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IT제품에 늘 기대를 하고 있다. 어떤 제품이라도 잡스의 손길을 한번 거치면 매우 다양하고 쉬운 쓰임새를 지닌 명품형태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만 해도 그렇다.
빌게이츠가 이미 몇 년전에 주창하고 MS가 엄청난 노력과 홍보비를 들인 타블렛PC <오리가미 프로젝트>는 처절히 실패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비슷한 개념으로 내놓은 아이패드는 엄청난 열풍을 몰고 왔다. 그 덕분에 PC제조업체들은 거의 사장되었던 타블렛이란 개념을 다시 꺼내들고는 열심히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아이패드의 타깃시장인 전자책 역시 새로운 시장질서와 이윤창출의 가능성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애플과 잡스의 마력으로도 되지 않는 유일한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TV다.
잡스가 다소 겸손하게 <취미>라고 발표한 지난 애플TV는 아주 일부의 호응만을 얻은 채 끝났다. 명백한 실패였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근본이유는 애플의 두뇌인 잡스 스스로가 TV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잡스는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TV를 싫어했으며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대신 명상과 음악감상을 좋아했다.


컴퓨터와 각종 신기술을 좋아하는 잡스가 슈퍼 사용자가 되어 혁신을 이끌었던 것이 당연하다면, TV를 싫어하고 지금까지도 거의 보지 않는 잡스가 만든 애플TV가 혁신적으로 나와서 성공한다면 그게 도리어 너무 이상한 일이다. 중국집을 싫어하고 평생 짜장면을 먹어보지도 않는 사람이 만든 짜장면이 맛있다면 이상한 일이듯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번 미디어 이벤트에서 <또 하나의 취미>라는 명제로 새로운 애플TV를 발표했다. 지난번 제품에 대한 반성과 교훈도 공개하면서 말이다. 잡스가 말한 모든 것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잡스식으로 그 모든 교훈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가장 핵심은 잡스 스스로 애플 TV를 만들기 전에 TV 자체를 좋아하고 시청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게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잔재주도 소용없다.

지금의 애플이 오로지 잡스 한 사람의 직관과 재능에 의존하는 기업이라는 건 애플 팬보이들도 인정한다. 잡스 스스로가 좋아하지도 않는 티비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팔려고 해서는 별 가망이 없다.

그러나 의외로 나는 이번 애플TV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잡스와 애플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 제품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곧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할 새 애플티비의 OS가  iOS인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출처: 컬처맥

신기한 것도 아니고 이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 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열어줄 지도 모를 엄청난 가능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씩 단계적으로 팩트와 함께 내 생각을 말해보겠다.


새 애플TV 속에 숨겨진 엄청난 가능성은 무엇인가?

1. 아이폰 1세대는 당초에 사용자가 앱을 만들 수 없었다. 단지 애플에서 만들어 탑재한 앱만 쓸 수 있었다. 해커들이 아이폰의 OS를 분석해서 앱을 만들었고, 탈옥한 아이폰을 위한 앱을 교환했다. 이것을 본 애플이 곧 정식 SDK와 앱스토어란 수익모델을 제시해서 지금의 성공을 거두었다.

2. 이전에 발매된 애플TV는 하드웨어가 매킨토시와 비슷했고 내부적으로 맥 운영체제를 썼다. 때문에 해커들이 제한을 깨고 해킹해서 속도가 좀 느린 매킨토시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3. 새 애플TV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iOS를 썼다. 따라서 하드웨어 역시 아이팟 터치나 아이패드와 유사한 것으로 짐작된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카메라, 각종 센서 일부분을 뺀 기판이 하나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것도 이미 작은 iOS구동기기다.

4. 해커들이 조금 더 노력을 들이면 새 애플TV를 해킹해서 앱을 실행시킬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장 디스플레이에 연결해서 쓰는 작은 데스크탑형 아이팟터치처럼 변한 기기를 손에 넣게 된다.


5. 이게 무슨 쓸모가 있을 것이냐고? 잘 생각해보자. 이미 앱스토어에는 너무도 다양한 앱들이 나와있다. 그 가운데는 센서나 카메라를 쓰지 않지만, 조용히 탁상에 앉아서 간단한 일이나 게임, 웹서핑과 취미 생활을 할 수 잇는 앱이 가득 있다. 그런 것은 애플TV가 도와줄 수 있다. 더구나 가격을 보라. 새 애플TV는 단돈 99달러다!

6. 거의 왠만한 사람은 부담없이 가질 수 있는 애플TV는 훌륭한 가정용 콘솔 게임기가 될 수도 있고, IPTV 역할도 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앱이 개발되면 간단한 업무용부터 시작해 책상 위에서 하는 간단한 데스크탑 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7. 멀티태스킹까지 지원될 이 값싸고 스마트한 기기에 키보드와 마우스(혹은 터치패널이나 매직트랙패드)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더 이상 우리는 중국이나 대만산 넷북이나 보급형 PC를 살 필요가 없다. 인터넷을 이용한 클라우드 서비스와 연동되는 iworks나 아이폰용 오피스를 쓴다면 엑셀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바이러스도 없고, 깔끔한 데다가 발열도 없고 튼튼한 업무용 하드웨어를 최신형 운영체제 포함해서 99달러에 살 수 있다면 이건 그야말로 혁명이다. 간단한 업무를 위해 사야했던 PC가 필요없어지는 순간이다. 더구나 이것을 애플에서 뒤늦게 양지로 끌어내고 활성화시켜준다면 어떨까. 우리는 보급형 PC시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플TV가 보급되는 현상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 넷북이 점점 안팔리고 그 자리에 아이패드가 팔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렇게 새로운 애플TV는 오히려 TV가 아닌 초소형 데스크탑 컴퓨터로서의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과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런 가능성이 뻗어나갈 것인지 지켜보도록 하자.


P.S : 오늘부터가 한가위네요. 제 블로그를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