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MD]


브랜드가 중시되는 업계라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통용되는 말이 있다. 점유율 2등 업체가 1등 업체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점유율 1등이라는 건 매출과 순이익 모두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경쟁우위가 확실하기에 지속적으로 최고 매출이 나오고 그 매출 일부를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재투자하는 것만으로 나머지 경쟁업체를 쉽게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어보면 1등이 2등으로 떨어지기도 어렵다는 말도 된다. 충분한 자금력과 브랜드 신뢰도를 가진 업체가 일부러 뒤지기 위해 노력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경쟁상황에서 거의 1등은 고정된다. 예를 들면 CPU 시장에서 인텔은 지금까지 점유율과 순이익에서 항상 1등 업체였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지금 서서히 깨지려고 한다. 경쟁업체이지만 한참 뒤진 2등으로 머무르던 AMD가 지금 급상승하는 반면, 인텔은 노력을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장에서 실패를 겪고 있다.

외국 IT매체인 탐스하드웨어는 머큐리 리서치의 올해 1분기 CPU시장 점유율 결과를 보도했다. 그 결과 x86 프로세서 시장의 모든 부문이 지난분기 대비하여 감소했다. 데스크탑 PC는 지난분기 대비 30% 감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놀랍게도 AMD는 27.7%라는 최고 x86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작년에 비해 7%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전체시장이 감소한다는 업체 전부에게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다. 일반적으로는 1등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하위 업체일수록 더 큰 매출 감소를 겪는다. 상황이 나빠지면 소비자의 선택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업체 하나에 몰리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인텔이 전체시장과 함께 매출 감소를 겪는 동안 AMD는 매출 감소를 최대한 선방하면서 역대 최고 CPU 점유율까지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데스크탑 시장 뿐만이 아니다. AMD는 모바일/노트북 시장에서 22.5%의 점유율로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서버 시장에서도 12분기 연속 11.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기록했다. 인텔과 AMD는 거의 제로썸과 같은 구도이기에 둘다 점유율이 증가하는 경우는 존재하기 어렵다. 이것은 곧 인텔의 점유율 하락을 의미한다. 불리한 시장에서 AMD가 더 선전하고 있다는 결과다.

더구나 AMD의 이런 결과는 꾸준한 분기당 점유율 상승세의 연장이란 점이 더욱 긍정적이다. AMD의 지난 분기에는 25.6%였다. 이번에 27.7%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사실 AMD는 15년 이상 전에 세운 기록인 25.3%가 통상적인 최고 기록이었다.

올해 AMD가 역사상 가장 큰 CPU 점유율을 기록한 이유를 좀더 알아보자. 단순히 AMD 제품의 성능이 좋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주춤하긴 했어도 인텔 역시 12세대 엘더레이크부터는 전성비를 포함해 대폭적인 성능 개선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인텔은 시장 예측과 생산량 조절 등 연구개발 외적인 부분에서 실패했다. 

반대로 AMD는 값비싼 서버 CPU의 공급 문제를 겪었다. AMD 입장에서는 그런 높은 부가가치 시장에서 가능한 한 빨리 제품을 생산해 판매해야 했다. AMD는 데스크탑 PC 칩의 생산을 줄임으로써 이런 고마진 제품의 우선 순위를 높였다. 따라서 이후 수요감소에서도 재고가 많지 않으므로 점유율을 많이 잃지 않았다. 즉 영리한 시장예측과 생산량 조절 같은 리더십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인텔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팬더믹으로 인한 수요증가 시기만을 보고 데스크탑 CPU를 대량생산하고 그 뒤에 올 수요감소를 대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점유율을 착실히 늘려가는 AMD의 위협은 인텔이 아니라 애플이 만드는 ARM계열 칩으로 보인다. 2020년 2분기에 2퍼센트 미만으로 시작한 애플 ARM칩은 눈덩이처럼 점유율을 늘리며 2022년 1분기에 11.3퍼센트까지 점유율을 늘렸다. M1계열은 애플 맥에만 사용되므로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에 자극받은 서버업체 등이 자체 ARM칩을 만들거나 외부 공급받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AMD는 인텔과 효과적으로 싸우면서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애플 칩도 성능으로 견제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AMD는 잘해오고 있다. CEO인 리사 수는 AMD가 가진 입지를 잘 이용해서 콘솔에서 승자가 되고 서버와 노트북에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만일 둘 중 하나에서라도 1등이 된다면 인텔의 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로 2등이 1등으로 올라서는 상황을 볼 수 있을 지 모른다. 

설사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1등에서 2등으로 내려가는 인텔을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소비자를 위한 경쟁은 그만큼 노력하는 업체에게 보상을 주어야한다. 인텔에게는 아직 명성과 자금력이 남아있으니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억울하면 노력해서 AMD를 이기면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지금 벌어지는 열띤 경쟁을 응원하고 더 좋은 제품을 골라 사면 된다.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AMD 외에 인텔과 애플 등의 분발도 함께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