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요즘 많이 말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상생’이다. 경쟁이 최선이라 말하며 무한경쟁을 부추긴 나머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논리가 자연스러워진 사회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서로가 함께 살자는 의미의 단어 상생은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아무리 상생을 말하고 시너지 효과를 부르짖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 뜨면, 누군가는 죽는다. 특히 IT제품에서 이런 현상은 매우 두드러진다. 고가에 속하는 기기들을 전부 사서 소비할 만큼 소비자들의 지갑은 넉넉하지 않다. 그러기에 어딘가에 많은 돈을 들이면 필연적으로 다른 곳에 쓸 돈은 적어진다.

우연히 인터넷 구석에 적힌 기사를 하나 보았다. 사실 이런 건 기본적으로 IT블로거들이 이슈로 삼을 만한 소재가 아니다. 전문적인 부분도 있고 그다지 임팩트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 기사가 어쩐지 눈에 띄였다. (출처) 



지디넷닷컴은 인텔이 아이비브릿지 생산 라인인 22나노(nm) 생산 공정을 중단했다고 9월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내년 PC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 비용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아이비브릿지 출시를 늦출 뿐 아니라 22나노 공정으로 전환하는 시기도 늦어질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기존 샌디브릿지는 32나노 공정이다. 
 
아이비브릿지는 인텔이 최초로 '트라이게이트(tri-gate) 트랜지스터' 기술을 적용한 칩셋이다. 이 기술은 트랜지스터를 2차원 평면이 아닌 3차원 공간에서 제작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인텔은 3D 트랜지스터 설계 기술을 발표하면서 "기존 반도체에 비해 성능은 37%, 전력소비량은 50% 이상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전력 소모를 줄여 모바일 칩셋 영역을 넘보겠다는 인텔의 의지가 담긴 기술 공정이다. 현재 아이비브릿지 출시 시기는 데스크톱용 프로세서가 내년 5월, 노트북용은 내년 4월로 점쳐지고 있다. 
 
전문적 용어가 많지만 간단히 줄여보자. 현재 PC시장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성능을 보이는 인텔의 CPU 다음에 나올 차세대 CPU가 연기되었다. 그 이유는 나와봤자 그다지 많이 팔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인텔이 수요부진 때문에 다 개발을 마친 칩의 양산을 연기하는 일이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보통은 아무리 불경기라도 PC 수요만큼은 항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째서일까? 인텔이 차세대 칩까지 연기할 정도로 심각한 수요부진은 왜 오는 걸까? 한번 그 이유를 따져보자.

  심각하게 침체된 PC시장, 원인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들 수 있다. 원래는 스마트폰과 상관없이 둘이 함께 동반성장할 거란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이 나오고, 그것이 넷북시장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웹서핑을 위한 PC수요를 대체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더이상 비싸고 무거운 PC를 추가로 사지 않게 된 것이다.

더구나 스마트폰과 태블릿 구입으로 인해 소비자의 지갑은 이미 빈 상태였다. 그 위에 추가로 컴퓨터를 살 생각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



두번째로 PC의 운영체제와 기능에서 혁신이 정지해버린 것이 문제다. 분명 매년 더 빠른 칩이 나오고 더 많은 메모리와 저장장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배하는 윈도우 운영체제는 이런 하드웨어 발전의 결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인텔과 삼성이 미세공정을 통해 향상시킨 속도와 용량을 비웃기라도 하듯 윈도우는 늘 느리고 둔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PC에 대한 발전 기대를 버렸다. 

그렇게 기대가 사라진 PC는 그저 일상용품으로 격하되었다. 운영체제는 독과점이고, 다른 경쟁 운영체제는 미약했다. 돈을 써도 쓴 만큼의 만족감이 오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PC에 대한 기대를 접은 대신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돌렸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폭발적 성장을 하는 대신, PC시장이 쇠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물론 PC 운영체제로 윈도우만 있는 건 아니다. 리눅스라든가 매킨토시는 비교적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점유율이 낮고 그만큼 소프트웨어가 풍부하지 않다. 결국 이대로 PC시장은 끝없는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일상용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 자체가 산 역사라고 할 만큼 강자인 인텔이 경기부진의 걱정으로 새 칩의 생산을 연기했다는 뉴스는 큰 충격이었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 걸까? 스티브 잡스는 새 맥북에어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아이패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라고.

그렇다. P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게 길을 물어서라도 예전의 인기와 수요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소비자의 기대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가슴두근거리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