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마도 요즘 짜증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나름 우주를 변화시킬 어떤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혁신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주위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열에 대해 묻는 블로거에게 이 메일로 <당신은 뭔가 만들어 본 적이 있소?>라고 한 대답도 그렇고 아이폰 안테나 결함에 대해 해명하러 나온 자리에서는 <애플이 한국회사였으면 좋겠느냐?> 라고 묻기도 했다.

사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일 애플이란 회사가 없었으면 세계 IT계가 어떻게 변했을까? 라고 말이다.
물론 어떤 회사나 개인 역시 역사의 일부분이기에 애플이 없었다고 모든 진보와 혁신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애플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상당한 혁신이 매우 늦게서야 일어났을 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이 출시되고 업그레이드 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스마트폰에 끼친 충격적인 영향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될 것 같다. 아이폰은 많은 의미에서 기존의 안이한 휴대폰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 가운데 한국은 제일 늦게서야 그 충격에 정신을 차린 나라에 속한다.
 
아이폰이 휴대폰 업계에 던진 네가지 질문은?

1. 이미 고객에게 팔고 난 전화기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며 관리해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가?


이전까지 대부분의 휴대폰 회사들은 휴대폰 역시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일단 한번 팔면 치명적인 결함에 따른 리콜, 혹은 자잘한 버그 수정 외에는 다른 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2년 전에 팔았던 냉장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해서 김치냉장고 기능을 넣어준다든가, 1년전에 판 세탁기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면 은나노 세탁기능이 생긴다면 그 누가 새제품을 사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능을 원하면 기존 제품을 처분하고 새 제품을 사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플은 스마트폰은 컴퓨터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는 같은 하드웨어라도 도스를 쓰다가 보다 진보된 윈도우3.0이 나오면 그것을 쓸 수 있다. 또한 성능이 좀 부족하더라고도 무리하면 윈95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애플 아이폰은 일정 한도 내에서 새로 나온 차세대 아이폰의 기능 일부를 단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만으로 쓸 수 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기능으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2를 만들고 관리할 때부터 신념을 가지고 해오던 소비자 서비스다.

과연 이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그 대답은 지금 아이폰에 열광하는 세계 소비자들과 잦은 업데이트를 약속하며 따라잡으려 애쓰는 안드로이드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기는 커녕 애플은 옳은 일이자 동시에 멀리 내다보면 이익이 되는 일을 했다.
 
2. 망사업자에 대해서 단말기 사업자는 그저 하부에 있는 납품업자 관계일 뿐인가?


한국에서 최고의 회사라는 삼성조차도 애니콜을 납품할 때면 SKT의 눈치를 살피며 기능 일부를 삭제하거나 추가해야 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망 사업자라는 <유통업자>가 단말기 <공급업자>를 하청업자 취급하는 현상은 심화되어 갔다.

그러나 애플은 이런 기존의 관행을 뒤집었다. 너무도 매력적인 스마트폰을 만들어 공급하는 대신 애플이 보다 우위 내지는 동등한 관계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애플은 주로 시장 1위 망공급자가 아닌 2위나 그 아래와 거래를 했다.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가 한국에서는 KT 가 아이폰을 들여오게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망사업자가 반드시 위쪽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현실의 권력관계가 그렇게 왜곡됐다고 해서 모두가 수긍해야하는 법칙은 아니란 뜻이다. 문제는 이런 관계가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무선 인터넷망의 비싼 요금을 받기 위해 한국 출시 휴대폰에서 와이파이 기능을 모두 제거하거나, 실수로라도 자주 눌러질 위치에 큼지막한 무선 인터넷 버튼을 달아야 하는 등 횡포가 심했고 소비자는 피해를 봤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이런 대부분의 어이없는 장애물은 거의 사라졌다. 와이파이는 스마트폰의 필수기능이 되었고 풀웹브라우징이 보편화되었다. 3.5파이 이어폰 단자가 달리기 시작했고, 무선인터넷 버튼이 사라졌다. 액티브 엑스의 의존도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인터넷 뱅킹이 다른 브라우저로도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 애플은 단말기 사업자도 망사업자와 대등하게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3. 휴대폰을 통한 사업으로 개인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왜 불가능한 일인가?


이전까지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은 가능성은 많지만 수익성은 극도로 불투명한 시장이었다. 각 단말기 마다 운영체제도 다르고, 설령 같다고 해도 하드웨어 스펙이 달라서 하나의 통합된 개발로 동작을 보증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플을 만드는 개발자만 죽어났다. 또한 어플로 수익을 내려고 해도 중간에서 비싼 정보이용료와 별도의 요금 등으로 떼어가는 이통사의 횡포로 인해 개인의 수익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앱스토어를 앞세운 애플은 이런 개인 개발자에게 엄청난 희망을 주었다. 앱스토어의 70대30 배분률은 개발자에게 매우 유리했을 뿐더러, 다운로드 갯수나 유통과정의 투명성도 잘 보증했다. 그러다 보니 일명 대박을 치는 앱이 나오며 야심있는 개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할 지라도 꿈을 꿀 수는 있었다.

마치 10년전의 벤처붐처럼 한국에서 개인이 제대로된 아이디어 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준 것은 애플의 대단한 공로라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의 안드로이드 마켓을 비롯해, 인텔이 운영하는 인텔 마켓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앱마켓의 기준을 세워주었다.

4. 스마트폰을 이용해 새로운 모바일 디바이스를 개발해낼 수 없는가? 


한때 활발하게 이용되다가 어느 순간 외면받고 사라진 PDA란 기기가 있었다. 이것 역시 애플이 개발한 뉴튼의 영향을 받은 기기다. 애플은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디바이스를 개발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타블렛이란 묻혀있던 카테고리를 끄집어냈으며 전자책이란 장르에 접근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은 경쟁업체들의 시장진입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애플이 마치 초기 엔진에 시동을 걸듯 개척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3G망을 이용한 타블렛이나 각종 기기들이 풍성해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애플과 아이폰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애플과 아이폰이 휴대폰 업계에 던진 질문은 기존 업체들의 무능과 횡포를 지적한 뼈아프고도 유익한 질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단점이 몇 개 있다고 애플과 아이폰의 존재의미를 낮춰보는 것은 옳지 않다. 설령 앞으로 아이폰의 점유율이 다소 하락하고, 시련을 맞게 되더라도, 애플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기존의 업체들의 안이함에 언제라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창조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  이 포스팅 주제를 잡는데 도움되는 말을 해주신 <미후왕>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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