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매우 특이한 위치에 서 있었다. 일반적인 회사의 리더는 거의 전부가 경영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사업가 가운데는 엔지니어 출신도 상당히 많다. 아주 드물게는 디자이너 출신이 리더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잡스는 이 가운데 어느쪽도 아니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결단일 것이다. 마치 좋아하는 선불교의 참선이 추구하는 깨달음처럼 말이다.


무책임하게 ‘잘 만들어라.’하고 말하기는 쉽다. 최고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마케터와 기획자를 모아놓고 리더가 격려 한번 하고 나가면 최고의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그러나 최고의 선수를 모아 놓는다고 해도 최고의 팀이 되어서 최고 성적을 올리지는 못한다. 그들이 펼치는 능력과 생각은 제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어떨 때는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다.

창조적 기술의 도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제품을 접했을 때 받는 느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것에 미의식을 불어넣으려 한다. 이것은 정말 바람직해 보이지만 디자이너의 생각을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 어떻게 될까? 디자이너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만을 생각한다. 그것을 구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생각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실패했던 컴퓨터 넥스트 큐브를 설계한 디자이너 애슐링거는 검은 마그네슘을 주조로 만들때 그것이 단 1밀리라도 정사각형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 치의 이음새도 보이지 않고 매끈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제품가격은 1만달러에 달했다. 잡스와 애슐링거는 최고의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이 기꺼이 최고의 가격을 치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때의 잡스는 소비자의 생각을 대표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잡스의 성공담 뿐만 아니라 이런 실패담으로부터도 창조적 조합을 하는 데 주의할 점을 배워야 한다.

리더로서 창조적 기술을 조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많은 상충되는 주장을 듣고 파악해야 한다. 위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디자이너는 생활 속의 매끈한 디자인과 독특한 기능성을 우선한 기술을 도입하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엔지니어는 그런 기술구현에 드는 시간과 비용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동시에 도전정신이 강한 엔지니어는 겉모습보다는 강한 성능과 높은 효율성을 가지자고 주장할 것이다.

마케터는 시장조사 결과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는 이것이며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요소는 이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영학을 배운 사람은 원가절감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 지 조언할 것이다.이 많은 아우성과도 같은 목소리 속에서 리더가 창조적 기술을 조합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결정이다. 



모든 것을 전부 취할 수는 없다. 디자이너가 바라는 미학적 설계는 엔지니어가 바라는 효율성을 구현하지 어려울 수 있다. 마케터가 조사한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을 넣게 되면 디자이너가 주장한 매끈한 디자인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성능과 디자인을 전부 살리려면 원가절감은 어림도 없을 수도 있다.

리더는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창조적 기술의 조합이라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맥의 운영체제를 설계할 때 남들이 사소하게 생각하는 창의 모양과 색깔 하나를 결정하는데 일주일 이상을 썼다. 

지금 적용되어 있는 맥 운영체제의 왼쪽 위 창메뉴 색깔을 보자. 빨간색과 노란색, 녹색으로 정확히 신호등의 색깔이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가장 직관적인 신호등 말이다. 이 색깔을 통해서 소비자는 어떤 버튼이 가장 신경쓰고 주의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빨간색은 창을 완전히 닫는다. 노란색은 잠시 멈추며 접어놓는다. 녹색은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창을 펼친다. 이것은 우리가 횡단보도에서 받는 정신적 신호의 요소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의미다. 이런 창의적 요소는 엔지니어가 생각해내기 어렵다. 디자인적인 요소에 가깝기에 잡스처럼 세심한 리더의 지도 아래서 나올 수 있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한때 투명 케이스 열풍을 일으켰던 애플 아이맥의 디자인은 제한된 환경 아래서 잡스가 보여준 결정의 힘을 잘 보여준다. 잡스가 갓 복귀했을 때의 애플은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고 컴퓨터의 기술력도 높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아직 의욕을 가지고 있는 개발팀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잡스는 새로운 컴퓨터를 설계해야했다. 때마침 불어온 인터넷 붐에 맞춰서 가장 간편하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운 잡스는 차별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민했다. 본래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차별성이란 비싸고 성능좋은 칩이나 비싼 재료를 쓴 주변기기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모두가 제작원가 높아지는 것 뿐이다. 소프트웨어의 차별성 또한 비슷해서 오랜시간동안 노력을 들여야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잡스는 당장 직감적으로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차별성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생산원가가 높아지지 않는 방식이어야 했다. 기술적인 차별성을 세우면서도 기술에 둔감한 소비자가 곧바로 느낄 수 있는 그것은 바로 케이스였다. 잡스는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케이스를 원했다.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통합하고 싼 재료의 플라스틱이지만 고급스럽고 미래적으로 보이는 케이스가 필요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를 반투명의 플라스틱 케이스로 그것을 실현했다.


이런 반투명 케이스 역시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전시장의 개발용 제품이라든가 장난감 같은 분야에서 이미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에 도입하는 건 전혀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자칫하면 너무 싸구려나 장난감처럼 보일 우려가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에 색채를 균일하게 입히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플에서는 사탕공장에서 착색하는 과정을 견학하면서 일련의 공정을 배웠다. 한정된 상황에서 재빨리 결정을 내려서 자신들만의 어떤 것을 창조해내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법은 결정력에 있다.
 

약간의 재능은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이룩한 성공에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다. 그는 늘 생활하면서 상상하고 검토했으며 결정했다. 그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사소해 보이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컴퓨터에 적용해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는 지를 생각했다.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하던 어떤 날을 생각해보자. 그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 표지판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바로 스스로가 추구하는 길이라고 했다. 인문학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생활이다.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술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라. 그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주는 창조적 조합 기술의 핵심일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전자책 서점 북릿에 기고한 원고를 가공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