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EFM 홈페이지]



IT분야에서 어떤 분야든 1위를 차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십년 동안 그 1위를 다시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소비자의 눈은 계속 높아진다. 성능, 품질, AS, 가격 등 어떤 것 하나라도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곧바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그런 면에서 현재 국내 유무선 공유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피타임 공유기는 제대로 분석해 봐야 할 교훈적인 사례다. IT기기에서 세계적으로 눈이 높고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계속 만족시키며 70퍼센트 정도의 엄청난 시장점유율을 단독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분 주위에서 쓰는 공유기를 자세히 보자. 특수한 용도나 기업용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화이트, 블랙 톤에 정사각형 베이스의 본체에 ipTIME 이라는 상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공유기 시장 통계가 그렇게 자주 세밀하게 집계되는 편은 아니지만 2013년 기준으로는 약 76퍼센트, 그 이후로도 크게 점유율이 낮아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전세계에서는 TP-LINK가 41퍼센트로 최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2위가 12퍼센트, 3위가 11퍼센트 정도이며 현재도 이런 추세는 유지되고 있다. 몇 년전에도 여전히 아이피타임 공유기는 국내 시장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선택하는 외산 공유기가 유독 한국에서만 미약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태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아이피타임 공유기가 매우 가성비가 좋으며 다양한 라인업을 적재적소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한국의 EFM과 중국 선전의 지온콤이 합작으로 제품을 생산해서 공급한다. 대략 보면 한국에서 제품 스펙과 성능을 설계하고 중국쪽에서 하드웨어에 제작을 하면 다시 한국에서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펌웨어를 개발해서 탑재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출처: EFM 홈페이지]


이런 방식으로 인해서 우선 제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아직도 세계 IT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업체의 하드웨어 제작기반을 이용해서 거리도 가까운 한국으로 운송하게 되니 원가에서 많이 들 이유가 없다. 여러 복잡한 이동경로를 거치는 글로벌 회사보다 가격 책정에서 유리하다. 때문에 아이피타임에는 20만원에 달하는 고가 제품부터 시작해 단 1만원짜리 보급형까지 다양한 라인업이 존재한다. 성능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PC 1대와 스마트폰 접속 정도를 원하는 소비자의 눈에 들 만 하다.

두번째로 아이피타임 제품은 어떤 라인업이든 기본 성능과 품질이 크게 나쁘지 않다. 물론 하드웨어 매니아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냥 무난한 수준이 많으며 고가 고성능 라인업으로 가면 부족한 점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건 다수의 일반 소비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깔끔하고 튀지 않는 디자인에 잘 구비된 한글 패키지와 매뉴얼, 사서 꽂아두면 그냥 잘 돌아가는 것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전문기능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고 소비자가 구입하자마자 복잡한 설정방법에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아이피타임 제품이 국내에서 선호되는 강력한 이유는 펌웨어 지원이다. 애플 아이폰이 3년 이상 지난 제품에도 최신 운영체제를 지원하고 가끔은 상당한 신기능까지 넣어주는 것으로 사랑받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피타임은 흔히 '모자라는 하드웨어를 펌웨어가 강제로 캐리한다'고 평가받는다. 

[출처: EFM 홈페이지]

 

몇 년이 지나서 이미 AS기간이 지난 모델도 펌웨어 업데이트를 해주는데 2014년 말 공유기 해킹으로 인한 보안취약점이 문제가 됐던 적이 있다. 이때 EFM은 실제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거의 모든 모델의 펌웨어 업데이트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출시한 지 5년이 넘은 모델도 있었다. 2020년에는 신제품 뿐 아니라 기존 판매 제품에 대해서도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메쉬 네트워크 기능을 탑재해준다. 여기에 심지어 발매 후 10년 가까이 된 ipTIME N704BCM 모델까지 들어갔다.

물론 아이피타임에도 단점은 있다. 최고급 모델인 플래그십에서 타회사에 비해 성능이나 개성이 좀 모자란다. 최고가 칩인 인텔, 퀄컴 칩셋 등을 아낌없이 써서 만드는 제품이 거의 없고 나머지 부품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가성비 조합이 대부분이다. 또한 저가형 제품에는 어댑터 품질이 좀 떨어져서 몇 년뒤에 공유기 본체는 멀쩡한데 어댑터가 고장나서 제품 자체를 못쓰게 되는 경우가 문제가 됐다. 또한 원래 이렇게 한 회사 제품이 장기집권(?)을 하게 되면 당연히 피로감 때문에 단점이 부각되어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 국내시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아이피타임 공유기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에 저가형에서 중국업체에 밀리고 고가형에서는 미국을 앞서지 못하고 있는 한국 IT업계에 상당히 모범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합작이란 형식을 통해 한국의 지리적 입지를 장점으로 만들고, IT제품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에서 역량을 키운다. 꾸준한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고객만족을 추구한다. 이것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아이피타임은 몇 가지 펌웨어업데이트를 발표했다. 각 인터넷망의 국가별 접속 제한 활성화 시에도 IPTV 실시간 방송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수정한 기능, 특정 모델에 LG 로봇 청소기 관련한 문제가 발생한 것을 해결했다는 항목이 눈에 띤다. 이 정도로 친절하고 세심한 업데이트를 외국업체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것이 바로 아이피타임이 압도적 점유율로 국내시장을 지키는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