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인기있는 애플이지만 내놓는 제품마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분명 스티브 잡스가 화려한 발표회장에서 자신만만하게 소개할 때만 해도 관중과 언론은 열광한다. 그 자리에서만 말하자면 애플의 모든 제품은 세계의 유행이며, 미래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쇼가 끝난 후의 무대처럼 매출은 발표회장의 열광과는 달리 냉정하다. 팔릴 제품은 더 많이 팔리지만 안 팔릴 제품은 언제 뜨거웠냐는 듯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나는 현재 맥북에어를 쓴다. 저번달에 나온 신제품이 아니라, 작년 말에 나온 모델을 구입했다. 하지만 늘 최적화와 품질유지에 강점을 보인 애플이기에 충분히 믿고 있으며 나름 만족스럽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맥의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가 더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케이스다. 글쓰기를 주로 하는 관계로 나는 키보드의 키감과 디스플레이의 품질에 민감하다. CPU속도나 램용량 같은 건 그 다음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국내외 주요 노트북 제조사가운데 키감과 디스플레이 질을 세세하게 신경써서 제품을 출시하는 곳이 없다. 노트북을 사고 따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고, 외부 디스플레이를 따로 구입하면 휴대성이 떨어진다.그 가운데 그나마 맥북에어는 이런 내 특이한 취향을 잘 만족시켜준 모델이다. 다소 비싸던 가격도 지난 모델을 중고로 구입하면 어느정도 해결된다.

그런데 이건 무슨 재미있는 우연일까. 이렇게 만족스럽게 쓰던 맥북에어로 인해 오히려 나는 이 운영체제가 가진 문제점 하나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애플을 나름 좋아하면서도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더욱 짙어졌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가장 주목받는 애플의 운영체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iOS다. 점유율도 높고 앱스토어를 통한 생태계 구축도 잘 되어 있는 이것은 애플의 성장과 매출증가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애플을 먹여살렸던 매킨토시의 운영체제 OS X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릴 정도다.



그래도 얼마전 발표된 맥의 새로운 운영체제 라이언은 오랫만에 주목받았다.  

라이언은 기본적으로 좋은 운영체제다. 윈도우에 비해 빠른 속도와 좋은 안정성,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요소를 도입한 친근함, 64비트 지원과 각종 신기술 도입까지 매우 훌륭한 부분이 많다. 맥 앱스토어와 페이스타임을 품고 있으며 요즘 새로 출시되는 애플의 모든 매킨토시는 기본적으로 이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 지원에 충실한 애플답게 기존에 쓰던 맥도 운영체제를 간단히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다. 시험삼아 운영체제를 라이언으로 업그레이드해본 나는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얼핏 사소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바로 새로운 운영체제인 이 라이언이 이전 운영체제 스노우레퍼드에 비해 무겁고 버벅거린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MS의 윈도우만 해도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도저히 이전 하드웨어에서 쾌적하게 쓸 수 없어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 윈도우 특수라고 말하는 이것 때문에 인텔과 삼성의 주가가 변할 정도다. 새로운 운영체제라 그만큼 편리하고 강력한 기능이 있기에 그만큼 하드웨어 자원과 용량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가 새삼 치명적 문제라고 하는 걸까?



그건 바로 애플이기 때문이다. 애플에 대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는 매우 높다. 바로 그 기대와 열광 때문에 애플은 다른 회사에 비해 말도 안되게 높은 하드웨어 이익률을 가져갈 수 있다. 또한 제품이 나올 때마다 광고를 안해도 알아서 사용자들이 광고해주고 줄을 서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애플이 당연하지만 평범한 성능을 내놓는다면 대체 왜 열광하고 비싸게 산단 말인가?

우선 내가 이전에 쓰던 운영체제 스노우레퍼드를 보자. 일명 ‘눈표범’으로 불리는 이것은 오히려 2년전 버전인 ‘레퍼드’보다 빨라졌다. 어떤 책에는 두배나 빠른 업무처리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2년 후에 나온 운영체제가 최적화와 개선으로 인해 도리어 빨라졌다는 이것은 애플이 가진 능력과 방향을 잘 보여준다. 맥의 사용자들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하드웨어에 집착해야 하는 윈도우 사용자를 비웃으면서, 쾌적한 환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나온 라이언은 다르다. 농담삼아 ‘표범’은 빠른 동물이지만 ‘사자’는 느리잖아. 그러니까 강력한 대신 느린가보다. 라고 말할 만큼 라이언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분명 상당한 기능추가가 있었고 인터페이스도 변화했다. 또한 편의성도 늘었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감수하기에 계속 버벅거리는 움직임은 특히 맥북에어 같은 저사양에서는 참기 힘들다.


애플 맥 라이언,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문제는 이런 라이언이 또한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나온 운영체제라는 데 있다.

우선 라이언은 맥이 지난 파워PC의 소프트웨어를 돌리기 위해 포함해오던 기능 ‘로제타’를 더이상 지원하지 않는다. 좋은 소프트웨어는 있지만, 종류가 별로 많지 않는 맥에 있어 이건 상당한 타격이다. 한국에서 보자면 파워PC용으로만 나와있는 ‘아래한글’이 라이언에서는 실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패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맥북에어와 함께 라이언은 아이패드의 인터페이스를 대거 도입했다.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넘기는 것 때문에 기존 맥의 트랙패드에서 왼쪽으로 쓸어넘기던 것을 오른쪽으로 넘기는 것으로 바꿀 정도였다. 맥 사용자의 혼란보다는  iOS의 편리함을 맥에 도입해 두 운영체제를 장기적으로 통합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존 맥에 익숙해진 사용자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옵션으로 조절할 수 있기에 선택권은 있지만 기본설정은 반대였다. 좌측통행을 하다가 어느날 우측통행을 하라고 강제할 때 느낄 불편과도 비슷하다. 이 외에도 인터페이스 개선을 위해 엑스포제나 스페이스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바꾸고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들며 나온 라이언이 무겁고 느리기까지 하다? 이건 치명적이다. 보통 옛날 코드와의 지원을 끊으면 그만큼 빨라지고 안정성이 강화되어야 그나마 사용자들이 납득한다. 그런데 라이언은 맥북에어는 물론이고,  i5 를 채택한 맥북프로에서도 스노우 레퍼드에 비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느려졌다. 이건 속도를 요하는 사진이나 동영상 작업을 맥에서 하는 사용자에게는 매우 불편한 요소다.

문득 MS가 겪었던 윈도우 비스타의 악몽이 떠오른다. 무겁고 느리기만 하기에 사용자들이 절대 쓰려고 하지 않던 비스타를 강제로 탑재하던 컴퓨터 회사들은 윈도우 XP로 다운그레이드하는 소비자를 잡지 못했다. 결국 MS가 속도를 개선한 윈도우7을 내놓음으로서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맥 라이언이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최적화를 통한 속도향상이다. 스노우 레퍼드에 비해 너무도 차이나는 쾌적함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나는 라이언을 지우고 다시 스노우레퍼드로 돌아와서는 빠르고 쾌적함을 즐기고 있다. 라이언이 탑재되었을때 내 맥북에어는 그야말로 ‘넷북에어’ 였다. 나온지 일년도 안되고 정가 백이십만원이 넘었던 노트북이 넷북 정도로 버벅거렸던 것이다. 이걸 참아줄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 



애플이 정녕 애플답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윈도우처럼 새것이 나올 때마다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이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지금, 애플에게 라이언이 나갈 길을 묻는다. 이제 첫걸음을 떼어놓은 사자를 좀더 다이어트시켜 빠르고 날렵한 맹수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나는 맥 라이언이 제발 '애플의 윈도우 비스타' 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