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가끔 보게 되는 한국조폭영화에 보면 늘 나오는 장면이 있다.
조직의 보스가 살인 같이 중요한 범죄를 저질러야 할 때, 조직원 한 명을 부른다. 그리고는 말한다.

네가 좀 나서줘야겠다. 걱정마라. 너는 우리 조직의 에이스다. 갔다오면 넘버투로 키워주마.

이 말을 믿은 조직원은 감격하며 기꺼이 보스의 말에 따른다. 그러나 주민증에 빨간줄이 그어진 채 감옥에 갔다온 그에게 조직은 차갑게 한마디 던진다.
 
그걸 믿었냐? 정말 조직의 에이스한테 왜 그런 짓을 시키냐? 보스가 너를 버리는 패로 쓴 거야.
 

이 말을 들은 조직원은 분노하며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조직은 원래 생존을 위해 비열한 짓도 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의 판단은 이미 내려진 뒤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뒤늦게 세계적 흐름에 뒤따라가기 위해 삼성은 지금 다각도로 애를 쓰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필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이 <왕의귀환>까지 해가며 위기상황을 선포하고 모든 역량을 다 모으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삼성의 스마트폰 독자 OS인 바다(웨이브)OS가 나왔고 안드로이드 진영에도 가담해서 갤럭시S도 내놓았다. 비록 늦게 출발했지만 따라가려고 전력을 다하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평소 이 바다OS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마침 오늘 관련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매우 놀랍고도 실망스러웠다.


바다 플랫폼은 중고등학생에게 부담 없는 대중적 스마트폰에까지 탑재될 예정이다. 다양한 가격대의 스마트폰을 공급해 스마트폰 대중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삼성전자 측이 아예 바다를 활용한 중저가형 스마트폰으로 기존 피처폰을 대체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본다.

홍준성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 상무와 인터뷰한 내용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Q: 바다가 저가용 스마트폰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A: 삼성전자는 멀티 플랫폼 전략으로 스마트폰시장에 대처하고 있다. 이 중 바다는 고급사양과 중저가형 스마트폰에 모두 탑재될 예정이고, 특정 스마트폰을 위해 만든 플랫폼이 아니다.

분명 말로는 특정한 스마트폰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고 하며 고급사양도 지향한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이 최근 화려하게 발표한 야심작 갤럭시A와 아이폰4 대항마라는 갤럭시S에는 전혀 바다OS가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고급사양의 스마트폰에 쓰겠다는 것일까?

문득 내가 저 위에 언급한 한국조폭영화를 떠올리게 된 건 지나친 생각일까? 삼성이 갓 태어난 조직원 바다OS를 불러 네가 에이스니까 라며 토닥거려서 다들 가기 싫어하는 중저가폰(이라고 쓰고 공짜폰이라고 읽는다)에 보낸다. 그 사이에 진짜 에이스인 안드로이드에게는 피식 웃으며 진짜 에이스를 공짜폰에 보내는 바보가 어디있냐고 말하는 장면이 연상되는 건 나만 느끼는 망상일까?


에이스라고 열심히 말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고가폰 갤럭시에는 전부 안드로이드를 넣었고 바다는 중저가폰에 보내겠다는 방침은 무엇을 말하는가?

삼성 스마트폰의 바다OS는 땡처리상품인가?

나는 좀더 자세한 걸 알아보고 싶었다. 바다OS의 소개를 보니 다음과 같았다.

바다는 멘토그래픽사에서 상용 RTOS 로 출시한  Nucleus 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이 OS는 이전부터 삼성 의 GSM 방식의 폰에서 이미 사용되어 온 것인데 여기에 멀티 쓰레드, 프로세스 기능을  추가하고 touch with frame work 를 입혀 바다라고 이름지어 나왔다.
RTOS(Real Time Operating System)는 커널 위주의 아주 작은 OS로 시스템의 태스크 스케줄링, 통신, 동기화, 메모리 관리 등을 포함한 태스크 관리가 주된 목적이다. RTOS에 파일시스템이나 그래픽, TCP/IP 스텍 등의 확장 패키지와 연결하면 모바일 OS에 가까워진다. 그냥 RTOS 자체는 운영체제의 가장 기본인 프로세스 관리를 목적으로하는 커널이라고 보면 된다.

어려운 말이 많아서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바다는 기존 다른 회사가 피처폰 정도에 넣을 용도로 설계한 작고 간단한 상용OS다. 이걸 삼성이 가공해 스마트폰 OS처럼 보이도록 껍데기를 씌운 운영체제다.

이제는 좀 알기 쉬워졌다. 그러니까 급조한 건 아니라지만 결국 남의 회사 제품을 6개월 동안 적절히 변형하고 포장한 운영체제란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 삼성 개발진의 노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아주 간단한 OS를 스마트폰OS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바다는 삼성 스마트폰의 에이스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지금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왜 각광을 받을까? 그건 휴대폰의 최상위에 있는 돈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기 위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구매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 중저가폰이다.

그런 중저가폰에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얹는다고 해도 그건 피처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의 핵심이 앱이 거의 갖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몇 개나 만들어 내놓을 지도 알 수 없고, 무엇보다 바다OS는 아이폰,모바일7, 안드로이드 어느 쪽에도 호환성이 없는 완전한 독자 OS기 때문이다.

삼성의 입장에서야 공짜로 마구 밀어내서 뿌리면 보급이 잘되니까 어떻게든 생태계가 형성되서 개발자가 몰려들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조차도 아이폰에 비해서 개발자가 잘 몰려들지 않아 고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매력이 별로 없어 중저가폰을 선택한 사용자들이 바다OS용 앱을 사기 위해 지갑을 거침없이 열 거라고 생각하는가? 거기다 만든 삼성에서도 그다지 주력하지 않는 눈치인데? 개발자나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현재도 은행권 앱이나 관공서앱, 교육방송 앱 등이 있는 자를 위한 아이폰 위주로만 앱을 내놓아서 빈부차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중저가 버스폰에 불과한 바다OS를 위해서 기꺼이 앱을 만들어 제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건 정말 빈부차별만 가속시키는 정책일 뿐이다.

결국 삼성은 바다OS를 개발해놓고는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다. 주력 고가모델에 채용하자니 없는 호환성 때문에 하드웨어까지 죽일 것 같다. 그냥 폐기하자니 개발비용도 아깝고, 체면도 안 선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는 중저가 피처폰에 얹어서 뿌리려는 것이다. 마치 길거리에서 선전 티슈 나눠주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안드로이드가 무슨 엄청나게 개발비 많이 든 운영체제인가? 구글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안드로이드를 왜 중저가폰에는 탑재하지 않는가? 같은 공짜 가운데서도 어느건 프리미엄이고 자사가 만든 실패작은 땡처리인가? 이런 말도 안되는 것도 정책이라고 내놓다니. 이런 과격한 생각까지 든다.

삼성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삼성 스마트폰의 바다OS는 땡처리상품인가?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중저가폰에도 안드로이드로 일괄 적용하든가, 아니면 바다OS 자체를 일정수준이상 안드로이드와 호환되게 만들어라. 어차피 돈 없어서 저가 핸드폰을 사는 사람에게 스마트폰이라고 팔아서는 부족한 앱과 성의없는 사후지원으로 재차 돈 없는 서러움을 느끼게 하지 마라.


다행히 기술적인 부분에서 한가지 희망은 있다. 나는 삼성의 관계자에게 제안하고 싶다.

Bada는 표면적으로 RTOS와 UI 프레임워크를 애플리케이션 탑재, 구동이 가능하도록 진화시킨 것이다. OS의 핵심 커널(Kernel)은 리눅스로도 대체할 수 있다.

이것이다. 핵심커널을 리눅스로 대체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안드로이드도 리눅스 커널이다. 바다OS를 중저가폰에 탑재하려면 차라리 커널을 바꿔서 안드로이드와 일정수준이상의 호환성을 보장하도록 고쳤으면 한다. 그러면 그나마 땡처리 상품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고 사용자도 일단 앱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면 같은 하드웨어의 중저가폰에 안드로이드와 바다OS 버전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

제발 공짜로 탑재하는 건데 무슨 말이 많아? 그냥 주는 대로 써. 라고 말하지는 말기 바란다. 어차피 소비자는 중저가 버스폰이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말할 권리가 있다.

삼성이 정말로 고객감동을 원한다면 이런 <사소한 문제> 에도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 어차피 안드로이드 역시 공짜 운영체제란 거 다 알고 있다. 소비자에게 편의성과 선택권을 보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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