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제압한다. 유도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얼핏 무예 용어처럼 보이지만 더 깊은 인생의 진리를 품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부드러운 것(소프트웨어)이 딱딱한 것(하드웨어)을 이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는 세계적 콘텐츠는 세탁기나 냉장고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심지어 이것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유무선 네트워크 기술과 스마트기기의 발달은 우리에게 '클라우드'란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전에는 데이터 형태의 콘텐츠를 디스크나 메모리 같은 물리적 저장매체에 넣어 들고  다녔지만 이제는 형태가 없는 클라우드 저장장치에 던져놓고는 언제든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해서 이용하게 되었다.



크롬캐스트



2014년 5월 14일, 구글은 크롬캐스트를 한국에 발매했다. 크롬캐스트는 크기가 작기에 빈약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크고 강력한 하드웨어가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줄 거란 개념에서 본다면 들어있는 부품도 간단하고 가격도 약 5만 원으로 저렴한 이 기기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써본 크롬캐스트는 전혀 달랐다. 크기는 작지만 기능은 강력했고, 저장장치는 없지만 클라우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온라인 동영상과 음악을 TV로 즐기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 적힌 문구는 가치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귀찮게 공부해가면서 쓰는 스마트기기가 아니라 즉석식품처럼 사서 포장을 뜯고 일정순서로 조작하면 바로 쓸 수 있다. 그게 크롬캐스트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자 가치다.



크롬캐스트



◇ 쉬운 사용법이 돋보인다 - CD 한 장 크기의 패키지를 열면 그 안에는 작은 크기의 본체가 들어있다.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라고 하는데 사실 엄지손가락보다는 약간 더 크다. 중요한 건 상당히 작은 이 본체가 전원공급 기능을 제외한 모든 크롬캐스트 하드웨어의 전부라는 점이다.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등 PC의 기능확장을 위해 꽂는 주변기기인 동글과 비슷한 크기다.


크롬캐스트



크롬캐스트를 TV나 모니터에 있는 HDMI단자에 꽂고 뒤쪽 단자를 통해 전원을 연결한다. 그리고 TV를 조작해서 HDMI단자에서 입력받은 영상을 출력하도록 조절한다. 그러면 크롬캐스트를 사용하기 위한 세팅 방법이 화면에 떠오른다. 


지시대로 와이파이를 접속하고는 연결해서 쓰고자 하는 스마트폰에 크롬캐스트앱을 설치한다. 지원 운영체제는 다양해서 안드로이드 뿐만 아니라 아이폰, 아이패드도 가능하고 크롬 브라우저가 실행되는 매킨토시나 윈도우 PC도 가능하다.

 



크롬캐스트



간단한 선택을 통해 세팅이 끝나면 바로 크롬캐스트를 쓸 수 있다. 사용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한데 크롬캐스트가 지원되는 콘텐츠 앱을 실행하고는 원하는 동영상을 찾아 재생한 뒤 크롬캐스트로 인해 추가된 아이콘을 눌러주면 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튜브, 티빙, 호핀 등이 크롬캐스트를 지원한다. 티빙과 호핀은 가입한 뒤에 유료 결제를 해야 제대로 콘텐츠가 보인다.



일단 무료로 쓸 수 있는 유튜브를 써보았다. 평상시에는 없던 아이콘이 크롬캐스트를 연결하자 보이기 시작했다. 이 아이콘을 누르면 보던 영상이 크롬캐스트와 연결된 TV를 통해 흘러나온다. 스마트폰에서는 자동으로 재생이 멎는다.


얼핏 봐서는 스마트폰이 내보내는 영상을 TV에 뿌려주는 기능인 미러링과 같다. 하지만 크롬캐스트는 클라우드 스트리밍 방식을 쓴다. 영상은 모두 클라우드에 있고 우리는 스마트기기를 통해 어떤 영상을 몇 분부터 어떤 순서로 뿌려줄 것인지 조작만 한다. 스마트기기와 크롬캐스트는 클라우드를 조작하는 리모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크롬캐스트



리모콘처럼 클라우드를 향해 재생 명령을 내려주면 나머지는 클라우드와 크롬캐스트 사이에서 알아서 한다. 따라서 연결된 스마트기기는 꺼져도 상관없으며 이후에는 배터리도 별도로 소모되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이라면 유튜브 자체 클라우드가 영상을 보내주고, 티빙이나 호핀 역시 해당 클라우드가 영상 전송을 맡는다.


크롬캐스트



영상 자체는 클라우드가 맡지만 조절은 크롬캐스트와 연결된 스마트기기에서 하게 된다. 볼륨조절을 비롯해서 영상을 빨리 감거나 되돌리는 기능도 담당한다. 플레이리스트 기능을 이용해서 이어서 재생할 영상을 지정한다. 영상은 대부분 매끄럽게 재생되었으며 재생 이후로는 철저히 스마트폰과 분리되어 작동했다. 수많은 영상을 보면서도 별도의 저장공간이나 처리성능이 전혀 필요없었다. 클라우드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 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콘텐츠와 국내가격은 약간 아쉬워 -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기능적인 면으로는 유튜브 영상을 무작위로 선택해서 재생할 때 도중에 오류가 나며 재생이 중지되는 경우가 있었다. 영상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 유튜브와 크롬캐스트의 연결에 약간의 버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원하는 한국 콘텐츠 측면에서도 아쉬운 면이 있다. 아직 아이폰용 티빙앱은 크롬캐스트를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크롬이 1,080P 해상도를 지원하는 데 비해 티빙은 전체적으로 콘텐츠 해상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크롬캐스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화면 TV사용자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화질 지원이 함께 되는 편이 유인효과가  클 것이다.


크롬캐스트


현재 환율을 생각하면 미국 가격으로 35달러인 제품이 4만 9,900원으로 가격이 매겨진 점도 아쉽다. 물론 크롬캐스트의 매력은 가격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제공한다. 하지만 국내 구입자가 다른 나라 구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야 한다면 차별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크롬캐스트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콘텐츠에 강한 구글의 강점을 최대한 살린 제품이다. 사용자에게는 어려운 조작법과 복잡한 가입과정이 없는 쾌적한 콘텐츠 이용을 보장한다. 특히 미러링 방식이 아니라 클라우드 영상을 직접  TV에 전해준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해도 하드웨어를 따로 구입할 필요없이 기존에 구입한 크롬캐스트만으로 발전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커다란 TV는 있지만 막상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면,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그저 편하게 영상을 즐기고 싶은 뿐이라면 크롬캐스트는 아주 멋진 선택이 될 것이다. 다만 복잡한 기기 조작에서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는 마니아, 스마트폰 조작을 아예 못하는 분, 커다란 셋탑박스를 봐야만 삶의 만족을 느끼는 분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