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줄까?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라디오가 발명되고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도 스마트폰과 태블릿, 그 위에서 이용하는 SNS는 보다 재미있고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에게 그러냐고 묻는다면 아닐 수도 있다. IT기술, 영화기술의 발달에 오히려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특히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감각의 하나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술발전의 혜택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지를 생각해보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화려한 시각적 인터페이스도 소용이 없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재미있는 효과음과 멜로디도 효용성을 잃는다.


태풍 볼라벤이 서울에 상륙하던 날,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CGV상영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하나 열렸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영화상영이었다.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거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즐거움을 제공해주려는 뜻깊은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장애인들은 일반인과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가 없다. 영화는 화면과 음향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반쪽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청각 장애인에게 있어서 일반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이날 상영되는 영화는 R2B-리턴투베이스였다. 최신 전투기가 나오는 영화로서 이전에 시사회에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좌석의 진동과 물방울까지 경험할 수 있는 4DX로도 주요 장면을 체험한 바 있다. 도심을 뒤흔들 짜릿한 고공액션이라는 제목부터 인상깊다. 철저하게 항공촬영과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블록버스터급 영화이다. 이런 영화로 기술에 소외될 수 있는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척 의미있어 보인다.


사실 기술은 날로 발전한다. 한쪽에서는 단순한 2차원 화면을 넘어서 3차원으로 눈앞에 튀어나오는 듯한 3D영상을 구현한 기기들이 한창 홍보에 나서고 있다. 영화 아바타로 촉발된 3D 입체영상이란 화두는 한동안 계속 영상기기의 주요 발달 방향이 될 듯 싶다. 또한 스마트폰도 계속 발전하고 있어서 3G를 넘어 4G LTE를 향해서 가고 있다. 


이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이미 문화적인 혜택을 당연한 듯이 받고 즐기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 주변에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장애인을 위한 행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할 어떤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관람데이 - 알투비 상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관람데이 행사는 올해 4월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서 지원하는 이번 행사는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면서 한달에 한번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된다. 입장권을 나눠주는 부스가 준비된 가운데 영사기 위의 웃는 얼굴 두 개가 그려진 아이콘이 매우 인상적이다.



과연 영화를 어떤 형식으로 상영하게 될까? 나는 한번도 체험한 적이 없는 형태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는 과연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시작하기 전에 이렇듯 다르게 나온다는 안내자막이 나온다. 이제 시작이다.

당연히 영화에는 자막이 붙어서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외화를 더빙으로 볼 때의 자막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자막과는 약간 달랐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뿐만 아니라 소리로 들을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해주는 묘사도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진동으로 인해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것을 우리는 그냥 화면으로 보면서 들으면 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당연히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직접적으로 화면에 나오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설령 화면에 나온다고 해도 소리가 없는 지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화면에서는 '땅이 흔들리는 소리.' 이런 식으로 자막을 통해 써 준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서는 이런 배려가 담겨 있는 것이 신선했다.


시험삼아 귀를 살짝 막고 영화를 보았다. 이전에 이미 이 영화를 일반용으로 본 적이 있기에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단지 흉내에 그치지는 않는지, 어설픈 실력은 아닌지 체크해 보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소리를 듣지 않아도 영화를 즐기는 데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빠르게 지나가는 음향을 전부 자막에 담지는 못했지만 주요한 부분은 빠뜨리지 않고 담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동시에 영화화면을 소리로 들려주고 있었다. 일반적인 극장 사운드보다 크고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다소 귀가 아플 정도였지만 이 상영의 목적을 위해서는 아주 적합했다. 이번에는 앉은 채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며 상상해보았다. 영화 대본을 직접 참고해서 만든 듯 주요장면에서 어김없이 소리로 장면설명이 나왔다. 화면 없이 듣는 영화라는 것도 상상력이 잘 자극되기에 오히려 잘 만든 라디오 드라마를 청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와 있는 모두 영화를 잘 즐기는 듯 해서 나도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 알투비는 한국 영화로는 상당히 드문 장르이다. 고공에서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전투기의 공중전을 주요한 테마로 다룬 것이다. 제작발표회 때의 모습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당연히 이런 영화가 이제까지 없었다. 드라마 '창공' 이나 기타 작품에서 파일럿을 다룬 적은 있지만 주제는 당연히 전투가 아니었다. 



외국영화 가운데서도 전투가 주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영화 '탑건' 정도가 유일할 듯 싶다. 그래서일까 알투비는 한반도의 긴장상황과 한국공군의 실제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할 만 하다.


특히 게임 '에이스컴뱃'을 떠올리게 하는 전투기 끼리의 화려한 공중기동과 근접 전투장면은 수준급이다. 영화적인 상상력과 다소의 과장을 넣기는 했어도 한국영화로서 보기 드문 기술적 시도였다.


이런 좋은 시도에 가수 '비' 로 알려진 '정지훈'과 누구나 아는 '신세경'이 맡은 주연 사이의 로맨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다소 아쉬운 스토리 전개나 약간 허술한 디테일은 넘어가도 좋을 듯 싶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 영화가 이정도로 발전해서 우리만의 상황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다. 


이렇게 장애인과 함께 하는 영화관람을 마쳤다. 이런 행사가 꾸준히 좋은 영화를 통해 이뤄지기를 바란다. 밖에는 다소 사그라진 태풍이 불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은 따스했다. 첨단기술로 만든 영화 알투비가 나와 장애인 모두에게 따스함을 전해준 날이었다.

  CGV 장애인 영화관람데이 자세한 일정 : CGV 홈페이지(클릭)

* 이 글은 CJ E&M 블로그에 기고된 글입니다. (원문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