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인류가 가진 기술의 발전속도란 것이 늘 일정하지는 않다. 어떨 때는 답답할 만큼 느리고, 거의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 때로는 어떤 이유로 해도 뒤로 퇴보하는 경우까지 있다. 하지만 일단 어떤 돌파구를 만들고 힘을 받으면 맹렬한 속도로 발전해서 마침내 문화와 경제 전반을 바꿔 버린다.



나는 2001년에 이미 손 안의 작은 컴퓨터라는 PDA를 썼다. 잡스가 돌아온 후의 애플이 포기한 뉴튼 메시지 패드 분야의 인재들이 떠나서 세운 회사의 작품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의 조상님이다. 나는 팜 파일럿이라는 그 기기를 통해 손 안에서 정보를 조작하고 얻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멋진 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PDA가 막 그렇게 꽃을 피웠을 때는 금방이라도 신세계가 열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으로 책도 보고, 그래픽도 보고, 내장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음악을 듣다가 외부 키보드를 연결해서 글도 썼다. 인터넷과 통화 기능이 없었다 뿐이지 거의 스마트폰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바로 이 기기의 한계였다.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도구가 없었기에 이 기기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기술 매니아들이나 쓰는 기기로 전락했다. 또한 팜 파일럿의 혁신 부족과 때마침 나온 MS의 윈도우CE가 모든 걸 퇴보시켰다. 느리고 오류가 많은 쪽으로 진화해버린 PDA는 마침내 더이상의 진보를 이뤄보지 못하고 악평속에 쇠락했다.



그 마지막 끝자락에 휴대폰에 탑재되어 나온 것이 바로 악명이 자자한 삼성 옴니아폰이다. 그 문제는 삼성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사실 근원적인 책임은 그렇게 엉망인 운영체제를 만들어 배포한 마이크로 소프트에게 있다. 물론 그에 대항할 어떤 대안도 시장에 없었다는 점은 더 절망적이었다.

그럼 전자책 문제로 넘어가보자. 오늘날 전자책 업계는 나름 아이패드 이후에도 잘 굴러가고 있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관련 전자책이 초토화될 거란 우려와는 달리 저가 단말기 전략과 컨텐츠와의 강화로 인해 아마존은 별다른 영향없이 순항하고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혁신의 문제다. 아이패드는 어쨌든 애플의 기기로서 새로운 기능과 개념을 추가하며 진화하고 있지만, 아마존의 킨들은 단지 가격만 100달러에 근접하고 떨어뜨리고 있을 뿐 그이상 무엇인가 묘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 전자책 업계는 그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한국 전자책 업계, 클라우드를 준비하는가?



클라우드가 결국은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클라우드에 대해 나는 아직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클라우드란 유선이 아닌 무선으로 개인 단말기가 항시 메인프레임에 접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은 어떤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4G 서비스는 초기단계에 불과하며, 요금이 비싸다. 게다가 기존의 무제한 요금제는 폐지되는 추세에 있다. 막상 클라우드 서비스를 강하게 뒷받침해줘야 할 통신업체는 지금의 트래픽도 감당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형태를 바꿔서라도 어쨌든 클라우드 서비스가 화두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애플은 아이튠스가 주도권을 쥔 음악에서 적극적으로 클라우드를 제공할 것임을 확인했다. 구글은 아마도 현재의 업무용 오피스 개념에서 클라우드를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존 역시 책과 컨텐츠 위주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며 한국에서도 N스크린 등 동영상 서비스 위주로 시범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어디를 봐도 전자책 쪽에서 클라우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분명 이것이 앞으로의 진보를 좌우할 것임은 확실한데도 그저 제자리에 머물려는 것이다. 종이책 판매량을 더 걱정하는 상황의 한국에서 전자책으로 가는 흐름 자체가 불만인데, 아울러 클라우드라니 바라는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흐름에 뒤지면 결정적으로 외국에 뒤지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나는 내가 쓰던 PDA의 예를 들었다. 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는 오히려 악평만 듣고 사라질 수 있다. 한국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계속 편리하게 변하는 데 한국 전자책 단말기와 그 서비스만 구시대의 서비스 위주로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업체의 전자책 자체가 비싸고 불편한 것이란 선입관 속에 침몰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 자리에 구글이나 아마존의 서비스만 남아 버리지 않을까?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한국 전자책 업계가 최소한 한국이라는 시장만큼은 호락호락하게 내주지 않기를 바란다. 아래한글이 있기에 한국이 워드프로세서에서 대접을 받듯이 그래야만 한국 전자책 소비자가 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