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엔비디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처럼 단순히 관세를 얼마나 매기고 그에 따라 관세로 보복하는 방식은 차라리 나았다. 이제는 마치 미소 냉전시절 공산권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첨단기술 수출규제법인 코콤(COCOM, 대공산권수출조정위원회)과 닮아가고 있다. 

1949년 서방 국가들은 옛 소련 등 공산권 국가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전략 물품 등의 수출을 통제하는 코콤을 설립했다. 때문에 어떨 때는 단순한 콘솔 게임기로 여겨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전략물자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공산권에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코콤은 동구권 붕괴로 동서 냉전이 끝나자 1994년 해산했다.

지금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팔지 말고, 생산시설도 짓지 말고, 생산설비나 기술도 수출하지 말라는 미국의 압력이 심각해지고 있다. 칩4 동맹을 통해 이미 그런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주로 미국 기업을 제외한 한국, 일본, 대만에게 압력을 넣었는데 정작 자국기업인 애플이나 인텔, AMD, 엔비디아는 중국과 밀접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미국정부가 이제는 자국 기업에게도 직접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8월 31일(현지시간) 씨넷 등 미국 주요 외신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로부터 러시아, 중국에 대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 규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출처:엔비디아]


엔비디아가 수출 규제를 받은 해당 제품은 H100, A100으로 추정되는데 고성능 인공지능(AI)에 활용되는 칩이다.엔비디아측은 미국 정부가 이 제품을 러시아와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선 새로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이번 규제로 4억 달러 정도의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한다. AMD도 미국 정부에게 비슷한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이런 고성능 GPU가 중국, 러시아에서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 양국이 긴장을 높이는 가운데 몇 년 전부터 미국은 자국 위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가 더이상의 첨단 군사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의도로 인해 그동안 비교적 느슨하던 자국 기업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9일 미국 공화당은 애플을 겨냥해 새롭게 출시한 아이폰 14에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한다면 집중적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출처:애플]


마르코 루비오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과 마이클 맥콜 하원 외교위원회 최고의원은 “애플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면서 “애플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에 의해 야기되는 보안 위험을 알고 있다. 그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간다면 정밀조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기업이 미국의 통신망과 시민 수백만 명의 아이폰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반도체가 단지 군사무기나 정부기관에만 쓰이는 부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은 전세계에서 직업과 인종을 초월한 많은 사용자가 있다. 엔비디아와 AMD 칩은 하이테크 이외에도 게임과 생산성 분야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칩이 특정국가에 수출되지 못하거나 특정국가로부터 공급되지 못하면 매출 피해, 공급망 축소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 

특히 취미영역인 게임시장은 단기적으로 부품 가격상승과 물량부족이란 두가지 영향을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판매시장 일부를 잃은 기업이 이익유지를 위해 개별 부품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아직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에서 생산을 못하게 되면 일단 충분한 물량이 적시에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보복대응을 하게되면 또다른 극단적인 조치가 나오며 게임시장에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출처:엔비디아]


이런 거대한 국가전략의 충돌은 결국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양쪽 정부 당국자가 보기에 게임 시장이나 첨단 IT산업계의 피해호소 같은 건 매우 일시적이며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난 후 해빙모드에서 이념과 국가를 초월해서 만들어졌던 글로벌 공급망.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던 '황금시대'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질서는 어떨까? 우리는 이전보다는 조금씩 비싸게 구입하고 불편하게 즐기며 살아야 할 지 모른다. 게임 시장 역시 예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쪽만큼은 여전히 좋았던 구조를 유지했으면 하는 건 필자의 지나친 바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