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은 계속 편리한 쪽으로 진보한다. 그런데 과연 이 진보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내가 보는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다. ‘단순작업을 줄이고 좀더 창의력있는 일을 하도록‘ 발전하는 것이다. 기계와 동력기관의 발전은 이런 움직임에 특히 힘을 실어주었다.



우리 일상생활을 한번 보자.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것들은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지만 어떤 창의성도 없는 단순노동 - 빨래, 청소, 설걷이를 대신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꼭 필요하지만 힘만 드는 일에서 해방되는 대신 그 시간과 힘을   다른 데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태블릿- 특히 아이패드에서 볼 수 있는 전자잡지의 경우를 보자. 이런 전자잡지의 핵심은 그 안에 담긴 글과 사진, 그리고 그것들의 절묘한 배치와 연출을 위한 인터페이스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드는 노력과 인건비의 상당수는 창의력을 위한 작가와 디자이너가 아닌, 프로그램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에게 돌아간다.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의 중요성과 역할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이들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자잡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코딩이 하는 역할은 따분한 단순노동에 가깝다.  그저 화면에 글과 사진을 표시하고 넘기게 하는 것 외에 그다지 창의력 있는 코딩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런 코딩을 자동으로 컴퓨터가 해준다면, 보다 창의력이 필요한 게임이나 유틸리티쪽에 그런 역량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쿼크사에서 만들고, 인큐브테크에서 국내 유통하는 쿼크엑스프레스9K 가 이번에 발표되었다. 전자출판과 인쇄디자인에서 이미 정평이 나있는 이 소프트웨어의 최신버전에는 놀랍게도 아이패드 잡지의 자동제작 기능이 있다. 마침 나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해서 CEO에게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쿼크엑스프레스(QuarkXPress)는 유명한 소프트웨어다. 윈도우와 PC가 화면에 보이대로 디자인하고 그대로 출력하는 기능을 지원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매킨토시에서 돌아가는 쿼크엑스프레스는 직관적인 디자인과 그대로 출력되는 위지위그 기능을 가졌다. 또한 글자폰트를 예쁘게 다듬어주는 포스트스크립트 기술까지 있어 출판업계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지금도 출판계에 종사하는 디자이너 다수가 맥과 쿼크를 쓰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잡지와 단행본의 대부분이 이 소프트웨어를 거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쿼크에게도 안좋은 시절이 있었다. 맥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점차 윈도우와 PC의 기능과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인 시장상황이 불리해진 것이다. 여기에 경쟁자로 뛰어든 어도비의 인디자인은 비슷한 전자출판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기에 이르렀다. 물론 쿼크처럼 좋은 사용자 지원과 기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 시장에서는 오히려 쿼크보다 인디자인이 앞서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쿼크엑스프레스9은 비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이패드 잡지앱을 자동으로 제작할 수 있는 앱스튜디오 기능이다. 이건 그동안 전자출판계와 디자이너들이 정말로 희망했던 기능이다. 잡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버그와 싸울 필요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아 완전히 혼자서 전자잡지를 만들어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전문 출판도구 답게 쿼크엑스프레스는 앱스튜디오 안에서도 다양하고 강력한 기능을 제공한다. 자유롭게 이미지와 사진, 동영상과 사운드를 삽입할 수 있다.

여러 슬라이드 효과와 버튼 등의 인터페이스 설계도 가능하다. 여러가지 테마와 탬플릿이 준비되었기에 복잡한 세팅도 필요없이 즉석에서 컨텐츠만 조합해서 넣고 전자잡지앱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특히 기존 종이 인쇄용 파일들을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큰 인상을 주어 2011맥월드의 베스트 크리에티브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맥 월드 그랜드 프릭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아이패드 잡지 자동제작, 쿼크는 성공할까? 

디자인 도구가 이렇듯 앱을 자동으로 제작하는 기능을 가지는 건 또 하나의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기술을 잘 아는 엔지니어는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고, 디자인을 잘 아는 디자이너는 기술에 둔하다. 전자잡지에서 독자가 보고 싶은 것은 디자이너가 만든 결과물이지, 엔지니어가 만든 툴이 아니다. 따라서 툴제작을 위한 엔지니어의 역할을 컴퓨터가 맡는 것은 인류문명과 같은 또 하나의 진보인 것이다.


쿼크사가 이런 기능을 떠올리고 제대로 구현한 것은 그래서 더욱 놀랍고 좋은 일이다.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엔지니어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경영진에게는 엔지니어의 고용, 유지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라서 쿼크의 성공가능성은 매우 크다. 쿼크엑스프레스는 매킨토시용 외에도 윈도XP, 비스타, 윈도7용으로도 출시되었다. 인디자인과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간 셈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쿼크엑스프레스는 전문가용 도구다. 아이패드 전자잡지 앱을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지만, 막상 잡지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은 복잡하고 어려운 편이라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없다. 결국 전문가만의 영역이란 뜻이다. 기왕이면 비전문가가 간단한 사보나 잡지를 만들어 바로 아이패드앱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버전이나 기능도 같이 출시해준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애플의 아이무비와 파이널컷의 경우처럼 말이다.


무르익어가는 전자잡지 시장과 함께 쿼크엑스프레스9은 소비자에게 매우 좋은 기능을 갖춰 나타났다. 이런 앱스튜디오 기능이 또다른 혁신의 신호로서 다른 관련 소프트웨어에 경쟁적으로 도입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보다 넓은 의미에서 쿼크의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