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뜬금없이 애플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발표한다는 예고 소식을 들었다.

이미 아이폰4도 나오고 안테나게이트도 한바탕 지나간 터라 대체 뭐가 나올 게 있는 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아이맥? 아니면 맥북? 하지만 이미 있는 제품의 라인업이다. 갑자기 아이맥이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해서 로봇이라도 되지 않는 한 신제품일 뿐이지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지만 어쨌든 차분히 기다렸다. 가끔 애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한방을 터뜨려주는 능력이 있기에 말이다.

잠시후인 7월 28일, 그 예고에 해당되는 제품이 나왔다. 바로 애플의 매직 트랙패드였다.


(이하 사진출처: 애플 홈페이지)

매직 트랙패드는 이미 맥북에서 쓰이고 있는 멀티터치 트랙패드의 기능을 강화해서 따로 분리한 독립제품이다. 한 손가락으로만 쓰이는 기존 PC의 마우스와 달리 두손가락, 세손가락... 등 모든 손가락을 다 쓰 수 있게 만들었다. 맥북에는 이미 있지만 아이맥 등에는 그동안 쓰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트랙패드를 도입해서 연결해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과연 이것이 혁신적인 제품일까?

겉으로만 봐서는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다. 물론 편리하기도 하고 발상도 뛰어나다. 실제로 맥북을 써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트랙 패드는 대단히 편리해서 마우스가 필요없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도 나중에 적응만 되면 마우스보다 우수한 입력장치라는 걸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미 맥북에서 선보였던 제품이다. 이걸 따로 떼어내 독립제품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우선 해외언론의 반응 몇 개를 살펴보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7월 28일 인터넷판에서 “애플이 26년전 마우스를 컴퓨터의 주요 기기로 일반화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마우스를 대체할 기기를 내놓아 주목된다”고 전했다.

애플이 마우스를 도입하고는 다시 새로운 시대를 발맞추어 그 마우스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트랙패드를 내놓았다. 그러니 애플이 모든 혁신을 주도하는 것이며, 이번 제품 역시 혁신제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약간 있다.

CNET에서는 <윈도우계열에서는 기능이 제한적인 매직트랙패드>란 주제를 통해서 이 트랙패드가 결국은 맥에서만 제 기능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예 맥 전용으로 만든 기기는 아니지만 기왕이면 윈도우 PC에서도 제 기능을 다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다.

매직 트랙패드는 맥에 부트캠프등을 통해 멀티 운영체제로 설치된 윈도우즈를 위해서 일단 지원은 한다. 그러나 싱글터치와 두 손가락을 이용한 멀티터치 까지만 지원한다고 한다. 온전한 제기능은 발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드라이버 지원 문제인지, 애플의 의지가 아예 없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진정으로 이 입력장치로 세계를 바꾸는 혁신을 이루려면 원래 이것이 단지 맥에서만 사용가능해서는 안된다. 맥이 비록 우수한 컴퓨터이고 점유율도 약간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세계 시장의 10프로도 차지하지 못했고, 비지니스 시장에서는 처참할 정도다. 그런 맥 전용의 기기로 일으키는 혁신이라는 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고작 저런 이유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에 관련된 기즈모도의 컬럼을 보니 애플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즈모도의 관련컬럼은 <Mac OS X의 종결의 서막>이다.

이 컬럼의 주요 내용은 애플을 욕하거나 흠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애플이 굳이 매직 트랙패드를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말하며 들고 나온 것이 단순한 허풍이나 과장광고가 아니라는 증거로 그 뒤에 숨겨진 혁신적인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다. 영문 컬럼이지만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애플 신제품 매직 트랙패드에 숨겨진 의미는?

결국 매직 트랙패드의 가장 큰 의미는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부터 애플을 떠받쳐 왔던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맥북을 쓰지 않는 아이맥 등의 사용자는 애플 사용자이긴 해도 그냥 마우스와 키보드에만 익숙해진 상태다. 비록 매직 마우스라 불리는 제품을 통해 어느 정도 멀티터치를 지원한다고 해도 기본이 마우스다. 애플이 새롭게 주력하고 있는 멀티터치에 기반한 입력수단에 아직 적응하고 있지 못하다.

애플의 미래는 아이튠스를 허브로 놓은 iOS관련 기기의 확장에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를 개량한 아이티비, 시계형으로 나올 거라는 루머의 아이와치 등 모든 것에 멀티터치가 적용된다. 그런데 아이맥 사용자가 이것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면 애플은 기회를 잃는다. 기존의 충성스러운 애플 사용자가 <어쩐지 멀티터치는 나에게 안 맞는 것 같아요. 난 그냥 마우스나 쓸렵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도 언급했고 지금 해외의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애플의 숨겨진 의도는 기존의 맥을 점점 전문가용, 서버용 컴퓨터 분야로 밀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점유율과 인기가 최고인 iOS를 적용한 신제품을 모든 시장에 진입시키는 일이다. 아이패드는 넷북시장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즉, 애플은 기존의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에서 맥으로 PC를 이긴다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고는 이미 승자의 위치인 iOS를 확장시켜 컴퓨터를 포함한 모든 개인용 IT기기를 점령할 야심을 품고 있다. 이걸 위해서는 우선 기존 맥 사용자를 고스란히 iOS기기로 끌어와야 하는데, 그 전환기적인 제품이 바로 매직 트랙패드다.

"매킨토시는 개발자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퍼스널 컴퓨터의 역할을 하는건 아이패드가 될 것 이다."

어디선가 듣기로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 일리는 있는 말이다. 그리고 잡스가 이 말을 한 것이 맞다면 해외 전문가와 내 생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트랙패드가 만능이거나 꿈과 희망만 있는 마법의 입력장치는 아니다.
트랙패드 때문에 만일 맥이 마우스를 버린다면 우선은 그래픽이나 음악 전문가, 3D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줄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아직 트랙패드만으로 할 만한 대작 게임이 많지 않다.


또한 장애인을 비롯해 손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일부러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원버튼 마우스를 강조했던 당초 의미도 퇴색할 우려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혁신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도리어 퇴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한다.

하지만 애플은 이번 신제품 매직 트랙패드를 통해서 시간을 들이더라도 iOS의 멀티터치를 애플의 차세대 핵심 입력수단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직관적이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마우스를 버리고 멀티터치 스크린이나 트랙패드를 선택할 것이란 잡스의 생각은 확고해 보인다.


그리고 역사는 또한 다른 방향에서 애플의 이런 시도를 전체 컴퓨터의 혁신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 바로 <복제>다. 애플은 비록 매직 트랙패드를 맥에서만 정상동작하게 할 가능성이 크지만, 세상이 어디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겠는가? 중국, 대만, 혹은 어떤 후발업체가 특허권을 교묘히 피하며 PC에서 가능한 또하나의 <매직 트랙패드>를 내놓을 지 모른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의도한 컴퓨터 입력의 혁신은 <짝퉁>에서 올 지도 모른다. 

내 개인적 바램으로야 애플이 전략을 수정해서 PC에서도 완전동작되는 매직 트랙패드를 내놓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애플은 언제나 자기들 생각대로 움직였지, 누가 어떻게 해달란다고 들어주는 회사는 아니었다. 기왕 그렇다면 맥에서는 애플의 제품이, 애플이 우리가 바래도 지원해주지 않는 PC에서는 짝퉁이라도 좋으니 혁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도 바로 애플이 바라는 숨은 의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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