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개인과 기업, 정부의 자세가 엄연히 달라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개인은 사회에 불만이 있다면 우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에 따른 후속 대책이나 조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이 문제만 제기하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비난받을 행동도 아니다.


반대로 기업은 문제를 제기할 때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개인이 모여서 하나의 방향을 추구하는 만큼 힘이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도 조치를 생각하면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 공권력이나 입법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은 다르다. 정부기관은 엄연한 조직이며 공권력을 가지고 있다. 유권해석이란 권한도 있고 입법부에 법안을 제안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무엇인가에 문제를 제기할 때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책임감이 없어도 안되고, 대책과 조치를 예상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기관의 바른 자세다.


근래 IT업종이 매우 격렬한 변화에 휩쓸리고 있다보니 관련 기관이 방송통신위원회가 힘들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분명히 힘을 가진 이 정부기관이 무책임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조치를 취한다면 관련산업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문제가 터진 것이 바로 근래 벌어진 조립PC에 대한 전파인증 논란이다.


요즘 ‘무조건 내지른다.’ 라는 말이 있다. 방통위가 처음 조립PC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내지른 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 따른 파문이 너무도 당연한데 현실적인 아무런 대책이나 조치도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세한 업체나 개인이 조립하는 PC에 일일히 전파인증을 받으라는 것부터가 말도 안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논란을 부른 끝에 대책이 나왔다. (출처)






앞으로 조립PC는 전파인증이 면제된다. 단, 인증 받은 부품이거나 소비자 경고 문구를 부착하는 조건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립PC’에 대한 인증제도 개선방안을 내놓고 오는 7월까지 관련 고시를 개정·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PC의 경우 원칙적으로 완성품 상태에서 전자파적합 시험과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인증을 받은 부품만으로 조립, 완성품 상태에서 시험·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소비자보호 경고 문구를 표시한 경우에는 인증이 면제된다.

 

아울러 방통위는 제도 실효성 확보를 위해 인증 받지 않거나 인증 당시와 다른 부품이 포함되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사후 단속을 강화하고, PC 조립 가이드라인 마련과 전자파 측정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영세 조립PC 업체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이럴 바에는 왜 처음에 그리 떠들썩하며 물의를 일으켰는지가 의심스럽다. 불법이니 용납할 수 없다고 행정기관이 말한다는 게 민간업체나 개인에게 얼마나 무서운 의미로 와 닿는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걸까?





행정기관이 생활속 불법을 지적하면서 엄단하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예를 들어 쓰레기 무단투기라든가, 횡단보도 무단횡단이라든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을 말하기 이전에 과연 그런 현상이 왜 벌어지며, 이들을 올바르게 법을 지킬 수 있게 유도할 방법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예를 들어 각 가정마다 방문해서 개인의 컴퓨터를 수색해 불법 운영체제가 깔려있는지, 불법복사 프로그램은 있는지 조사하고 단속하겠다고 말해도 틀린 건 아니다. 한국의 불법 복사율은 매우 높은 편이며, 특히 개인은 비싼 포토샵이나 윈도우 등을 일일히 사지 못해서 복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지만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단속하고 엄단하겠다면 죄인을 양산하고 엄청난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조립PC의 전파인증 사태가 주는 교훈은?


조립PC의 전파인증 논란의 교훈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방통위의 말은 원론적으로는 맞다. 조립PC의 부품이 개별적으로 전파인증을 받았더라도 조립한 뒤에 완제품은 별도제품이므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자파로부터 개인을 지키고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그렇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PC는 개인이나 영세사업자가 단순 조립을 해서 쓰거나 팔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일히 인증받게 만드는 방법도 마땅치 않고, 관련 비용이 너무 들어서 채산성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대기업 PC가 아닌 나머지 사업자에게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방통위는 단속의지를 불쑥 내질러 놓고는 결국 경고 스티커 부착 정도로 타협하고 말았다. 이럴 바에는 대책과 조치를 마련해놓고 단속을 발표하는 게 훨씬 났지 않았겠는가? 결국 책임있는 행정기관이 무조건 지르고 봤다는 결과가 된 것이다. 부디 앞으로는 신중한 검토를 통해 합리적이고 책임있는 말과 행동만 해주기를 바란다. 


전문 참조 - 한겨레 오피니언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