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나는 삼성을 다룬 포스팅에서 삼성전자가 디지털 사시미 이론을 통해 일상재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재란 성능과 품질이 거의 표준화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제품으로 가격 외에 다른 별다른 차이를 만들 수 없는 제품을 말한다.

삼성은 이런 일상재에서 약간 더 우수하고, 약간 더 품질좋은 제품을, 가장 빨리 내놓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한번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면 거기서 먼저 걷어가는 이득으로 더 효율좋은 공정개발과 생산성 향상애 쏟아붇는 방식을 반복하면 경쟁업체가 당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삼성의 결정적 승리비결이다.



삼성은 애플이 가진 운영체제가 없고, 애플의 핵심역량인 혁신성이 부족하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럼 애플은 왜 삼성이 가진 일상재의 강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가?

애플은 사실상 매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애플은 거의 모든 회사의 역량을 한정된 몇몇 작은 분야- 운영체제, 디자인, 그 외의 사용자 경험 향상에 쏟아붇는다. 그렇기에 실제적 연구예산이 옛날에는 IBM에, 지금은 마이크로 소프트에 뒤지지만 실제 개발 결과물은 훨씬 훌륭하게 나오는 것이다.

대신 애플은 이런 집중적 연구로 나오는 사소한 차이가 모여 만드는 사용자 경험을 최대한 비싼 값에 팔기를 원한다. 옛날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시절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혁신에 대한 대가가 너무 적다고 불평하는 대목이 있다. 보통 어떤 혁신에 성공하면 그 이익이 투자한 금액의 최소 3배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시장의 흐름이 2배조차도 잘 보장해주지 않으니 이래서야 누가 혁신에 도전하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최소한 자본주의를 모든 가치의 최상위로 놓는 미국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애플은 동시에 자사 제품이 범용화되어 일상재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무 잘 팔려서도 곤란하다는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두 가지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인가젯의 뉴스 하나를 보자.(출처:인가젯)

OS X로 구동되는 중국산 맥북 프로 클론이 $466에 온라인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맥북 프로 클론은 14 인치 1376×76816:9 화면비율 LED 백라이트 디스플레이, 인텔 아톰 D510 1.66GHz 프로세서, 2GB 램, 320GB 하드 드라이브 (5400rpm), Nvidia ION-2 및 인텔 GMA 3150 듀얼 그래픽, 1080p 비디오 재생 지원 등을 제공한다.
물론 상판의 애플 로고에도 불이 들어오고, OS X 스노우 레퍼드가 설치되어 있다.



이 뉴스 자체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돈만 되고 인기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짜를 만드는 중국에서 또 하나의 짝퉁 맥북을 만들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방면에서 이 뉴스는 많은 중요한 조짐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로 애플 제품이 인기를 얻어서 점차 시장의 한가지 표준이 되고 있다. 표준이 된다는 건 그만큼 라이벌들의 복제와 따라하기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킹되어 애플만이 가진 독특한 소프트웨어와 혁신역량이 외부에 무차별하게 이식될 수도 있다. 표준이기에 이 과정에서 애플에 굳이 돈을 주지도 않고 권리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도전이 거셀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즈가 그동안 얼마나 불법복사에 시달렸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둘째로 비슷한 기능을 담은 보급형 저가제품 출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일상재가 아니라면 어차피 돈 있는 사람만 사는 것이니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일상재로 되어 버리면 그것은 평등의 문제가 된다. 그 과정에서 높운 순이익률을 달성하려는 애플의 의도는 무산되기 쉽다.


문제는 오히려 개인의 사적인 불법복제를 방조하면서 세력을 키워 표준이 된 후에, 표준이란 지위를 이용해 돈을 버는 MS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애플이 싫어하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한다. 애플이 맥이나 iOS를 따로 하드웨어와 떼어서 표준 운영체제로서 파는 일은 애플이 망하기 직전에나 가능한 일이다.

애플 제품이 일상재가 되면 안되는 이유는?

소프트웨어에서 애플이 가장 우려하는 치명적 위협은 애플이 자랑하는 핵심역량인 운영체제가 싸구려 저가 중국제에 탑재되어 버리는 일이다. 또한 싸구려 대만제 휴대폰에 iOS가 깔리는 일도 언제 생길지 모른다.


애플 제품이 넷북도 되고, 범용 스마트폰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재다. 일상재가 되어 누구나 지겨워하면서도 들고 다니는 제품에서 문화현상이 생길 리도 없다. 애플 제품 매니아 가운데는 이 사과마크의 제품 로고 하나만으로도 존경을 받으려 하며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애플 제품을 쓰니 난 평범한 대중과 다르다는 차별화된 의식인데 애플 제품이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 들고 다니는 일상재가 된다면 무슨 자부심이 있을 수 있으랴.

이런 의미에서 비록 국내에서는 해킨토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운영되던 맥 운영체제가 대놓고 중국제품에 인스톨 지원된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 애플이 어떤 방식으로 이런 일상재화에 대항하는지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