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에 전해오는 카나리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공기순환이 자유롭지 못한 탄광에 들어가는 광부들이 카나리아 새를 먼저 안에 집어넣어본다. 맑은 공기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공기가 조금 안좋아지면 바로 죽는다. 사람은 별로 느끼지도 못하는 정도에서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카나리아를 보고 경각심을 품는다. 아, 이대로는 큰일이 나겠구나. 공기가 안 좋아졌구나. 라고 말이다.



이 교훈은 법률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법률이 나보다 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를 보호해 준다면, 당연히 나도 보호받을 수 있다. 반대로 나는 아니지만 약간 힘없는 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그 다음은 바로 나일 수가 있다. 나보다 약한 자가 바로 ‘탄광의 카나리아’인 셈이다.


망중립성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그것을 본 내가 문득 떠올린 것이 이런 카나리아의 이야기이다.
(출처)


앞으로 P2P(개인간 파일공유) 등을 이용하면서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헤비유저(heavy user)’의 인터넷 사용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13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망 자원의 합리적·효율적 이용을 위해 통신사 등 인터넷접속 서비스 제공 사업자들이 일정 기준에 따라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등 트래픽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일시적 과부하 등에 따른 망 혼잡으로부터 다수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이용자의 공평한 인터넷 이용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제한적으로 트래픽 관리를 시행할 수 있다. 망 혼잡 관리를 위해 P2P 트래픽 전송을 제한하거나, 소수의 초다량 이용자에 대해 제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방통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업자들은 이같은 헤비유저에 대한 이용제한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인터넷 검색, 이메일 등 대용량의 트래픽을 유발하지 않는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방통위는 규정했다.


물론 사업자는 이같은 트래픽 관리 기준을 이용약관에 명시에 소비자들이 사업자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자기와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헤비유저처럼 인터넷을 쓸 일도 없으니 내가 쾌적하게 쓰기 위해서는 그들을 제한하는 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론은 바로 통신사들이 인터넷 종량제를 주장할 때도 썼던 방식이다. 얼핏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짧은 시각과 시야로 보았을 때는 분명 맞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통신사들이 노리는 함정이다.


인터넷 차단을 허용하는 망중립성, 옳은 길인가?

 

저기서 말하는 헤비유저의 기준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정하는가? 우선은 아마도 누가 봐도 너무하다 싶은 정도의 극단적 헤비유저만 선정할 것이다. 그러면 대대수는 절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통신사들이 만족할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최고 상위 헤비유저를 쳐내고 나면 그 다음 아래에 있는 비교적 많이 쓰는 사용자가 타킷이 된다. 그리고 그 사용자를 쳐내고 나면 그 아래의 사용자가 차단 위협에 노출된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정액제 사용자는 될 수 있으면 적게 써야 반갑다. 어차피 요금은 똑같이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헤비유저의 기준을 통신사가 정하는 한, 그것을 야금야금 아래로 내릴 건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러니까 저기서 말하는 헤비유저는 탄광에 먼저 들어간 카나리아인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망차단까지 논하는 저 조치는 결국 시간이 흐르면 조금 많이 쓰는 미래의 내가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1. 과연 미리 계약된 대역폭만 쓰는 사용자와의 계약을 통신사가 임의로 파기하고 차단할 권리가 있는가?


2. 정말로 극단적인 헤비유저가 있어서 조치가 불가피하다면, 그 기준을 왜 이해당사자의 한쪽 축인 통신사가 임의로 정하는가?


내 의견으로는 저런 조항을 포함한 이상 사실 ‘망중립성’ 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차라리 저 조항은 ‘망중립성 포기(예외)조항’ 이라고 말해야 마땅하다. 특정 사용자를 이미 차별하겠다는 예외규정을 만든 마당에 무슨 ‘중립’ 이란 말인가?




설령 규제가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엄격하고 객관적인 제도 하에 이뤄져야 한다. 1) 해당 헤비유저에게 경고조치를 충분히 한 뒤에, 2) 소비자와 통신사가 합의한 제 3의 기구에서 기준을 만들고, 3) 규제에 대한 최종 심의를 거친 뒤에 이뤄지는 것이 맞다. 망보호를 위한 긴급조치라면 나중에라도 그 정당성을 심사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조항은 결국 소비자의 불이익과 망중립성 포기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유선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 기준은 결국 현재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무료음성 통화 서비스인 보이스톡과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비롯해서 모든 타사의 음성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차단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악용이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저런 조항을 생각없이 허가하고 발표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이 매우 안타깝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정책이라고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사업자간 경쟁이 치열한 유럽시장과 3개사나 있어도 정책에 대한 경쟁이 없는 한국은 엄연히 다르다.




문득 초창기 인터넷을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이자 최신 기술의 상징으로 많이 쓸 것을 권고하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이제 너무 많이 쓰면 무슨 사회의 공공재를 손상하는 악으로 취급하려 한다. 세상을 풍요하게 해준다는 인터넷이 이제는 이것도 석유나 석탄처럼 고갈되는 자원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망중립성을 둘러싼 조치를 볼 때마다 입맛이 쓴 이유다.

 

(전문출처:  한겨레 오피니언 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