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이번 G20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미국과 중국이다. 의장국인 한국이나 차기 개최국인 프랑스의 행보도 관심거리지만 환율등 국제적 현안을 둘러싸고 벌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그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었다. 냉전이 붕괴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에 대해 중국이 정면으로 맞선 일은 많은 점을 시사했다. 뉴스에서도 중국의 위치상승이 무섭다고 지적했다.

단지 정치나 글로벌 경제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미 IT에서도 중국의 위치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야후가 중국당국의 검열을 받아들였다. 구글은 중국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법에 맞서는 듯 하다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경제적 이득 앞에선 법도 무시하던 세계적인 기업들이 유독 중국 앞에서는 부당한 압력에도 굴복하는 모습이다.



애플은 어떨까. 누구나 탐나는 제품을 만들어 왔으며 어떤 대기업이나 산업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애플의 용감한 태도는 줄곧 소비자들의 칭찬거리가 되어왔다. 애플이라면 마치 정의의 히어로처럼 이런 중국에 맞서 당당히 자기 원칙을 주장할 거라는 예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회사에 비해 애플은 다르다. 라고 주장할 아무런 사실도 없다. 중국에서의 애플은 그냥 다른 글로벌 회사와 마찬가지로 매우 온순하고도 모범적으로 중국 당국의 규제와 법규를 지켜가며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애플의 정책과 맞지 않더라도 말이다.

애플을 대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인상은 매우 좋다. 그동안 이통사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와이파이를 제거하고, 폐쇄적으로 운영해온 국내 휴대폰 시장을 열고 단숨에 이용자 위주로 재편해준 해방자로서 대하고 있다. 그리고 일정부분은 그것도 맞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연 애플이 누구를 위해 그것을 했을까. 한국 소비자를 위해 특별히? 아니면 그냥 시장과 판매를 위해서? 애플이 만일 어떤 이념이나 목적의식, 혹은 철학을 위해서 행동했다면 한국과 다른 나라가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가벼운 뉴스부터 시작해보자. (출처)



중국의 몇 디지털 매장들은 화이트 iPhone 4의 발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매장들은 이미 화이트 iPhone 4들을 비축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izchina에 의하면, 이 화이트 iPhone 4는 원래 미국으로 배송될 예정이었으나, 애플이 이 계획을 수정해, 현재 애플이 공식적으로 중국시장에 판매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GB 화이트 iPhone 4는 $800에서 $1200 사이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모든 소비자가 바라는 화이트 아이폰4가 미국보다 중국에 먼저 선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별거 아닌 뉴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만일 이것이 중국이 아닌 한국이라면? 한국에서 최초의 화이트 아이폰4 발매가 시작된다면 매우 기쁜 일이 아닐까? 마치 구글이 영문에 이어 한글을 두번째로 지원한다는 뉴스처럼 말이다.

뭐 그래도 이런 거야 그럴 수도 있다. 중국은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폭스콘의 공장이 있는 나라다. 자기 나라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생산한 제품을 다시 비싼 돈으로 사주는 아주 고마운 나라다. 그러니 이런 혜택쯤은 줘도 될 듯 하다. 그러나 또 다른 뉴스도 있다. (출처:)



애플의 아이패드가 중국에서 기본적으로 2년간 워런티를 제공한다. 이것은 중국의 법 때문인데, 중국에서는 아이패드를 컴퓨터로 규정하고, 중국에서 판매되는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2년의 워런티를 포함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애플 제품의 기본워런티는 1년이다. 내가 알기로 예외는 없다. 애플 케어를 구입하든가, 별도의 보험을 들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중국의 법률은 좀더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모양이다.

형식적으로 애플은 각국의 법을 준수한다. 그러니 중국법에 따른 조치일 뿐 그다지 대단한 사실도 아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도 컴퓨터 메인보드는 주요부품으로서 최소 2년을 보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달리 애플 매킨토시의 로직보드도 기본 1년이 아니라 기본 2년 보증을 받는다. 또한 방통위에서 아이패드를 태블릿PC로 규정했는 데, 국내는 PC 무상보증기간이 1년이니 별 문제는 없다.

문제는 무엇일까. 애플의 이런 법 준수가 그다지 형평성 있기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와 맞물며 애플이 각국의 법을 정말 순수하게 준수하는 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 아이폰을 들여와 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 애플은 아무런 공식발표가 없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위피의 의무채용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결국 그 조항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이폰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개인정보보호법 가운데 위치정보법이 문제였다. 이것 때문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소비자의 지적에 방통위는 애플에 한해 예외적으로 이 법을 면제했다. 그러나 애플은 오히려 사업자등록을 했다. 그리고 아이폰은 국내에 들어왔다.



이후로도 애플이 무엇인가 한국에 늦게 들여오든가, 미 발매하는 제품이 있을 때마다 애플은 침묵했고, 소비자와 언론은 그 이유를 규제와 법률 탓으로 돌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애플에 대해 무엇인가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욕먹기 딱 좋은 일이 되었다. 애플은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애플의 AS에 대해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을 때, 애플 팬보이들과 소비자들은 모기업의 사주를 받은 딴지걸기라고 비판했다. 나름 이유가 있었지만 그런 건 애플의 매력에 빠진 사람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애플 코리아 관계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애플 코리아는 애플 본사의 지시에 따를 뿐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애플 소비자는 AS에 불만을 느끼면 모조리 애플 코리아만 욕하지 결코 본사를 욕하지 않는다.

애플은 왜 중국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가?

중국은 어떤가? 왜 애플은 중국에서는 한국처럼 조용히 기다리며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정부를 압박해서 좋은 여건이 형성되길 기다리지 않을까? 오히려 애플은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와이파이칩을 제거한 아이폰을 중국에서 출시한 바 있다. 중국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탓이다.



1) 중국은 애플에서 있어 가장 중요한 생산기지이자 매우 큰 시장이다. 마진 없이 납품하는 폭스콘의 조립공장은 아주 싼 중국 노동자의 임금으로 인해 이윤을 얻는다. 그리고 절약되는 그 원가는 고스란히 애플의 이익이 된다. 최근 애플은 거의 40프로에 달하는 순이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더구나 그런 제품을 다시 비싼 가격에 중국에서 팔 수 있다. 중국에서 파는 애플 제품은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원가로 따지면 바로 자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그냥 포장해서 자국 땅에 유통시키면 된다. 배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미국보다 훨씬 비싸고 지구 반대편 유럽까지 뿌려지는 애플제품과 가격이 같은 것이다. 운송료 절감분까지도 애플의 이익이다. 더구나 그런 제품을 사줄 수 있는 중국의 인구는 무려 13억이다.

2) 중국에는 광적인 애플 팬보이의 숫자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정부를 압박할 수 없다. 중국은 일당 독재국가다. 이유가 뭐든 섣불리 정부에 불만을 늘어놓으면 정치범이 된다. 누가 애플을 위해 중국 정부를 비난하겠는가?

3) 중국 정부는 당연히 애플에 호의적이거나 약해질 이유가 없다. 비록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지만 애플은 외국 기업일 뿐이다. 21세기 초강대국을 노리는 중국으로서는 장래 애플과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자국 기업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중국에 세금을 내고, 중국 법을 철저히 준수해주며, 중국정부의 뜻대로 움직여줄 중국기업 말이다. 그러니 애플에 특혜를 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애플이 중국법이 싫어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해도, 중국정부가 초조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애플과 중국이 치킨 게임을 벌이면 아쉬운 건 제품을 팔 엄청난 시장을 놓칠 애플이다. 애플이 중국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솔직히 한국은 소득수준이 더 높아진다고 해도 애플에게 그다지 구미 당기는 시장이 아니다. 인구 1억 3천에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일본과 소득은 낮아도 13억이 있는 중국 사이에 있는 5천만도 안되는 인구의 나라에 애플이 뭐 그리 목을 맬 것인가? 최악의 경우 한국시장을 포기해도 애플에게는 그다지 아쉬울 게 없다. 굳이 삼성이니 언론이니 핑계 댈 것 없다. 그냥 애플에게 한국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만큼 애플에게 대접받는 길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단 한가지가 있다. 국내에 애플 만큼 뛰어난 회사가 나와서 우리가 애플에게 아쉬울 것이 없어진다면, 그래서 한국 시장에서 팔린 다는 자체가 그 회사의 품격과 관련될 정도의 위치가 된다면 해결된다. 그러면 애플도 중국만큼 우리에게 대우를 해줄 것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어떤 제품도 발매할 것이고, 한국 정부의 법을 준수하면서도 잽싸게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가장 좋은 가격에 말이다.

어쨌든 사람이든 국가든 일단 힘을 가지고 볼 일이다. 애플조차도 힘을 가진 중국에는 거만하지 못한 것을 보며 다소 냉소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여유가 되면 우리는 중국에서 아이패드를 구입하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