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문화재라고 하면 경건하게만 생각한다. 국보 1호인 서울 남대문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화재들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긴 소중히 보전하려면 가장 좋은 것이야 쓰지 않고 단지 보존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닿을 수록 파손될 확률이 커지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박제된 문화재를 흘끔 보는 것만이 전부일까. 오늘날 문화재라고 불리는 것 가운데는 상당수가 당대에는 그냥 먹고 쓰고 입는 생활도구이자, 생활속의 한 요소였다.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요소였다.



그런 문화재를 단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는 과연 이게 왜 소중하고 좋은 것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저 판넬에 마련된 안내글 만으로 그렇구나 하고 머리로 이해할 뿐이다.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안동으로 가서 오래된 집-고택을 체험한 건 좋은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있는 고택 자체가 한국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즐비한 마을이지만 이곳은 민속촌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모델 하우스 같은 곳이 아니다. 또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격리된 곳도 아니다. 실제로 사람이 살고 음식을 해 먹고 아이들이 노는 곳이다.



맨 처음 간 곳은 경당고택이었다. 원래 경당종택의 위치는 광풍정이 있는 제월대 앞에 있얶지만 약 24년전 지금 위치로 옮겨져 중건되었다고 한다. 위치로는 달라졌지만 집 구조나 내부 생활 방식은 나름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을 지은 경당 장흥효는 학봉 김성일의 문하로 영남학파의 근간을 형성한 성리학자라고 한다. 흔히 조선시대의 사림을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나누는데 그 한 축인 셈이다, 말하자면 뿌리깊은 양반집안이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고택의 모습은 지금의 건축물에 비하면 우아하고도 당당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오래되었지만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잔 기둥과 그 위에 얹은 기와지붕에는 문양까지 아로새겨져 있다, 아치형 지붕의 단아함은 단지 효율만 추구한 현대 건축물에 비해 생활하는 예술품이란 느낌을 준다.


이곳 경당고택에서 단지 집만을 본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양반집안의 옛음식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른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는 잔칫상이 나올까? 잔뜩 기대한 이곳 음식이 선을 보엿다.

이곳 경당종택은 <음식디미방>을 지은 정부인 장씨의 친정이다. 정부인 장씨는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로 1673년에 음식디미방이란 국내 최초의 한글요리서를 펴낸 분이다.



차림상은 잔치짓 상처럼 정말 푸짐한 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갈하고도 맛있는 반찬으로 가득했다. 밥과 반찬이 정말 꿀맛처럼 술술 넘어갔다.



음식디미방에 대해 좀더 말해보자.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한글 조리서로서 330년 전 조선시대 종가에서 즐겨먹던 음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경당고택에서는 여기 적히 음식을 직접 재현해서 내놓고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건 제사상에 올려놓는 저 밤과 대추 등을 쌓은 음식이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노력이 들어간 이것은 꼭 여자들의 댕기머리 올려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일일이 사람이 쌓는 것이기에 시간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마치 탑을 쌓듯 하나하나 쌓아올리며 정성을 들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어디를 가든 잠을 자는 데야 최신 시설이 갖춰진 호텔이나 여관이 편하다. 옛날 조상들의 지혜와 문화가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난방시설이나 각종 편의시설에서는 옛집이 현대 가옥을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재에서 직접 하룻밤을 자게되면 그 기분은 각별하다. 마치 시간을 거스러올라가 옛날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지로 만든 창문과 독특한 창틀 너머로 보이는 실루엣도 그렇고,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잠자리가 된 문화재 고택은 안동의 가일 수곡고택이다. 마을의 인심이 태양처럼 아름답다는 뜻의 가일은 그런 면에서 푸근한 느낌을 준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군복입은 가일이 아니다.

수곡고택은 1792년 (정조 16년) 권조가 할아버지인 수곡 권보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종가로 50여 호 되는 마을 북쪽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가이며 부속문화재로 안채, 사랑채, 별당, 대문채, 사당, 화장실이 있다. (무려 화장실까지 문화재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직접 잔다니. 마치 고려자기로 음식 담아먹는 것만큼이나 송구하지만 좋은 경험이다. 그래서 호기롭게 웃으며 잠을 청했지만 고택 특유의 정취 외에도 마침 닥쳐온 겨울 추위가 강하게 느껴졌다.



내륙인 안동의 겨울은 춥다. 마당에만 나가 있어도 손이 시렵고, 추위가 스며든다. 옛날 조상들은 과연 이런 추위를 어떻게 이겨내고 품위를 지키며 생활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고택에서 두터운 이불과 요를 깔고 덮고는 잠을 청해보았다. 공기가 너무 맑아 투명한 것처럼 보이는 별빛을 새겨보며 문화재에서 편한 잠을 잤다.



일생을 살면서 반드시 편한 것만이 최고는 아니다. 가끔은 불편해도 마음에 얻는 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경험해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이번 안동의 고택체험은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옛 조상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느끼게 해준 좋은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