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T선진국이라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지는 한참 되었다. 이제는 새삼 한국이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르다느니, 가구당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뉴스는 들어도 별 감흥도 없게 되어 버렸다. 그만큼 이제는 그런 인터넷 보급이라 기술수준은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사람들이 전부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인터넷 인프라의 문제일 뿐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선과 그 안을 달리는 데이터의 빠르기 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의 질과 그것이 파생시키는 부수적인 산업이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매우 의외인 것이 한국은 아직도 전자책이 전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기대는 많이 받고 있다. 또한 부분적인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전자책 성장 속도라든가, 아이북스로 대표되는 컨텐츠 시장의 성장에 비교하면 한국의 전자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전부터 시도해왔던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책 시장은 물론이고, 태블릿을 맞아 새롭게 열린 시장에서도 한국은 전혀 의미있는 성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단지 한국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어서? 아니면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너무 사랑해서? 사용자 모두가 범죄자들이라서 불법복사만 일삼기에?



아니다. 모두 틀렸다. 한국의 전자책 시장의 침체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자.

한국의 전자책 시장, 어째서 부진한가?

1) 한국 도서시장의 구조가 전자책 유통과 잘 안맞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서시장은 근본적으로 말해서 거대 출판기업의 부재, 저자와 출판사와의 신뢰부재, 복잡한 유통구조의 비효율성, 출판 기획과 서점유통의 전근대성으로 완전히 꽉 막혀있다.


아주 간단히 풀어말하면 출판사쪽에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세계에 경쟁할 만한 자금력이나 기획력을 가진 가진 기업이 없다보니 자금의 흐름이나 집행이 매무 주먹구구식이고 스케일이 작다. 또한 그러다보니 영세한 출판사든 조금 형편이 나은 출판사든 틈만 나면 저자의 인세를 적게 주거나, 주지 않으려는 쪼잔한 머리만 쓰고 있다. 그럴 정성으로 더 많이 팔아 엄청난 수익을 거두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출판기획자와 출판사, 인쇄소와 배본을 위한 대형총판, 대형서점, 도서대여점 등이 많은 단계를 거쳐 저마다 마진을 취하며 최종 소비자를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정작 컨텐츠를 생산하는 작가와 출판사 자체는 손에 쥐는 돈이 적고, 반대로 소비자는 비싼 값에 책을 사야 한다. 배추나 고추 같은 농작물의 복잡한 유통구조와 비슷하다. 출판계엔 농협 같은 대형브랜드 기업도 없다.

그러니 출판을 기획하는 사람도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 뜨면 그걸로 모든 이익을 다 보려 하고, 서점 유통에서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현금이 아닌 6개월 짜리 어음으로 결제를 해왔다. 이런 식이 바로 종이책 시장이다.

그런데 전자책 시장은 이런 유통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이익당사자들이 전자책에 적극적일 수가 없다. 잘못하면 중간에 세 단계 정도의 업자들은 전자책 시대에 죄다 실업자가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다.

과연 한국의 대형 출판사와 서점이 진심으로 전자책에 관심이 있는지도 의심이 된다.
그저 방어적인 입장으로 자칫 가만히 있다가 외국 전자책에 의해 '한방에 훅갈 지도 모른다.' 는 염려 때문에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느낌이 강하다.




2) 한국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는 공짜 컨텐츠를 먹고 산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에 가깝다. 그러나 이건 그저 평균 수치일 뿐이다. 실제로 현실 사회에는 취업도 못한 청년 실업자와 등록금도 못내는 대학생, 자녀 과외비에 허덕거리는 가장과 88만원 세대 들이 우글거린다. 그래도 이들은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인터넷을 가입하고, 스마트폰을 장만하며 비싼 통신비를 낸다.

그러다보니 이들 통신 인프라를 광고하고 영업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것은 단 하나다. '인터넷만 있으면 모든 게 공짜!'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앱도 비슷하다. 소셜커머스나 각종 할인서비스도 이제는 스마트폰이 필수가 되어간다. 이런 서비스는 인프라 보급에는 분명 좋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자. 과연 인터넷만 있으면 모든 게 공짜던가?

그래, 분명 공짜로 구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대장장이가 시퍼런 칼을 보여주면서 '이거 하나만 사면 모든 게 공짜!' 라고 말할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칼을 가지고 강도질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2천년도부터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의 보급을 위해 벌인 캠페인은 한국 사람들의 컨텐츠에 대한 의식을 바꿔버렸다.



차라리 종이책은 형편이 났다. 종이란 물질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데이터화되어 인터넷에 올라가는 순간 결국 책 역시 이런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컨텐츠로 분류되어버린다. 이건 누구나 대충 짐작하는 사실이며 출판사와 작가들 역시 이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이런 걱정속에서 활기찬 시도를 하지 못하고 마냥 침체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게 언제까지 갈까? 우리가 주도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힘을 가지지 못하면 그 끝은 비참하다. 쇄국정책의 끝은 강제개항과 식민지배였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그저 두려워하고 주저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한국 출판계는 아마존과 아이북스의 포화 앞에 강제로 문을 열고 지배당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