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의미 있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던져보겠다.

1. 내가 좋아하는 팝송 가운데 <Video kill the radio star> 란 곡이 있다. 라디오는 정말 정감넘치고 좋은 오디오 매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디오라는 더 발달된 미래로 옮겨가기 위해 전성기를 누리던 라디오와 그 안에서 찬란한 영광을 누리던 스타를 죽였다. 이것은 올바른 일이었을까?

2. 로마사를 보면 무너져 가던 로마제국이 그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을 둘로 가른다.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서로마제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기독교란 일신교, 그리고 오리엔트적인 전제적 황제제도로 체제를 전부 바꾼 동로마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살아남는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로마라고 알고 있는 나라는 원로원과 집정관으로 대표되는 공화정의 나라다.혹은 케사르와 오현제로 알고 있는 다신교, 총사령관 스타일의 선출직 황제 체제의 나라다. 과연 비잔틴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동로마제국은 자기 정체성에 해당되는 부분을 다 바꾸고도 그냥 로마라고만 부르면 로마인 걸까? 역사가 가운데 일부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로마는 이미 멸망했다고 평하기도 한다.


애플이란 회사는 애초에 스티브 잡스가 주도적으로 창업한 회사다. 유명한 개인용 컴퓨터 애플2를 만들고, 그래픽 인터페이스 탑재 컴퓨터 매킨토시를 히트시키고, 이어서 아이맥과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혁신을 만들어낸 기술 기업이 애플이다. 그러니까 사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회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삼위일체의 교리처럼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애플은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서 영속성을 가지기 위해 만든 회사고, 스티브 잡스는 숨을 쉬며 밥 먹고 살아가는 한 개인이다. 둘 다 생명체이거나, 둘 다 무생물체가 아닌 이상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애플의 최근 거침없는 행보와 제품군의 미묘한 발전방향을 놓고 해외에서는 면밀한 분석을 많이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단지 애플제품을 사용하고 느낌을 적고, 쓸모가 있냐 없냐는 기초적 논쟁 외에는 심도있는 고찰이 없어서 아쉽다.

최근 애플이 내놓는 여러 분야의 혁신적 신제품을 보며 그것이 어떤 일정한 의도와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일반적으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단지 돈이 될만한, 혹은 소비자에게 편리한 제품 이런 의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래로 애플의 경영전략과 제품전략이 오로지 한가지에 집중되어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인데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그 해석이 매우 흥미롭다.


스티브 잡스는 어째서 애플을 죽였는가?

내가 참고한 컬럼은 대부분이 외국어로 되어 있어 나도 그냥 번역본만 읽었다. 혹시 언어에 자신있는 분은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출처 : 맥 제너레이션 )  번역된 내용도 전문적인 부분이 많아서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이에 이 컬럼을 읽고 내가 이해하고 느낀 점을 조금 간략화시켜 제시해보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가 최근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iOS를 전면에 내세우고, 상대적으로 매킨토시 운영체제 OSX에 소홀한 것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단지 매킨토시로는 이미 굳어져버린 PC시장에서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런 것이고 앞으로 맥은 개발자용이나 서버용으로 물러나고 전면에 iOS를 내세울 것이란 해석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적인 부분이고 그 원인은 한 가지였다. 스티브 잡스는 아예 애플 그 자체를 내부적으로 없애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우선 최근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변화를 살펴보자.

원래 매킨토시는 초창기부터 이어져온 16비트 운영체제인 <시스템>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32비트용으로 전환되어 시스템 9까지 올라갔지만 곧 많은 버그와 노후화로 대대적 개혁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당시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서 NEXT 컴퓨터에 주력하던 때였다.

애플 안에서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외부에서 도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프랑스인 장 루이 가세의 BeOS, 빌게이츠의 윈도우NT도 후보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낙찰된 것은 스티브 잡스가 멀티플랫폼용으로 개발한 넥스트스텝이었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면서 내놓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는 점점 넥스트스텝을 닮아간다. 물론 기존 시스템 시리즈와의 호환성을 일정부분 살리기 위해 절충해 가면서 하나씩 진화되어 갔다. 넥스트 스텝은 유닉스에서 나온 BSD 마하커널을 진보시킨 다윈 커널을 쓰고 있으니 사실 전혀 별개의 운영체제였다.  OSX란 운영체제는 결국 옛날 맥 + 유닉스요소 + 넥스트 스텝 이 합쳐진 혼합물 같은 것이었다. 개발자들을 위한 운영체제 개념도를 보면 잘 드러나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마도 이 부분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맥은 분명 잡스가 만든 것이지만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애플에서 나름 독자적 발전을 시킨 부분이 많다. 자기가 관여하지 않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떠안고 가야 한다는 게 잡스에게는 짐으로 느껴졌을 게 분명하다.

그에 비해 아이폰에 쓰인 iOS는 다르다. 처음부터 새로운 하드웨어 위에  올려놓은 운영체제인 이것은 한 마디로 OSX에서 전혀 필요없는 기존 맥과의 호환성을 위한 부분을 싸그리 빼고, 스마트폰과 관련없는 디바이스 부분도 전부 빼고 최적화 시킨 운영체제다. iOS는 잡스가 직접 지휘해서 만든 넥스트 스텝의 가장 순수한 결정체다.

이 두가지 가운데 스티브 잡스가 어느 쪽을 더 미래지향적이라 보고 사랑할 지는 당연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떠나있는 동안의 애플이 남긴 유산 대부분을 부정하고 있다. 이때까지 남아있는 애플 고객만 빼고는 말이다.

이것은 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스노우 레오파드로 다시 업그레이드 된 맥의 운영체제 OSX는 이젠 맥이 아닌 넥스트 스텝에 가까워진 듯 하다. 관련 컬럼 내용을 약간 소개한다.

스노레퍼드는 PowerPC 프로세서에 대한 지원을 없앴다. 1992년부터 이어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융통성이 없었던 퀵타임 기술도 퀵타임 텐으로 바뀌었다. 64-비트로 이주를 촉진시키기 위해, 맥오에스 툴박스에서 유래하여 맥오에스 "클래식"을 맥오에스텐에서 허용했던 카본의 64-비트 이주를 하지 않고, 넥스트스텝 프레임웍의 계승자인 Cocoa만 64-비트를 허용해 놓았다.

만약 2000년의 맥오에스텐이 1990년대 맥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면, 2009년의 맥오에스텐은 미래를 위해 아예 맥을 죽여 놓은 셈이다. Grand Central Dispatch는 프로세서 다중코어에 운을 걸었고, OpenCL 또한 그래픽카드 파워의 활용으로 성능 개선을 약속하였다.

스노레퍼드가 맥오에스텐의 사용을 바꿔버리지는 않았다. 스노레퍼드가 일으킨 변화는 내부적인 변화이며, 상당히 큰 변화이기도 하다. 즉, 다음에는 외관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맥오에스텐의 다음 버전은 아무래도 맥오에스 11이라기보다는 넥스트스텝 12에 더 가까워질 듯 하다.
 

자, 이제 내가 위에서 든 두가지 에피소드에 비춰 이런 일련의 흐름을 풀어보자.

1.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관여하지 않은 애플의 유산 대부분을 부정하고는, 스스로가 만들어온 넥스트 스텝의 요소로 전부 대체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 라디오 스타들이 죽어가듯이, 애플에서 옛날 맥의 요소는 거의 다 죽었다. 이제부터 나오는 맥은 사실 맥이 아니라 맥이라 이름붙은 넥스트 컴퓨터일 뿐이다.

또한 잡스는 순수한 넥스트 스텝에 가까운 iOS를 가지고 모바일과 TV 를 비롯한 모든 기기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 맥이란 하드웨어조차도 점점 뒤로 밀려나 장래에는 개발자와 서버용으로 밀려날 지도 모른다.

2. 그렇다고 볼 때 과연 지금의 애플은 더이상 애플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애플의 정체성은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잡스가 없는 동안 애플이 유지한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직하게 말해보자. 잡스가 다시 돌아온 순간부터 애플은 죽었다. 형식상으로는 애플이 잡스가 세운 넥스트 를 합병했으니 넥스트가 죽은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 운영이 안되서 합병당한 회사의 CEO가 인수한 회사의 CEO가 되서 직원을 혹독하게 감원하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발표회에서 각광을 한  몸에 받고 영웅이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진실은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가 애플을 합병한 것이고, 애플이 죽은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제품 흐름은 그 사실을 증명해주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바람직한 변화일 지도 모른다. 잡스는 미래를 위해서 부정적인 <애플>을 죽인 것이고 이것은 올바른 일이다.

사업적인 면에서 봐도 지금의 애플은 이미 초창기의 컴퓨터 회사가 아니다. 이제는 모바일 기기 회사이자 음악 사업자다. 조만간 텔레비전 사업자가 될 수도 있고, 게임회사로 변신할 가능성도 있다. 회사명도 바꿨는데, 애플 레코드와의 이름에 관한 계약위반으로 엄청난 위약금을 치러가며 <애플 컴퓨터>란 이름을 버리고 <애플>로 바꿨다. 내 생각에는 그냥 그때 <넥스트>라고 바꿨으면 더 쉽지 않았을까.

경영적인 면에서도 살펴보자. 애플은 본래 스티브 잡스 혼자의 회사가 아니었다. 기술자이자 낙천적인 스티브 워즈니악, 냉철하고 현실적인 경영자 마이크 마쿨라가 같이 만들었고 함께 운영하던 회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워즈니악은 평직원 신분으로 일체 회사일에 간섭하지 못한다. 마이크 마쿨라는 예전에 사임했다. 남은 건 잡스 뿐이다. 거기다 예전의 이사회를 거쳐 잡스조차 쫓아내던 애플은 이제는 잡스의 한 마디에 벌벌 떠는 회사가 됐다.



그러니까 <동로마제국>이란 이름을 붙인 전혀 다른 나라 <비잔틴제국>처럼, 지금의  <애플>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는 회사의 진짜 실체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기억하는 스티브 잡스 1인 회사 <넥스트>일 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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