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은 항상 부러움과 함께 날카로운 분석의 눈을 피할 수 없다.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팀과 우승팀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그 비결이 무엇인가?>이다. 보통은 팀의 조직력, 최신 축구전략의 도입, 뛰어난 개인기의 선수들 등등 많은 이유가 나오지만 빠지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꼽는 적인 것은 바로 팀의 리더인 감독의 능력이다.
지난 2002년 한국축구가 4강에 진출했을 때, 해외 언론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한국축구의 잠재력이나 선수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감독이 히딩크의 리더쉽과 전술능력이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IT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역시 리더인 CEO의 능력이자 차별성이다. 컴퓨터의 개척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IT업계에서 화제를 이끌어온 스타가 스티브 잡스다. 당연히 그의 개성은 많은 언론에 의해 분석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창업자다. 엔지니어인 스티브 워즈니악, 투자자이자 경영자인 마이크 마쿨라와 함께 창업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애플에 가장 애착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끌어나간 노력으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애플이란 회사 자체를 스티브 잡스와 동격으로 놓는 시각도 있다. 오늘날 애플의 기업문화와 모든 특성은 대부분 그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가 다른 회사의 CEO와 어떤 점에서 다른 지를 알아보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애플이란 회사의 장단점이 과연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다른 CEO와 다른 점은?
 
1. 사생아로 태어나 어릴 때 입양된 다소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

성공한 사람이 꼭 행복한 과거를 가진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불행했던 과거와 성공한 현재가 대비되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어도 사람은 노력하면 성공하는 법이다>는 성공담의 표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스티브 잡스가 사생아와 입양아 출신이라는 점은 별로 의미없는 요소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이것이 가장 큰 요소일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다룬 저서 <ICON>을 비롯한 관련도서를 보면 이런 출생이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과시욕이 강했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군중 속에서 눈에 띄거나 주목받는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했다.

그러려면 뭔가 기술적으로 <굉장한 것>이 필요했다.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을 만큼 <기술적으로 뛰어난> 어떤 것을 내놓으면 세상이 감탄하며 자기를 봐 줄 것이다. 이것이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목표였다. 오늘날 애플이 늘 혁신을 부르짖으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개발 위주의 기업운영을 보이는 것은 이런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인생목표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애플이란 회사 자체가 이런 잡스의 방식에 열광하거나 동의하는 엔지니어가 모여서 만들어진 기술 기업이기 때문이다.


2. 선불교를 믿고 참선을 하는 채식주의자다.

예전 이탈리아 축구팀의 판타지스타 로베르트 바죠를 아는가? 꽁지머리로 유명한 그는 굉장한 스타였는데 나는 그의 축구실력보다는 딱 한가지 사실 때문에 그를 기억하게 됐다. 카톨릭이 거의 국교나 다름없는 이탈리아인인 바죠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정신적으로 흔들리던 학생시절에 자기 삶의 목적을 찾고자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유명한 바바 라는 종교지도자를 만났다. 의사소통조차 잘 안되는 상황에서 잡스는 바바에게 직접 머리를 깎이고 입문하는 영광을 얻었다. 다른 인도 사람들이 몇 년을 기다리며 바라던 것을 만난지 몇 시간만에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오히려 허무감을 느끼고 한달 만에 그곳을 떠났으며 미국으로 돌아왔다.

비록 인도에 머물며 교주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잡스는 선불교를 신앙으로 믿으며 때때로 참선을 했다. 또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같은 채색주의자라도 미국인 가운데 그냥 건강을 위해 하는 채식과는 다르다. 잡스는 채식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종교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채식을 하며 과일만 먹기 때문에 자기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의 옆에만 가면 악취가 진동했던 적도 있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잡스는 수많은 명언을 남기면서 한번도 <신>을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다. 미국사람들이 곧잘 말하는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라든가 <신의 도움으로>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알다시피 그럴 때의 신=여호와 라는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선불교는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 신을 찾는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도 스스로의 내면을 가장 의지하고 있기에 신을 찾지 않는 게 아닐까.

아이러니컬한 점은 잡스 스스로는 이렇게 <선불교 신자>인데도, 막상 미국의 언론과 팬보이들은 종종 그를 <예수>에 비유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잡스가 그것을 부정하거나 종교적으로 항의하는 일은 없었다.


3. 독단적이며 동시에 독선적이다.

잡스의 성격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재능과 합쳐지며 매우 독특한 성격을 만들었다. 바로 독단과 독선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민주주의라든가, 여러 미덕에서 극력 피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로 독단과 독선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생각의 틀 안에만 갇히기에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앞서 말한 선불교라는 종교적 영향도 있는 듯, 잡스는 소비자의 기호를 듣고 거기서 제품을 기획하지 않는다. 시장조사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의 직관과 거울 앞에서의 자문자답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의 내면에서 명상을 통해 신에 이르는 길을 찾는 선불교 신자의 방식과 일치한다.

보통이라면 기업경영에서 이런 방식으로는 숱한 오류만 저지르다가 쫓겨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잡스는 동시에 재능을 가졌다. 스스로의 생각만으로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애플 컴퓨터를 성공시켰고, 매킨토시로 혁신을 몰고 왔으며, 아이팟과 아이폰을 대히트시켰다. 다른 기업과 CEO였다면 무모하다고 포기했을 지 모를 도전이지만 잡스는 해냈다. 독단과 독선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 아니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은 사람의 추진력이 되면 때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 이것이 잡스의 가장 큰 장점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4. 인문학적인 구상과 디자인을 중시하며, 이것을 하나의 사상으로 만들었다.

단지 인문학적인 지식은 교육을 착실히 받으면 생길 수 있다. 또한 디자인 역시 다른 CEO도 충분히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 두 개를 결합해서는 극단적일 정도로 밀어붙여 하나의 주장이자 사상으로까지 만드는 능력은 스티브 잡스 외에 아직 없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하드웨어를 설계하는 재능이 없고, 소프트웨어를 코딩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기에 그가 주력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이라 불리는 체험감이다.

내 개인적 비유로 사용자경험이란 격투게임에서의 조작감과 타격감과 같다. 캐릭터를 내 몸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지와 내가 상대를 때렸을 때 얼마나 경쾌한 소리와 반응이 오는 가는 격투게임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굳이 기판을 설계하지 못해도, 게임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해도 누구든 알 수 있다.

잡스는 바로 이 점을 착안했다. 스스로가 슈퍼 사용자가 되어 직접 사용해보는 관점에서 제기되는 요구와 불만을 피드백한다. 그리고는 바로 거기서 착안한 점을 독단과 독선을 통해 다소 강압적으로 보일 만큼 기술파트에 요구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르는 잡스는 그냥 일반 사용자에 가깝다. 그러니 당연히 사용자의 불편과 불만은 잘 느낄 수 밖에 없다. 개선요구 사항이나 바라는 점도 비슷하게 간다.

잡스와 일반 사용자의 차이는 결국 권력에 있다. 일반 사용자는 불편하다고 해봐야 AS센터에 전화나 하는 정도일 뿐이다. 개선요구사항이 있어봐야 인터넷에 <... 해주세요.> 투고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잡스는 아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모여있고 충분한 돈이 있는 혁신기업을 세웠고, 그 리더다. 그러니 바로 피드백되어 개선되는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찾아와야 한다.>라는 잡스의 명언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다. 그런 일관된 사상이 오늘날 애플의 혁신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를 만들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상으로 스티브 잡스가 과연 일반적인 기업 CEO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알아보았다. 물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잡스와 애플은 또 많은 실패와 오류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생태계에 종의 다양성이 필요하듯, 시장에는 희귀한 애플 같은 기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단지 피상적으로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닮으려는 기업가들은 바로 이런 잡스의 차이점부터 잘 알았으면 한다.

P.S : 제가 출간계약을 맺은 웅진 갤리온 블로그에 전자책의 미래를 논하는 아이패드가 출판시장에 가져온 변화는? 이란 글을 올렸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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