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할 때, 사실 나는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터치 기반의 휴대용 기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나는 이미 초기 미니 노트북인 리브레토에서 PDA 팜과 클리에, HP의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용자 경험을 거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지고 다니며 뭔가를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상당히 많은 시도를 해보았기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가능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못할 것을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패드는 분명 그리 신기한 물건도 아니었고, 마법의 모바일 기기도 아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회사의 모바일 기기들이 맨몸으로 시장에 부딪치며 성공하고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잘 짜여진 하나의 기기였을 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보다 편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했을 뿐이다.

하지만 굳이 한 가지 말해야 겠다. 그런 아이패드에서 내가 가장 신선했고, 매력을 느낀 부분은 전자책, 그 가운데서도 전자잡지였다. 이전에 나온 어떤 모바일 디바이스도 이처럼 감성적이고 원활하게 잡지를 구현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고 눈이 편하게 축소된 화면에서 화면비율에 따라 레이아웃을 바꿀 수 있는 구성은 감탄사까지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다소 한계는 있어도 아이패드의 한계라면 곧 현존하는 모든 모바일 기기의 한계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굳이 아이패드1을 들고 나올 때 책과 잡지를 강조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이때문일까.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바로 이 잡지에서 뚜렷한 사용자 구별을 보인다.

아이폰4는 아무리 고해상도 레티나를 채택하고 있어도 물리적으로 작은 화면이란 한계가 뚜렷하다. 이에 비해 아이패드는 잡지의 느낌을 보다 가깝게 구현하면서도 눈이 편하다. 따라서 잡지는 최고 장점이라 볼 수 있다. 글자 위주의 책은 몰라도 그래픽이 따라가는 레이아웃이 잡힌 잡지는 아이폰의 4인치도 안되는 스크린에서는 구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 때문일까. 해외에서도 아이패드와 결합된 전자잡지가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만화책까지 포함되어 매출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와이어드의 아이패드 버전같은 경우는 종래의 종이 잡지 구성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구성을 했다. 특정 그래픽을 클릭하면 동영상이 나온다든가 선택지에 따라 다른 곳으로 점프하고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런 좋은 실적에 자극받아 국내잡지계도 발빠르게 아이패드에 진출하고 있다. 잡지 여러 종류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더 매거진을 비롯해, 스터프, 월간산, DCM 등 다양하다. 이들은 같은 잡지라고 해도 책장을 넘기고 정보를 보여주기 위한 인터페이스에 따라 몇가지 유형이 있다.



1) 종이잡지를 스캔한 것처럼 그대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장점으로 독자들은 시중에 팔리는 종이잡지와 완벽히 같은 화면배치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단점으로는 화면 사이즈나 각종 비율이 맞지 않으면 최적화가 덜 되어 가독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너무 구태의연한 포맷으로 성의가 없어 보인다.

2) 종이잡지의 레이아웃을 기본으로 부분적인 다이내믹함을 추구한 방식이다. 글자와 사진을 따로 집어넣어 그때그때 믹스해서 보여준다. 화면 비율이 바뀌거나 확대될 때도 즉각 반응해서 효율적인 배치로 정돈되므로 깔끔하다. 보다 전자잡지 다운 좋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 역시 기본적으로 그림과 글자뿐이라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 와이어드의 경우처럼 아예 멀티미디어 잡지로 완벽히 다시 만든 방식이다. 동영상이 나오는 페이지도 있고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사진 자체가 몇 장씩 전환되기도 한다. 스크롤 방식도 옆으로 넘기다가 위에서 아래로 넘기기도 하고 화면 특정 부분을 클릭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고 재미있다. 지루하지 않고 태블릿이란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방식이다. 하지만 다소 어려운 조작성으로 인해 난해한 인터페이스로 비쳐질 단점도 있다.

전자잡지, 어떤 인터페이스가 가장 좋을까?



나는 이제까지 태블릿이란 플랫폼 변화의 특성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포맷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생각은 아직도 확고하다. 그렇지만 잠시 달리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첨단이나 기술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보편화된 컴퓨터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태블릿에 완전히 최적화된 잡지라는 건 새로나온 난해한 퍼즐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책 하나 보는 데 뭐 이리 여러가지 조작을 익혀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이 미래니까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악당(?)이다.

그럼 대체 정답은 뭐냐? 라고 되물을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면 자기모순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원론적이고도 당연한 대답을 말하겠다.

가장 쉬운 조작법으로 모든 변화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실험실의 기술자들은 언제나 세상의 일반인들이 언젠가 자기 수준이 되어 어려운 기기도 잘 다룰 거라 착각한다. 반대로 일반인들은 기술자들이 언젠가 모든 일반인이 척척 다룰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줄 거라 착각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술자들이 쉽다고 내놓은 제품이 일반인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고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일반인의 요구를 수용해 기술자를 쥐어짜서 정말 쉬운 제품을 만들었다. 아마 지금의 스마트폰을 훨씬 예전에 만들었다면 터치스크린이 아닌 수많은 기능키와 조이스틱으로 덮인 조작법이 나왔을 지 모른다. 그만큼 인터페이스란 결국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준다.

전자잡지는 아직 초창기에 불과하다. 훨씬 발전된 다양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서 아직은 다소 어려운 조작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가장 간단하고 쉬우면서 강력한 인터페이스가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위의 세 가지 방식이 경쟁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전자잡지 업체들의 분발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