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연 반복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은 자들이 다른 역사를 만들 것인가?
이것은 세계사와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제기하는 의문이다. 그만큼 사람은 어리석기도 하고, 현명하기도 하다. 또한 비단 이것은 단순한 역사 뿐만 아니라 경제계와 IT업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다.

현재  IT업계에서 혼자서 엄청난 단독질주를 하고 있는 애플과 그 선두에 선 아이폰을 두고 많은 분석과 예측이 있다.


벌써부터 아이폰이 한때 성공했지만 결국 폐쇄형 플랫폼의 한계를 못이기고 PC에게 완패한 매킨토시의 전철을 밟게 될 것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아이패드와 아이티비를 내놓으면서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선 애플의 행보를 통해서 애플의 장기집권을 예상하는 관측도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 역시 애플이 설마 지난 매킨토시의 전략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명 그때와 지금의 애플은 다르다. 또한 그때의 젋은 스티브 잡스와 지금의 노련해진 스티브 잡스도 다르다.

하지만 데쟈뷰라고 할까? 최근 몇 가지 정보를 접하면서 어쩐지 과거에 보았던 것과 매우 유사한 몇 가지 기억이 결합되며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이것은 단편적인 정보로만 보면 그저 흘려버릴 아무 것도 아닌 정보다. 그러나 이것을 묶어서 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일관된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대칭되는 과거와 현재를 화살표로 비교해서 적어보자.



1. 예전에 애플이 최초로 애플 컴퓨터를 통해 개인용 PC 시장을 열었다. -> 애플은 최초로 멀티터치와 앱스토어를 이용한 개인용 스마트폰 시장을 활짝 열었다.

2. 애플은 애플2와 리사, 매킨토시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통해 GUI란 혁신을 창조했다. 그러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팔며 호환기종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에 대항해서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분리해 호환기종이 가능하게 한 IBM PC가 대항마로 나왔다. -> 애플은 아이폰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묶어서 팔고 있다. 그러자 이에 대항해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들고 대만의 HTC를 비롯해, 삼성과 모토롤라등에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안드로이드폰이 대항마로 나왔다.

3. 처음에는 조잡해서 무시할 수 있었던 윈도우 진영의 세력이 커지며 매킨토시의 단독시장을 잠식하자 애플은 GUI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하며 MS를 상대로 법원에 룩앤필 소송을 걸었다. -> 처음에 애플은 아이폰 흉내조차 제대로 못내는 낮은 버전 안드로이드의 조잡함을 웃어넘겼다. 하지만 차츰 완성도를 갖추며 세력을 키우는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해 아이폰의 멀티터치를 비롯한 특허권 침해를 주장하며 대만의 HTC를 고소했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진행된 전개다.  애플이 직접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을 고소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중소규모인 하드웨어 납품업체에 불과한 HTC에 소송을 건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애플에 소송을 걸고 싶은데 부담되서 폭스콘에 소송을 건 것이라고나 할까.

이에 대해 구글측의 대응도 강경하다.


6월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최근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애플이 보유하지 않은 휴대폰 특허를 양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 애플의 약점인 관련 기술 특허를 모아 반애플 대항전선의 첨병에 서겠다는 의지로 분석돼 애플에 대규모 특허 공세를 예고했다.
구글은 지난 3월 애플이 구글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대만 HTC를 특허 20건을 도용했다며 제소하자 특허권 매집에 나서고 있다.


전에도 잠시 말했지만 이런 대기업들 사이의 특허소송은 전략적 공방전의 성격이 강하다. 옳고 그름을 가려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법정 밖에서 일정 조건에 화해하거나 고소취하를 하게 된다.

업계에서도 이 소송에서 애플이 대승을 거두고 구글이나 HTC가 대량의 배상금과 함께 안드로이드폰 제작과 판매를 취소할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경고사격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애플이 이기지 못하고 끝나면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까? 역사가 만일 반복되는 것이라면 세부적인 것은 달라도 대략 다음과 같은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 MS를 상대로 한 룩앤필 소송은 애플의 몇 가지 실수로 인해 패소했다. 결국 윈도우는 당당히 매킨토시의 GUI 를 아이디어 레벨에서 베낄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애플의 GUI 독점은 무너졌다. -> 구글이 안드로이드 진영 회사들의 특허를 모아 애플의 소송을 무마하는데 성공한다.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을 아이디어 레벨에서 흉내낼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애플의 스마트폰이 가진 장점의 많은 부분이 잠식당한다.

2010년 6월 현재, 이 시점에서 역사는 기로에 서 있다.

구글은 최근 삼성뿐만 아니라 컴퓨터 부품시장의 강자 대만업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마치 조립PC처럼 대만업체가 부품을 설계하면 중국에서 생산하고, 그 위에 구글이 운영체제를 얹어서 내다파는 최고효율의 원가절감 전략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애플을 밀어냈던 IBM호환기종의 저가PC전략과도 일치한다.

정확히 말하면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에서 MS의 윈도우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공짜다.


운영체제가 일원화되면서 품질과 성능이 일정수준만 보장되면 그 다음은 오로지 단돈 10원을 아끼는 원가절감과 피를 말리는 저가경쟁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대만업체가 본격적으로 부품을 쏟아내기 전 PC를 조립하는데 들었던 비용과 요즘 비용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5. 소프트웨어 우위가 사라진 애플은 싼 가격의 하드웨어 가격경쟁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이미지의 고가전략과 DTP등 전문가 시장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친다. 그 결과 매킨토시는 부자와 전문가를 위한 컴퓨터가 되어 대중과는 멀어졌다.

여기서 애플의 선택이 중요하다.

만일 애플이 아이폰에 있어서 예전과 같은 선택을 한다면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 저가경쟁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같은 레벨의 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는  고가 프리미엄 시장에 머물러 애플 팬보이와 몇몇 아이폰에 특화된 특수직을 상대로 한 비지니스에 치중할 것이다. 그렇게되면 아이폰은 다시 매킨토시와 같은 길을 걸으며 혼자서 폐쇄된 고급 플랫폼이 되어버릴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변수가 많다.
앱스토어의 존재, 아이튠스의 확고한 점유율, 아이패드와 아이티비의 등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매킨토시 역시 좋은 이점이 많았음에도 애플의 선택에 따라 고립의 길을 갔다. 그러므로 아이폰의 성공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도 오로지 애플의 선택에 따라 고립이냐 개방된 경쟁이냐로 갈 수 있다.


애플 아이폰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것인가?

나는 매킨토시를 둘러싼 당시 애플의 선택을 잘못되었다고 본다. 외국 IT컬럼리스트 가운데는 그때의 선택을 옹호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애플이 그때 중국이나 한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원가를 좀더 절감하면서 순이익을 다소 낮추더라도 PC에 맞서 싸웠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컴퓨터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순이익을 절반으로 낮추더라도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장에서 점유율만 늘릴 수 있으면 천문학적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건 당시 MS가 그렇게 불법복제에 시달리면서도 PC시장에서 기업만을 주로 상대해서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애플이 만든 아이폰에 의해 스마트폰은 해마다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애플은 현재 순이익률 40프로를 자랑한다. 그러나 곧 안드로이드가 성장하고 치열한 경쟁이 오면 중저가폰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애플은 결코 중저가폰 시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곳에서 순이익률을 10프로 정도로 떨어뜨리더라도 경쟁할 가치가 있고, 그래야만 승자가 된다.


나는 기로에 선 애플이 출혈을 무릅쓰고 맞서 싸우길 원한다. 당장의 순이익이 아까워서 스스로 고립된 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 갇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스마트폰 소비자에게도 더 많은 선택의 기회와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할 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애플 제품의 혁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디 애플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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