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엔비디아]



그래픽 가속기(GPU)는 일반 소비자에게 3D 게임과 함께 알려지고 보급됐다. 원래 이전까지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책상 위에서 고급 디자인 작업과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사용되던 비싼 워크스테이션 컴퓨터 기능이었다. 이것이 축소되어 탑재되면서 누구나 고급 광원효과와 엄청난 폴리곤을 쓰는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화려한 3D게임과 고해상도 동영상 시장이 열렸고 여러 그래픽 카드 회사들이 생기고 사라졌다. 그 가운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엔비디아와 AMD이며, 현재 인텔이 다시 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에서 많은 플레이어가 기술과 가격을 가지고 소비자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기술로 인한 독과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달 20일, 엔비디아는 국내에서 자사 최신 그래픽카드인 RTX 40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엔비디아측은 "RTX 40 시리즈는 성능과 효율성, 인공지능 등을 완벽하게 갖춘 제품이다. 그리고 게임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에 대한 충분한 성능을 제공한다. 객관적으로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분명 성능은 좋아졌다. 레이트레이싱 연산을 제어하기 위해 쓰던 쿠다 코어 의존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인공 지능까지 이용해 더 리얼한 그래픽 구현이 가능해졌다. 전용 3세대 레이트레이싱 코어, 4세대 텐서 코어, 옵티컬 플로우 액셀레이터로 구동되는 DLSS 3 등 다양한 기술도 탑재됐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모든 게임 플레이에서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출처:엔비디아]


동영상 작업을 위해 AV1 인코더가 추가되어 H.264 대비 40% 높은 압축과 좋은 화질로 영상을 만들고 재생할 수 있다. 인코딩 시간은 RTX 3090 대비 절반 가량 줄어든다. 요즘 게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리얼 엔진이나 유니티 등에서 렌더링 성능도 대폭 높아졌다. 

문제는 너무 높은 가격과 전력소모, 그에 따르는 발열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Ada Lovelace 아키텍처 기반 GPU가 탑재된 RTX 40 시리즈는 현재는 4090 모델만 출시되었는데 국내 소비자가격은 263만원부터 시작한다. 하위 모델인 4080 모델은 해외 기준으로 오는 11월 16일에 출시될 예정이다. 

아무리 최신 제품의 최상위 버전이라지만 이 정도면 일반 게이머가 구입해서 쓰기에는 부담스럽다. 게임이나 상업 동영상 제작자, 암호화폐 채굴 같은 고부가가치 작업인력이 아니면 운영하기 힘든 제품군이 가장 먼저 나온 셈이다. 더구나 이 RTX4090을 안정적으로 쓰기 위한 권장 파워 출력은 매우 높다. 

엔비디아측은 공식적으로 900W~1000W를 언급하고 있다. 이 정도 출력을 오로지 GPU 한 부품이 소모한다는 의미다. 컴퓨터 전체로 치면 CPU나 SSD 등 다른 부품도 전력이 필요하니 전력공급장치인 파워서플라이 출력은 훨씬 높아야 할 듯 싶다. 더구나 이런 전력소모는 필연적으로 높은 발열, 그에 따른 고성능 냉각장치까지 요구한다. 여름철 같은 때에는 공냉식으로 과연 안정적 냉각이 가능할 지가 의문이다. 일부 커뮤니티 사용자는 이제 공냉식이 가고 수냉식이 필수인 시대가 오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런 제품은 예전 같으면 적절한 가격과 성능을 가진 소비자용 하이엔드 제품이 전부 발표된 후에 소수 사용자를 위해 나오는 특수 기업용 제품군 정도로 발표됐다. 주력 제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가장 공들여 만들어서 선보이며 스팟라이트를 유도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가장 열성적으로 제품을 구입하는 게이머를 핵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출처:이엠텍]


하지만 지금의 엔비디아는 이익 극대화란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능을 올리면서 전력소모와 발열을 적당히 억제하고 가격을 가장 효율적인 선에서 만든 하이엔드 제품 발표를 후순위로 둔 것이 바로 그런 신호다. 엔비디아는 어느새 인공지능 기업시장과 자율주행차 기업의 협업을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다. 비싸다고 느끼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오로지 이익만을 가속시키려는 것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공식블로그를 통해  출시 예정이던 2종의 RTX 4080 그래픽카드 중, 12GB 모델 출시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4080 제품에서 2개의 GPU를 사용하는 것은 혼란스럽기 때문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가격차에 비해 너무 열등한 성능을 보이는 이 모델의 판매부진이 뻔히 예상됨에 다른 조치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에 부족한 것은 성능도 인공지능도 아니다. 그안에서 들려야 할 소비자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 빠졌다. 소비자는 자신들을 위한 주력제품을 제대로 된 성능과 가격으로 설계해서 내주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