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그래픽 카드 가격, 국내수입사 책임인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상품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책임지는 시장의 흐름을 알아서 잘 조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늘 이 손이 잘 작동하는 건 아니다. 특정상황에 탐욕이 더해지면 시장기능은 실패하고 소비자는 큰 타격을 받기 쉽다.
지금 바로 대한민국의 그래픽 카드 시장이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원인은 전세계적인 사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서 현재 이런 모순이 가장 큰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에 반드시 필요한 부품인 그래픽 카드가 암호화폐를 위한 채굴기로 사용되고 팬더믹으로 물류가 지체되면서 말도 안되는 가격폭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2017년부터였다. 가상화폐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격이 갑자기 상승한 2017년 5월부터 채굴업자들이 GTX 10 계열 그래픽카드를 쓸어담았다. 그 뒤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서서히 하락하고 RTX 20으로 교체되기 직전에 간신히 원래 출시 가격을 회복했다. 그런데 2021년에는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한 데다가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물류대란과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반도체 공급부족까지 겹쳤다.
그러자 아예 시장에서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찾기 힘들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올해 2월에 지포스 RTX 3080은 기존 100만원이던 가격이 70만원이나 올랐고 그나마 이 가격에 구할 수도 없었다. 중하위 제품이 이 정도인데 상위 제품은 아예 매물 자체를 찾아볼 수도 없고 일부 판매처에서 무려 200만원 선에 팔렸다. 한때 보급형 게이밍 PC 견적에 들어갔던 GTX 1660 SUPER는 5월에 80만원이라는 고점을 찍은 이후 67만원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이 제품의 원래 가격은 26만~33만원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진정시킬 신제품인 RTX 4000번대의 출시는 2023년으로 연기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해외 상황에 비해서도 한국 상황은 너무도 소비자 구매조건이 열악하다. 두배 가량의 웃돈을 주지 않으면 하이엔드 제품을 살 수 없는 국내 그래픽카드 시장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오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분노의 방향은 현물시장에서는 용산전자상가 유통업자, 온라인 시장에서는 국내수입사로 향하고 있다. 특히 국내수입사들이 국내로 들여온 그래픽카드를 시중에 풀지않고 직접 채굴장을 운영하면서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3월 IT 유튜버를 통해 알려진 이 주장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급된 물량 대비해서 풀린 물량이 너무 적다는 점이 제기되며 국내 수입사들이 어떤 방식이든 시장을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사실 예전에도 이런 예는 제법 많았다. 십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로 고급 DSLR 카메라와 렌즈가 품귀현상을 맞았을 때 용산전자상가에서 벌인 유통업자와 상인의 횡포는 유명했다. 태국 홍수로 하드디스크가 귀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마다 국내수입사와 유통업자는 정상적인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해서 신뢰를 얻기보다는 온갖 수단을 다해 가격을 올리고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웠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는 그래픽 카드가 그 대상이 된 것 뿐이다.
눈에 보이는 이익 약간을 얻기는 쉽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 한때 한국의 아키하바라로 불리던 용산전자상가가 쇠락한 이유는 바로 이런 횡포로 인한 불신과 온라인 마켓의 활성화였다. 지금 그래픽 카드 수입사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도 결국은 고스란히 불신으로 돌아온다.
언젠가는 진정될 팬더믹과 암호화폐 핑계를 대기는 쉽다. 하지만 그 뒤에 불어닥칠 유통구조 개편에 대한 요구와 실제 움직임은 필연적이다. 속칭 꺽기 등 손님농락방식이 언론에 보도된 용산상가 상인들은 이후 등장한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에 의해 완전히 밀려났다. 제 역할을 못하는 일부 국내 수입사 역시 또다른 유통구조 등장에 무너질 수 있다.
국내수입사에게는 많은 방법이 있다. 수입, 매출 물량 현황을 공개하고 구매를 추첨식으로 바꾸고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등, 실수요자 위주로 파는 행동 등에 나서길 바란다.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국내 수입사가 유통구조 교란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건 피할 수 없다. 속된 말로 장사 하루이틀 할 것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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