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독재자에 맞서 싸우는 명랑한 도전자가 되자.' 라는 애플의 광고전략은 성공했다. 비록 매출이나 점유율에서는 맥이 IBM 호환기종을 앞서지 못했지만 열광스러운 지지자들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8비트 컴퓨터인 애플2는 상대적으로 열광적 지지자가 별로 없었다. 이때는 아직 개인용 컴퓨터를 쓰는 계층이 일부 컴퓨터 애호가나 엔지니어 등을 핵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애플이 시장의 최고 강자였기에 새삼 열광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이미 쓰고 있고, 확고한 1위인 제품을 가지고 우월감이나 해방정신을 퍼뜨릴 필요가 없다.



반면 매킨토시는 애플이 모든 면에서 핀치에 몰린 상황에 나와서 광고전략으로 인해 일약 문화현상의 중심이 되었다. 초기에는 막상 뭔가를 할 만한 소프트웨어가 없었음에도 모두가 열광했다. 또한 컴퓨터가 막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상황에서 보다 감성적이고 개성적인 미래를 본다는 컨셉도 좋게 작용했다. 쉽고 쓰기 편하며 개성을 지켜주는 컴퓨터 vs 어렵고 몰개성적이며 억압된 분위기의 컴퓨터 를 비교하는 건 마치 멍청한 정치인을 풍자하거나 적대국을 놀리는 것만큼 일방적인 쾌감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었다.

애플의 광고전략은 제품과 맞물려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애플의 이미지는 언제나 쾌활하면서, 딱딱한 것을 싫어하고 예술적이며, 감성적이다. 따라서 애플과 경쟁하거나 사이가 나쁜 회사는 언제나 그 반대의 이미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처음에는 IBM이 그랬고, 나중에는 마이크로 소프트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맥의 운영체제를 카피했다는 의혹을 받는 윈도우가 성공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극히 강해졌다.



맥과 애플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그 열성만큼 IBM과 MS를 싫어하며 조롱한다. 단지 경쟁사 정도로 보는 게 아니라 명백한 스스로의 '적'으로 본다. 생산자와 소비자, 제작자와 팬이라는 관계를 떠나 애플의 제품, 혹은 스티브 잡스와 스스로를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거대한 문화현상을 일으키며 애플읋 세계에서 유일한 업체로 밀어올리는 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애플은 실제로 IBM등과 비교해 업적이 월등하지 않음에도 그 이상의 존경과 열광을 받고 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당연한 일이지만 순작용과 부작용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애플이 일으키는 문화현상의 빛과 어둠은?

우선 순작용을 보자. 애플이 일으키는 문화현상은 전반적으로 컴퓨터와 각종 IT기기를 보다 쓰기 편하고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애플 덕분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보다 빠르고 널리 보급되었다. 비록 맥이 아닌 윈도우가 더 큰 역할을 했지만, 윈도우 자체가 맥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를 운영체제기 때문이다.

또한 마우스를 비롯해서 USB, 와이파이 무선랜 등에서 애플은 늘 업계를 선도해서 새 기술을 채용하고 보급했다. 애플이 제품에 신기술을 채택하면 애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제품을 구입해서 써보며 편리함을 역설하고,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구입하면 타 업체들이 천천히 그 기술을 채용하는 식이다.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이런 문화현상으로 애플은 늘 신제품 발표에 따른 사람들의 거부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애플이 어떤 제품을 발표하든 일단 초기의 동력은 충분히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이 낸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화현상과 초기 호평이 확보된다는 면에서 애플은 상당히 유리한 출발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애플이 쌓아올린 업적과 이미지 전략의 성과다.

그럼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분히 애플의 추종자들이 마치 일신교의 종교집단처럼 배타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애플이 항상 부당하게 탄압받거나 모략당하고 있으며 따라서 애플의 경쟁업체는 항상 '적' 이고 '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지 경쟁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97년이다.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해서는 당시 세계를 휘어잡은 MS의 빌게이츠와 협상을 해서 공식제휴를 발표했다. 당시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가 MS와의 제휴를 알리며 빌게이츠의 모습을 프로젝터로 투사해 인사시켰을 때, 자리에 앉아있던 애플 팬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 운영체제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막상한 위치에 있던 MS가 애플을 돕고 맥을 위해 익스플로러와 오피스를 공급하고 투자까지 하겠다는 파트너 선언의 자리였다. 그럼에도 화면에 빌게이츠의 모습이 비쳤을 때 일부는 적극적으로 야유를 보냈다. 일부는 침묵하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탄과 손을 잡은 예수를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전에는 그것을 다분히 즐기기도 했던 그였지만 일단 제휴를 한 이상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빌 게이츠의 인사가 끝난 후, 스티브 잡스는 철없는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MS의 승리가 애플의 패배가 아니며, 애플의 승리가 MS의 패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컴퓨터 시장이 함께 커진다면 둘 다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애플팬들도 그 점을 수긍했다. 야유는 멎었다. 잡스에게 속지 말라고 외치던 말도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애플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변할 리는 없었다. 애플은 단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기에 일시적으로 어둠의 제국과 손을 잡은(혹은 손잡은 척 하며 속여넘기는 중인) 도전자일 뿐이었다. 적어도 문화현상을 만드는 팬들은 그렇게 납득하며 넘어갔다. 이후 애플이 다시 힘을 회복하고 MS와의 제휴가 느슨해지고 난 후에, 스티브 잡스 역시 다시는 MS를 옹호해주지 않았다.

과연 애플만이 정의의 도전자이고 나머지 경쟁자들은 암흑의 제국일까? IBM을 거쳐 MS와 구글에 이르기까지 이런 프레임은 매번 형태와 영역을 바꾸며 반복되고 있다. 상대가 비도덕적이면 더욱 좋지만 도덕적인 회사여도 상관은 없다.



애플과 경쟁하는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 딱 두 부류로 나뉘어 매도된다. 힘이 약한 회사는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애송이로, 힘이 있는 회사는 부당하게 애플을 탄압하고 누르려는 악당으로 말이다.

미국에서는 한동안 MS가 단골로 조롱당하다가 근래에는 구글과 어도비가 욕을 먹으며 악의 제국이 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삼성이 딱 그런 프레임에 맞는 존재로 매도당하고 있다. 원래 한쪽을 정의로 만들려면 다른 한쪽은 악당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들이 한때 친구였는지, 지금도 사업상 파트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이 있어야 아군을 구별할 수 있고 단결시킬 수 있지 않은가.


애플이 일으키는 문화현상은 이렇듯 광고전략과 맞물려 우리 생활과 인터넷 흐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모두 보다 깊이 생각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것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