을 돌리고, 사용자가 소니의 허락없이 만든 홈브류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이 펌웨어를 공개했다.

당연히 사용자들은 열광했고, 소니는 당황했다. 이후로 소니는 지금까지 펌웨어업데이트를 통해서 이 기능을 막고, 해커는 다시 뚫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마치 지금의 아이폰 탈옥과도 동일한 현상이다.

한편 2005년부터 업계에 돌던 루머에 의하면 소니가 PSP기능을 휴대전화에 통합시킨 PSP폰을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소니에릭슨을 통해 이미 휴대폰을 만들던 소니가 같은 휴대기기인 PSP를 융합한다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오히려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가 이상할 정도였다. 사용자들의 관심은 뜨거웠고 가상의 PSP폰 그래픽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2005년 당시 소니는 한국의 KT와 제휴해서 전세계에서 최초로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를 했다. 당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장 잘 깔린 나라였다. 여기까지 오면 내가 느낀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애플이 내놓고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인 아이폰과 거의 동일한 제품이 나오기까지 단 한발짝만 남았던 것이다.
그것도 아이폰 발표 2년전에 말이다!

1. 그때 이미 PSP는 지금의 안드로이드의 모태가 된 리눅스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있었다. 더구나 해커들이 약간의 작업을 거치니 그 안에서 사용자가 직접 만든 <앱>이 실행된다.  거기다 인터넷으로 컨텐츠 다운로드 서비스가 가능했다. 이 두가지를 연합해서 소니가 수익모델만 구상해서 양성화하면 그게 바로 앱스토어다!

2. 이 PSP를 소니에릭슨이 이미 충분히 기술력을 축적하고 이통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휴대전화에 옮겨 심기만 하면 그게 바로 <스마트폰>이다. 앱스토어를 갖춘 스마트폰 말이다!
 
3. 터치 스크린이 빠졌다고? 앞에서 내가 왜 길게 소니가 PDA인 클리에를 만든 이야기를 했을까? 바로 이 클리에가 감압식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정보단말기였다. 이미 소니는 2002년에 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멀티터치는 힘들어도  터치스크린까지만 도입하면 그것이 바로 아이폰이 아닌가?


즉 PSP폰과 해킹 펌웨어를 양성화하면서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 포기했던 클리에 사업에서 터치스크린 기술 하나만 제대로 가져와서 결합했어도 소니는 할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도 매력적인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일 말이다.
오히려 더 쉬웠을 것이다. 이미 넘치도록 확보된 게임 콘텐츠로 인해 발매되자마자 앱 부족에 시달릴 이유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 음반사와 영화사까지 가진 소니의다. 부분적이지만 아이튠즈와 비슷한 것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소니에게는 단 한가지, 생각의 전환이 부족했을 뿐이다.
아마도 각각 이유가 있을 것이다. PSP폰은 계열사 내부에서 사업영역이 충돌하는 문제가 있어서 무산되었을 것이다. 해킹펌웨어는 이제까지 플스1이나 플스2에서 지겹도록 불법화하는 해킹이 지겨워서 전향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망해버린 클리에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낸다는 것도 귀찮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몇 가지 게으름과 경직된 사고가 바로 소니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후 애플이 아이맥을 통해 살아나고 아이폰을 통해 우뚝 섰다. 어쩌면 몰락하던 소니가 플스2를 통해 살아나면서 PSP폰을 통해 아이폰보다 먼저 스마트폰의 절대강자로 우뚝 섰을 지 모른다. 역사에 만약이란게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일본인이거나 소니 관계자라면 땅을 쳤을 안타까운 순간이다.

소니는 최고의 기회가 있었던 2005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내 판단에 마치 뒤를 따르듯 이제야 소니는 PSP를 내장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2010년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단 하나의 발상만 제대로 했어도 5년전에 애플보다 먼저 나와서 시장을 휩쓸었을지도 모를 제품이다. 그러나 이제는 빛나는 아이폰을 보고 쓸쓸히 뒤따라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소니는 애플보다 먼저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놓쳤다. 역사는 두번 다시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소니는 다른 기회의 동앗줄이 내려오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기회를 잡아 승자가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G를 전세계의 환호속에 발표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게 있다면, 그래서 소니가 조금만 더 진보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티브 잡스가 아닌 소니 회장이 오늘 이 자리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서 <이것이 바로 소니의 미래입니다!> 라고 말하며 PSP2폰을 꺼내들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아이폰 같은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어지는 글에서는 혁신적인 역량을 많이 소진해버린 소니가 아닌, 애플에 잠재적인 적이 될 무서운 일본기업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아마도 내 생각에 일본기업 가운데서 가장 애플과 가까운 기업일 듯 싶다. 이번에는 애플 역시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이 오늘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