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애플]



IT업계에는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곤 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만든다고 했을 때, 애플이 휴대폰을 만든다고 했을 때, 구글이 운영체제를 만든다고 했을 때를 보자. 당시 대부분의 반응은 진지한 성공가능성 여부를 넘어 무슨 농담이냐는 수준이었다.

지금 그와 비슷한 일이 또하나 벌어지고 있다. 현재 PC에 들어가는 CPU칩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인 인텔이 그 당사자다. 그런 인텔이 애플을 CPU 칩 시장의 위협적 경쟁자로 진지하게 인정한다는 사건이다.

발단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동안 인텔은 애플과 좋은 관계였다. 애플 맥에 CPU를 공급하고 아이폰에 일부 모뎀칩을 제공했다. 그런데 애플이 맥에 탑재되는 인텔 칩을 이후 3년동안 자체 칩으로 전부 교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은 그 첫번째 시도인 M1칩을 탑재한 새 맥북 모델을 시장에 내놓았다. 

[출처: 애플]


그런데 그저 저전력으로 가벼운 작업에나 적합할 거라고 봤던 이 M1칩의 성능과 전력소모량이 예상을 뛰어넘게도 너무 좋게 나왔다. 이렇게 되자 사용자들은 애플의 유능함에 감탄하면서 반대로 인텔이 그동안 기술개발을 게을리하면서 이익만 올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애플 맥에서 인텔칩이 사라지는 것만 아니라 노트북과 PC 시장 등에서 인텔칩이 퇴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텔은 이런 움직임에 이례적인 대응으로 맞섰다. 2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자사 칩이 여전히 애플실리콘보다 우월한 것을 보여주는 상세한 벤치마크 슬라이드쇼를 공유했다.  웹 브라우징과 MS 오피스를 놓고 애플 M1과 인텔 11세대 타이거레이크 프로세서를 비교하며 특히 생산성을 강조했다. 

[출처: 인텔]


인텔은 11세대 시스템이 PDF 내보내기 같은 일부 기능에서 M1보다 2.3배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웹 브라우저 크롬 고유 버전을 11세대 시스템과 M1에서 비교했을 때 11세대 시스템이 30% 이상 더 빠르고 온라인 사진 향상 하위 테스트에서 거의 3배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M1 맥북 프로가 줌과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것 같은 작업25개 중 8개에서 실패했다는 호환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테스트가 신뢰할 수 있는 서드파티 기관이 아닌 인텔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것이기 때문에 회의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첫 M1 맥이 시장에 나온지 3개월이 되었고 인텔은 이에 두려움을 느껴 자사에 유리한 항목만 뽑아 편파적 벤치마크를 했다는 의심이 있다. 

[출처: 인텔]

중요한 점은 벤치마크 수치가 아니다. 성능과 호환성에서 압도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시장 지배자 인텔이다. 겨우 첫 제품을 내놓은 애플칩을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위협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AMD 신제품에 대해 자사 저가칩에나 비교하라며 비웃고, 크루소 CPU에 대해 언급조차 안하던 때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더구나 M1칩은 애플에서도 엔트리급 칩 정도로 내놓은 제품이다. 앞으로 애플이 작정하고 고성능 칩을 내놓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궁금하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최근 인텔도 AMD 같은 경쟁자에 대응하기 위해 미세공정 대응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애플이 여태까지 IT업계에서 기술과 마케팅에서 선행리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출처: 애플]



모토롤라와 IBM이 만든 파워PC칩은 애플이 인텔로 옮겨가자 몰락했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일체형 바디를 밀어붙이자 모두가 그렇게 했다. 애플이 이어폰 단자와 전원어댑터를 빼면 경쟁 업체도 따라서 그것을 뺀다. 애플이 맥에서 인텔을 제거하고 모바일 칩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머지 PC업계도 그렇게 따라갈 것인가? 아마도 그것이 인텔이 애플을 위협적이라 인식하는 핵심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