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완전자급제



단말기 유통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 영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국내 유통시장의 불투명성 때문에 법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시행 두 달이 넘은 단말기 유통법은 많은 면에서 국내 시장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통사는 단통법에 맞춘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고 위약금, 기본료 폐지를 서두르고 있다. 제조사 역시 국내 단말기 출고가를 정할 때 거품 가격 논란을 부르지 않도록 신중한 고려를 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요금인가제나 각종 규제정책도 재검토하자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실제로 정책목표인 '가계 통신요금 인하'라는 효과를 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갈린다. 통신업계에서는 같은 요금제에 대한 데이터 제공량을 늘리고 위약금을 없앴으며, 보조금이 공평하게 지급되는 만큼 사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결국 근본적인 통신요금 지출 금액에서 변화가 없는 만큼 아직 효과가 충분한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단말기 유통법보다 더 강도가 센 법안이 나온다. 국회 야당이 당론으로 정해서 주장해온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2015년 1월에 발의될 예정이다. 완전자급제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판매 결탁을 끊는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 국내 이동통신 시장 구조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마치 의약분업과 비슷하다. 의약분업 체제에서는 병원에서 의사가 치료와 처방을 하지만 약은 직접 팔지 않는다. 또한 약국에서는 약을 사먹을 수 있지만 치료와 처방을 할 수 없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단말기는 판매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판매점에서 구입한 단말기를 이통사 대리점에 가지고 가면 거기서는 요금제가 딸린 개통 서비스만을 제공한다. 단말기 판매점은 개통 서비스를 할 수 없고, 이통사 대리점은 단말기 판매를 할 수 없으면서 제품 판매와 서비스 가입을 완전히 분리된다.


이 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이통사가 단말기를 유통하게 되면서 다양한 단말기가 출시되지 않고 고가 스마트폰 위주로만 시장이 형성됐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통사 입장에서 마진이 많이 남고 관리가 쉬운 몇몇 단말기 위주로만 파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되면 단말기와 서비스를 함께 팔면서 사용자 모르게 처리하는 중간마진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재 소비자들은 휴대폰을 이동통신사 대리점 및 판매점에서 구매하고 있다. 해외 직구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통사 요금제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단말기를 구입한다. 그러다보니 이통사는 보조금을 이용해 고가요금제 가입자에게는 최신 단말기를 싸게 팔고, 저가요금제 가입자는 제 값을 받고 단말기를 판다. 이용자 차별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셈이다.


단말기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제조사와 통신사가 결탁하여 보조금을 매개로 하는 고가의 단말기, 고가의 요금제를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근절할 수 있다는 것이 발의한 의도이다. 또한 자급제가 저가폰 및 해외의 다양한 단말기, 중고 단말기 거래도 활발해지고, 결국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미 국회에서 4개의 단통법 개정안이 나와 있고 여기에 완전자급제까지 포함하면 2015년은 연초부터 이통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법안이 거세게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과연 완전자급제 만을 가지고 요금 인하효과가 나올 것인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적극적인 경쟁을 벌이지 않고 현재 점유율에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사용자에게 불편만 주고 실질적 요금인하효과는 거의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말기 유통법 시행 직후, 이동통신사가 오히려 보조금을 소극적으로 지급하면서 시장의 눈치만 보는 바람에 단말기 구입가와 통신요금이 체감상 더 올라간 시기도 있었다. 반대로 단말기 판매와 가입을 촉진해야 하는 시기가 되자 아이폰6 판매를 계기로 일제히 불법보조금을 살포하고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의 행태가 다시 벌어졌다. 어떤 의도로 법안이   나오더라도 업계에서 그걸 지킬 의지가 없다면 별 효과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전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이통사 대리점의 이해관계도 문제다. 이들 대리점은 통신 서비스를 파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매출 가운데 고가 단말기 판매 수익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완전자급제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게 된다면 제도의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은 단통법 자체가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있으며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에 따로 보완책이나 더 강화된 법안을 내놓는 건 시기상조란 논리이다. 정부측에서는 단통법 시행 이후로 고가요금제 가입 감소, 중저가요금제 가입 증가, 가입비 폐지, 출고가 인하 등 요금 및 서비스 경쟁 활성화 등의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이지만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설령 시행되지 못하더라도 논의되는 자체로 효과가 있다. 단통법이 제대로 된 요금 인하 효과를 주지 못하면 더 강경한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는 압박 자체가 현 제도 하에서 이통사와 제조사의 요금 인하 노력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효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단말기 완전자급제란 카드를 대기시켜 놓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