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는 컴퓨터를 조금이라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들어봤을 회사 이름이자 애증의 대상이다.

지금도 전세계 PC 사용자의 약 90퍼센트가 이 회사의 제품인 윈도우 시리즈를 쓰고 있다. 정식으로 돈을 주고 산 정품이든 아니면 그냥 불법복사한 제품이든 말이다. 어쨌든 MS의 운영체제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지만 막상 사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MS에 고마워하지 않는다. 존경하지도 않으며 하물며 사랑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애플(Apple)이란 이름은 컴퓨터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사람만이 접할 수 있는 회사다. 하지만 근래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매우 큰 유행을 몰고 다니고 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이 회사의 열광적인 팬이 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위에 애플제품을 사라고 권하고 잡스와 애플을 칭찬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공짜로 제품을 받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들은 그저 소비자일 뿐인데도 잡스를 존경하고 애플을 사랑한다.


대조적인 이 두 회사는 매우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과격한 비난이 오가기도 하고, 법정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애플 팬보이들은 MS가 쓰레기 같은 제품을 가지고 간교한 술책과 멍청한 기술을 통해 시장을 지배해서 인류의 진보에 큰 해를 끼치고 있노라고 욕하기도 한다. 사실 말만 점잖을 뿐 비교적 유명한 미국 언론에 기고하는 컬럼리스트 가운데 일부는 똑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회사의 창업자이자 리더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최근에 누군가 잡스에게 빌 게이츠와의 관계에 대해 묻자 대충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다지 친하지는 않다. 한달에 한번 정도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다.>

빌 게이츠를 뿔 달린 악마이자 궁극 보스, 적의 괴수쯤으로 치부하는 애플 팬보이에게 이것은 충격적인 말일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 개최한 발표회에서 MS와 손을 잡겠다는 말을 했을 때, 유일하게 야유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잡스를 예수로 생각하는 일부 팬보이에게 빌 게이츠와 MS는 사탄이자 지옥의 대군단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개인용 PC의 역사를 연구하며 애플과 MS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 두 회사에 얽힌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매우 단순명쾌한 사건도 있지만 때로는 엑스파일에 나오는 사건보다 더 미스테릭한 전모가 숨어있을 사건도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한 부분은 다른 게 아니었다. 두 회사가 서로를 상당히 견제하고 싫어하면서도 막상 중요한 고비마다 오히려 상대를 도와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둘은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상대의 숨통을 모질게 끊지 못했다.


애플은 한창 애플2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MS로부터 베이직 언어를 구입하며 거래를 텄다. 이때 MS는 애플에 한참 뒤진 소프트웨어 업체였다. 그런데 IBM-PC가 대두되고 MS-DOS로 시장을 차지한 MS는 어느새 애플과 비슷한 규모까지 성장했다.

잡스가 GUI에 기초한 매킨토시를 만들었을 때, 이것이 미래의 방향임을 눈치챈 빌게이츠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PC의 우월한 지위와 IBM의 명성을 최대한 이용해서 맥을 고립시켜 죽이는 방법이었고, 또 하나는 맥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편승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서 빌 게이츠는 후자를 택했다. MS가 애플을 도와준 셈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중요한 고비에 빌게이츠의 MS로 하여금 매킨토시에 쓸 오피스를 만들도록 허락했다. 이미 MS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드웨어 업체인 IBM보다 훨씬 잘나가고 있는 걸 보았으면서도 말이다.
맥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당연히 그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를 가르쳐줘야하고, 일부의 사용권도 허용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로 MS는 윈도우 1.0을 만들어 출시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잡스가 MS를 도와준 예이다.

결정적으로 대단한 일은 잡스 복귀 직후인 1997년에 벌어졌다.

이 때 MS는 엄청난 위기에 몰려있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넷스케이프의 추적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연방의 반독점법에 몰려 재판을 받아야했다. 또한 애플로부터 맥의 GUI를 베꼈다는 룩앤필 소송에 걸렸으며, 퀵타임의 도용사실이 발각되어 패소가 확실시 됐다.

애플 역시 중대 위기였다. 매킨토시의 매출과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운영체제는 낡아서 버그가 속출했다. 신제품은 거의 실패했고, 적자가 누적되어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도 없었다. 그대로 3년을 버티지 못할 거란 절망적인 소리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런 두 회사는 서로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숨통을 끊는 대신 극적인 화해와 협력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빌게이츠를 만나 주도한 협상결과, 3가지 사항의 합의안이 발표됐다.

1. 특허교차기술 계약으로 MS는 애플에게 9천3백만달러를 지불하고 애플의 특허를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2. MS는 애플의 우선주 1억 5천만 달러를 구입하여 3년간 보유한다.
3.기술 협정으로 MS는 매킨토시용 오피스의 새로운 버전을 향후 5년간 계속 개발하고, 대신 애플은 5년간 인터넷 익스플로러 버전을 매킨토시용 브라우저로 사용한다.

바로 이 합의안에 의해 두 회사는 오래된 대립을 끝내고 협력관계를 선포했다. 물론 각기 실리를 챙겼으며, 속셈이 있긴 했지만 대단히 의외인 합의였다. 사실 어느쪽이든 상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면 반드시 한쪽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회사는 서로의 숨통을 끊는 공격과 결별 대신 화해를 택했다. 어째서였을까?

외국 칼럼에서도 이것에 대해 분석이 몇 가지 나와있다. 그러나 대체로 컬럼리스트의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이 많아서 참고만 될 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이유는 매우 간단한 데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두 회사의 상이한 특성에서 비롯된다.

애플은 명랑하고 반항적이다. 그에 비해 MS는 성실하고 계산적이다.

마치 양쪽 리더인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의 기질을 반영한 듯한 이 한 줄에 모든 이유가 함축되어 있다.


애플은 팬들을 매혹시키는 하드웨어를 만든다. 애플2, 매킨토시,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애플 제품은 늘 혁신적이며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준다. 컴퓨터와 운영체제라는 도구가 마치 게임처럼 친숙하고 재미가 있다. 그런데... 애플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다. 신나게 놀다가 똑같은 하드웨어에서 이제 일을 좀 해볼까. 라고 하는 순간 애플 제품은 그다지 우수한 기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쪽 일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그게 아닌 복잡한 비즈니스용 스프레드 시트, 과학기술용 시뮬레이터, 복잡한 연산관련 일로 가면 애플은 갑자기 갈 길을 잃고 헤멘다. 애플 2의 비지칼크 이래로 애플은 제대로 된 스프레드 쉬트나 데이터베이스 하나 내놓지 못했다.

반면 MS는 바로 그 점에 강하다. 기능도 부족하고 인터페이스는 모방이란 소리를 듣고 가끔 블루스크린에 짜증이 나지만 우리는 윈도우를 쓴다. 그 중요한 이유로 오피스- 파워포인트,워드,엑셀의 삼요소가 일하는 데 편한 필수요소기 때문이다. 애플은 맥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오피스를 MS에 의지해야 했다. 오피스가 빠진 맥은 아무리 매력적인 하드웨어라도 진지한 작업을 할 수 없는 장난감이 되어버린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만든 iWorks 에서 키노트는 파워포인트보다 훌륭한 점이 많고, 페이지스는 그럭저럭 MS워드와 동급이라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넘버스는 도저히 엑셀에 미치지 못한다. 애플 팬보이도 넘버스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애플이 MS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오피스 등 사무용 프로그램 때문이다. 만족할 만큼 만들어줄 다른 대안업체가 없기에 결별을 생각할 수 없다.

MS 역시 애플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무엇보다 10프로 남짓한 매킨토시 사용자를 무시할 수 없다. 점유율은 적어도 그들은 충성도가 강하고 활용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부자 사용자들이 많다. 매킨토시를 망하게 했다가 자칫 그 자리를 리눅스가 차지하게 되면 되려 곤란해진다. 또한 애플이 무너지면 MS는 정말로 독점기업이 된다. 다시 한번 재판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를 처지가 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그럼 단순히 애플은 오피스 때문에, MS는 돈과 독점금지법 때문에 결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두 회사는 엄밀히 말해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이기에 정면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는 까닭도 있다.

애플과 MS가 결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 원인은 애플과 MS가 서로 상대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MS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와 표준화에 약한 애플을 보완해준다. 애플은 시장선도적인 기술개발과 보급을 잘 못하는 MS에게 갈 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둘은 서로 질투하면서도 보완해주는 관계에 있다. 결별하기에는 너무도 상대의 역할이 아쉽다.


1997년의 합의안은 이런 두 회사가 서로의 장점과 역할을 인정하고 문서화한 결과라고 본다. 이 합의에 의해 두 회사는 이제 결정적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기 보다는 적당한 긴장 정도의 경쟁만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2010년, 두 회사는 공동의 적 구글을 앞에 두고 있다. 결별해서 싸울 여유도 없다. 검색업계의 공룡 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빙>을 아이폰 검색엔진의 하나로 올려놓은 애플과 MS의 제한적 협력은 당분간 계속될 걸로 보인다.

과연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 지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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