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2의 발표와 연속된 히트는 드디어 제품을 넘어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으로 굳어져가는 양상이다. 이제까지 그래도 자사의 특성을 유지하며 개별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에서 애플을 따라가려고 하던 업체들이 전면적으로 애플의 방식을 따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이 초창기 내지는 개척기의 시장에는 매우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바 있다. 일상재가 아닌 시장이고, 컨텐츠가 확보되지 않는 초기 시장에서는 애플의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다. 따라서 지금 개척기를 약간 넘어선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주춤거리는 반면, 반대로 개척기를 막 맞이한 태블릿에서 아이패드가 독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가의 기기를 구입해서 당장 쓸만한 것도 없고, 기기의 업그레이드나 품질조차 믿을 수 없다면 누가 그걸 사려고 할까.

어쨌든 그런 면에서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과 이를 따라하려는 글로벌 업계의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뉴스를 보자. (출처)

애플을 공격하던 업체들이 결국 애플의 모델을 그대로 채용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는 애플 따라하기 일색이다. 누가 더 빨리, 제대로 베끼면서 차별성을 살짝 곁들이느냐의 경쟁으로 보일 정도다.

애플 따라하기는 아이폰의 정전식 멀티터치와 센서 탑재 등 기능에서 시작해 다른 핵심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와는 거리가 있던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운영체제 '바다'를 공개하고 글로벌 개발자 육성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삼성은 지난 9일 한양대와 2012년부터 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기로 협약을 맺고 인력 육성에 나섰다. 엘지(LG)전자도 이달 초 올해 연구개발인력 채용에서 소프트웨어 인력 비중을 크게 확대한다고 밝혔다. 삼성과 엘지는 지난해 말부터 금형 기술인력 확보에도 나섰다. 애플 제품 경쟁력에 금형 기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애플은 단일 제품으로 고가시장에 주력한다. 경쟁업체들은 애플이 개척한 시장이 대중화하면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빨리 따라가기' 전략을 펴왔다. 하지만 점차 이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11일 애플이 아이패드2를 출시하면서 기능 개선에도 값을 유지해 모토롤라, 삼성, 휼렛패커드, 림 등 추격자들이 난감해졌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갤럭시탭의 값을 10만원 내렸다. 제이피(JP)모건은 최근 낸 시장보고서에서 "올해 출시예정인 태블릿피시 8100만대 중 약 40%인 4790만대만 판매되고 나머지가 재고로 남아 아이패드 아닌 제품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태블릿만이 아니다. 애플의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은 최근 "애플 제품이 부자 전용이 되는 걸 원치 않으며 애플은 어떠한 시장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애플이 프리미엄 시장 너머의 대중시장까지 넘본다면 경쟁도 달라진다. 애플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판을 짜면서 만들어낸 시장에서, 애플이 전략을 수정하면 추격하던 업체들이 한꺼번에 들러리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노출된 것이다. 애플의 매트릭스에 모두 빠져든 것일까?



특히 애플의 팀쿡이 한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애플제품이 부자전용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이 말은 애플의 최고 제품이라고 해도 옛날처럼 무리하게 1만달러짜리 제품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는 말이다. 또한 애플은 어떠한 시장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말은 애플이 저가 보급형 제품을 만들지 않았다가 시장주도권을 빼앗겼던 과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태블릿의 상황은 미국에서 막 개인용 컴퓨터가 태어나서 각 업체가 저마다의 표준을 들고 난립하던 8비트 컴퓨터 때와도 비슷하다. 이것이 미래라는 건 알지만 대체 어떤 방향으로 얼만큼 빨리 움직일 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애플2 컴퓨터를 가지고 시장을 막 지배하던 초기 상황 말이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태블릿인 아이패드를 선택하고 다른 태블릿을 외면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단순화 해보면 결국 하나다. 쓸만한 소프트웨어가 많이 나와있는 곳이 아이패드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값도 상당히 싸다.

여기서 만일 애플이 고가정책을 취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당장은 계속 애플이 앞서겠지만 싸면서 어느 정도 품질을 유지한 플랫폼이 조금씩 확보된 경쟁업체에도 앱이 늘어나고 결국 시장이 고가시장과 저가시장으로 양분화된다. 그리고는 각자 어느쪽이 표준이 되기위해 격렬히 경쟁하고, 결국은 저가시장이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IBM의 승리가 바로 이 경우다.



그러나 애플이 만일 고가 정책만 고집하지 않고 중가 이하의 플랫폼을 내놓는다면 초반의 승세가 좀처럼 뒤집힐 확률이 없다. 나머지 업체에게 저가전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업체가 뒤늦게 애플을 모방할 수 밖에 없는 건 이런 열세를 뚜렷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애플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할 수 있을까? 모방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뉴스의 나머지 부분을 보자.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공대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임규태 박사는 "앱스토어를 통한 상생의 생태계를 만든 애플은 소비자인식, 시장지배력, 현금 보유에서 따라가기 힘든 벽을 만들고 있다"며 "애플과 경쟁하려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들의 기존 개발절차를 뒤집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애플을 따라하는 자체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지금 통합된 서비스를 제공받기를 원한다. 좋은 사용자경험을 준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애플이 하고 있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독특한 개발문화와 절차, 회사구조에서 비롯된다. 애플과는 기업체질과 의사결정구조 등이 모두 다른 기업들이 순조롭게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아마도 애플을 정말 모방하고 싶다면 기업구조부터 전부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 그런 아픔과 희생까지도 각오한다면 정말로 제 2 의 애플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애플이 외계인으로만 이뤄진 회사도 아니고,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다른 회사에게도 가능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과연 수십년 이상 된 회사체질을 애플식의 이질적인 체계로 뜯어고쳐가면서까지 애플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할 수 있을까. 아마도 체질은 고치지 않은 채고 피상적인 겉부분만 모방하려고 시도할 거 같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애플을 단지 모방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정말 그들의 성공이 탐난다면 아예 기업체질을 포함해 애플 그 자체가 되라. 단지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조롱만 당할 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