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공부해라!>란 말일수도 있고, 다른 누구에겐 <너네집 가난하다며?>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너는 어째서 누구처럼 되지 못하니?

비교당하기 싫은 건 아마도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대부분이 똑같을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착하고 예의까지 바른 이른바 엄친아(엄마친구아들)에 대한 전설은 오늘까지도 내 귀를 아프게 한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애정어린 충고를 한답시고 삼성에게 <너는 어째서 애플처럼 되지 못하니?> 라고 묻는 건 너무도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이제까지 다른 아이에게 모범이 되며 오히려 너는 왜 삼성처럼 되지 못하냐는 말까지 들은 처지였는데 말이다.


솔직히 이것도 시대의 유행이다. 소니, 도요타가 잘나갈 때는 그쪽이 부럽다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잘 나가면 또 그쪽에 눈을 돌린다. 이번 타겟이 애플이 되었을 뿐, 애플이 망하더라도 또 다른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나도 아마 삼성이 최근에 애플을 의식하면서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비교 당하고 꼭 누구처럼 되라는 게 얼마나 괴로운 말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삼성이 정말로 애플처럼 되고 싶다면 그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말을 꺼낸다.

삼성은 어째서 애플같은 회사가 되지 못할까?

나아가서 전세계에서 지금 애플을 부러워하며 스티브 잡스같은 경영자를 가지고 싶어하는 회사들은 왜 애플처럼 되지 못하고 있을까.

무슨 굉장한 기업비밀이라도 숨어있을 듯 싶지만 의외로 복잡하고 어려운 비결이 있는 건 아니다. 또한 놀랍게도 그 비결은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공개했다.



올해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다.
잡스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은 특이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이 말에 함축된 의미가 바로 애플이 가진 독특함의 비결이다. 즉 <인문학>이 문제다. 다른 회사들은 인문학을 경시하기 때문에 애플이 가진 장점을 가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어려운 말을 싫어한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저 말은 함축적이지만 동시에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 어느 정도는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상징적이고 어려운 표현을 쓴 것에 불과하다. 잡스의 말에서 핵심을 뽑아 쉬운 말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라. 그래서 그에 맞게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팔아라.

아주 크게 분류하면 일반적 기업에는 딱 두개의 부서만 존재한다. 엔지니어들이 맡는 개발부, 마케터들이 맡는 영업부다. 나머지 부서는 모두 이 부서들을 잘 지원해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물건 개발하고, 잘 파는 것 뿐이다.


보통 기업은 이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조금씩 다르다. 보험이나 금융은 극도로 영업부에 중점을 둔다. 반면 IT기업들은 개발부에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기술자들의 천국인 일본의 디카 업체 가운데 펜탁스나 콘탁스 이런 기업들은 기술도 좋고 제품도 나무랄데 없는 성능을 보여준다. 그런데 막상 쓰다보면 뭔가 부족하다. 속된 말로 삘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기업은 흔히 엔지니어 기업, 혹은 공돌이 기업이라고 놀림 당한다. 그냥 기술자들이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서는 성능이 뛰어나니까 당연히 소비자들이 사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삼성은 어떤 쪽일까?
흔히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IT로 놓고 볼때 삼성은 그저 가격 대비 성능이 약간 높은 제품을 양산해서는 마케팅에 집중해서 팔아먹는 영업부 위주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삼성은 혁신이 없고, 혁신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원가를 낮추고 이윤을 늘리는 양산기술만 무한정 발전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애플은 개발부와 영업부보다 가장 위쪽에 잡스 스스로가 이끄는 인문학 계열인력이 있다. 여기서는 기술도 마케팅도 아닌 사람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한다.

다른 회사에도 당연히 존재하는 영업부와 애플에만 있는 인문학부는 무엇이 다를까.

마케팅을 연구하는 쪽도 분명 사람과 사회에 대해 연구한다. 그렇지만 시선이 다르다.
마케팅은 산술적 숫자로서 사람을 기계적인 소비자로만 본다. 대략 어떤 가격에 어떤 목적의 제품을 내놓으면 상위 몇 프로의 사람이 얼마를 살거고, 그 아래쪽은 어느 정도 살 것이며, 가격저항선은 얼마고... 이런 숫자계산으로 인간과 제품의 접점을 통계 숫자로 놓는 것이 기본이다.
 

잡스가 말한 인문학은 다르다. 사람이 제품을 이용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쓰며, 그것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제품을 통해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중간에 어떤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가? 이런 것은 숫자를 중시하는 마케팅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과학으로 따지면 응용과학만 한 사람이 기초과학을 이해하기 힘든 것과도 같다. 보다 상위의 포괄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문학이란 별 쓸모없는 학문으로 여겨지기 쉽다. 대학에서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전자공학이나, 경영학은 각광받지만, 문화인류학이나, 철학은 외면당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잡스가 이끄는 애플같은 회사가 되려면 이런 인문학이 최고 위치에서 나머지를 총괄해야 한다.

개발부 기술자들이 무엇인가를 개발해놓고는 영업부를 불러 <자, 우리 끝내주는 신기술로 성능좋은 거 만들었거든. 그러니까 잘 팔아봐.> 라면서 어떤 사람이 어디에 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품을 던져주는 엔지니어 회사는 애플같은 회사가 될 수 없다. 대략 소니가 여기에 속한다.

영업부(기획부)에서 시장상황을 계산기로 두드려서는 대충 이런 저런 부품을 짜맞춰서 원가 수준 어느 정도의 제품을 어떤 값에 내놓으면 팔리겠다고 결정한다.  개발부를 불러서는 <원가는 어느 정도에 낮추면서 대략 요정도 품질은 내주는 제품 개발해봐.>라고 요구하는 영업위주 회사도 애플같은 회사가 될 수 없다. 지금의 삼성이 이 경우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에게 어떤 제품을 제공하면 생활이 보다 편리해지면서 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는지, 꿈을 가지고 설계하는 인문학부가 컨셉을 짜면 개발부가 호응해서 제품을 개발한다. 그리고는 영업부를 불러 말한다.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재미있게 홍보해봐.> 이것이 애플이다.



그러므로 애플은 제품마다 문화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처음부터 인간과 사회를 연구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핵심인 스티브 잡스가 건재할 때만의 일이지만 말이다.


삼성은 어째서 애플같은 회사가 되지 못할까? 그 답은 조직에 이런 인문학부가 없으며, 제일 상위에서 제품 개발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종용씨가 말했듯이 단지 '운영체제가 없기 때문' 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 밝힌 비결은 쉽고 간단하다. 그러나 기업들이 쉽게 따라할 수는 없다. 아마도 생소하기에 따라 하려면 고통도 따를 것이다. 그렇지만 애플처럼 되고 싶다면 이 길 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없다. 삼성이 정말로 애플처럼 되고 싶거나 언젠가 애플을 능가하고 싶다면 꼭 이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p.s : 애플 같은 회사가 된다고 해서 애플처럼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애플 같은 회사가 되지 않고는 그런 성공은 꿈조차 꾸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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