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이론' 을 계속해서 말해보자.

애플2에서 리사, 매킨토시로 이어지는 시기,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가 쫓겨나기 전까지의 애플은 철저히 컴퓨터 회사였다. 오로지 컴퓨터를 연구하고 만들고 그것을 팔았을 뿐이었다. 운영체제라든가 애플리케이션도 팔았지만 소프트웨어 역시 컴퓨터의 일부다.

 

더구나 이때 애플은 다소의 시련은 있었어도 매출과 수익이 고도로 성장하는 도중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좋은 컴퓨터를 만들고 팔면 된다는 너무도 단순한 경영전략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 어렸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구축해놓은 비지니스 모델에 관심이 없었다. 잡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미래기술을 포착해내고 그걸 향해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 잘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커다란 전쟁터에 수많은 군단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전략을 묻는 장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는 셈이다.

 

“내가 짠 기발한 전술로 오로지 적을 공격하고 또 공격하라.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이길 것이다.”

 

방어를 어떻게 하라느니, 병참은 어떻게 구축하는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아니, 총사령관 스스로가 그런 부문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냥 싸워서 적을 많이 죽이다보면 저절로 이길 거라는 순진한 생각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잡스는 연이어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여주고 혁신을 제공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애플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거대한 PC시장에 뛰어든 거인 IBM과 그 거인을 이용해 성공한 빌게이츠가 대부분의 결실을 가져가버렸다. 애플2와 매킨토시를 통해 혁신기업이란 명성과 광적인 팬을 얻었지만 시장 점유율과 이윤이란 면에서는 완전히 밀려버렸다.

 

혹자는 이것이 단지 경영만을 중시한 존스컬리가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낸 결과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잡스가 돌아와서 금방 애플을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때 애플이 그렇게 된 원인은 매킨토시라는 혁신적인 제품에 이어진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스컬리는 무능력자가 아니다. 오히려 잡스가 직접 펩시콜라에서 영입한 우수한 경영자다. 존스컬리는 기술이나 제품은 잘 모르지만 있는 제품을 가지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는 뛰어났다. 그가 있는 동안 애플은 잡스가 없었기에 혁신적인 제품은 거의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존스컬리가 있는 동안의 애플의 순이익은 계속 늘어났다.

 

안전한 비즈니스 모델을 중시하는 존스컬리는 잡스의 혁신적인 제품개발을 도박이라고 생각하고 위험을 느꼈다. 반면에 잡스는 존스컬리가 원하는 비즈니스 모델 따위는  잔재주 정도라 생각했다. 강력히 결합해야 하는 이 두 가지가 따로 떨어진 결과가 바로 이후 애플의 쇠퇴였다.

 

주기적으로 혁신제품을 내놓고 그에 맞춰 계속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면서 나가야 하는데 잡스가 나가버리자 이미 만들어놓은 초기 매킨토시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든 변형시키며 팔아야 하니 비즈니스 모델에도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NEXT 사를 세워서 나간 잡스에게는 비즈니스 모델이 결여된 혁신기술만 넘쳐났다. 이때 NEXT 컴퓨터는 3차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에 광자기 디스크, 당시로는 엄청났던 내장 500메가 하드디스크 등 엄청난 고사양과 미래기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덕분에 엄청난 고가제품이 된 데다가 그 가격에 걸맞는 이윤을 창출할 분야를 제시하지 못했다. 즉 잡스에게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으며 그걸 만들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애플과 잡스 양쪽이 모두 실패자가 되어 하나로 합쳤을 때 비로소 애플의 회생이라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건 예고된 기적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잘 굴러가던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가 서로 혼자 해보겠다고 나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다시 자전거 몸체에 붙었을 때 그 자전거가 다시 잘 굴러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비록 존 스컬리를 비롯한 노련한 경영진이 나가고 잡스 혼자서 들어왔지만 잡스는 그동안의 실패로 인해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물론 경영학을 배운 적이 없고 관심도 없던 잡스가 그 모델은 혼자서 세운 건 아니다. 이때 가장 주목받으며 성장하는 일본 가전제품 회사들- 특히 소니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배운 것이다.

 

이때의 일본 가전제품 업체를 잠깐 살펴보자.

일본 가전업계에서 쟁쟁한 마쓰시타(수출명 파나소닉)는 8비트컴퓨터에서 시작해 IT분야에서 차분히 영역을 확장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생산하기도 했다.

워크맨의 대성공으로 유명해진 소니는 신기술인 트리니트론 방식 브라운관을 매킨토시에 공급할 정도였다.

프린터 회사 캐논은 매킨토시에 이어 NEXT 에도 고급 출력장치인 레이저 프린터를 공급했다. 이 외에도 샤프라든가 NEC 같은 굵직한 회사들은 저마다 영역확장에 혈안이었다. 잡스는 이미 부품공급을 통해 이들 회사의 위력을 충분히 알게 됐다. 자연히 비즈니스 모델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때 일본 가전업체의 특징은 흔히 경박단소(輕薄短小)로 표현된다. 가볍고 얇고, 짧으며 작다. 또한 일본인의 특성상 친숙한 느낌이 드는 귀여운 디자인, 세련된 느낌을 좋아한다. 가전제품은 주된 기능의 차이가 크지 않다. 냉장고나 세탁기 분야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부가적인 편의성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들 회사들은 컴퓨터로 영역을 넓힌 후에도 가전제품의 연장선상에서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를 이용하려고 애썼다. 기능에서는 같은 것을 만들어도  내 브랜드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을 주려고 애썼다. 반면에 미국업체의 컴퓨터는 여전히 합리성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외형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대에 나온 일본업체와 미국 업체의 컴퓨터 하나를 꼽아 그 외관을 보자.

 



일본 샤프 의 X68000



미국 IBM 의 386 PC

양쪽 디자인의 차이점은 비 전문가가 봐도 분명하다. 컴퓨터 하드웨어를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는 누가 봐도 첫눈에 일본 것이 좋아 보인다. 물론 미국업체는 합리적인 가격과 고성능을 자랑하겠지만 그런 건 사서 써보지 않으면 잘 모르고, 심지어 몇가지 기능만 쓴다면 쓰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잡스는 이런 일본 가전업체, 그 가운데서도 소니가 쓰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본다. 일관된 라인업과 그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다.

소니는 워크맨으로 유명하지만 그것만 만들지 않았다. 워크맨에 쓰는 이어폰도 만들고, 집에서 듣는 미니 콤포넌트도 만든다. 워크맨 안에 들어가는 카셋트테이프도 만들며 나아가서 방송용 장비를 만들며 음반회사까지 세워 콘텐츠까지 전부 장악한다. 영상에서도 캠코더 하나만 내놓는게 아니라 관련 라인을 죄다 소니제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이때 소니가 만드는 제품은 명품 디자인이라고까지 할 건 없다. 하지만 미국 업체처럼 투박하지는 않다. ‘소니 스타일’이란 명확한 명칭은 나중에 나왔지만 이미 가전제품에서 나온 경험으로 호감가는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라인업을 갖춰 내놓는다. 그러는 동안 소니란 이미지 전체가 점점 올라간다. 는 기초개념은 확립해놓고 있었던 셈이다. 

 

원래부터 디자인을 중시하던 잡스에게는 이 전략이 딱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잡스는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바로 이후 애플 제품의 개방성을 크게 제한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명확하게 말해서 폐쇄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때 일본 업계가 보여준 비즈니스 모델 전부가 그런 폐쇄적 제품 하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소니를 비롯해 일본 업계는 예를 들어 자사의 워크맨에 첨단 리모콘을 채택하면 그 단자를 결코 호환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표준기술 같은 조직체도 없었다.

한때 일본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8비트인 MSX 방식을 비롯해 후지쯔의 FM TOWNS, 샤프의 X68000시리즈에 이르기 까지 엄청난 종류의 폐쇄적 구조 컴퓨터가 호환조차 되지 않는채 독자 규격으로 난립했다. 심지어 NEC의 8비트 컴퓨터 PC 8801는 같은 회사의 16비트 컴퓨터 PC9801시리즈와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양쪽에서 일체 호환되지 않았다.

 

잡스의 본래 성향은 한없이 개방과 자유다. 전화회사를 해킹해서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에 열광하고 정신의 자유를 원하기에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는 의혹이 있다. 애플2에도 확장슬롯이 있고 매킨토시에도 제한적이지만 확장성이 있으며 NEXT에서는 그 부품에서는 주저 없이 다른 회사들의 부품과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그 방식으로는 혁신에 들인 노력 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다.  




조지오웰의 <1984>를 모티브로 삼은 그 유명한 매킨토시 광고에서 보듯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팬들은 독점과 폐쇄를 증오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잡스에게는 달리 혁신제품을 가지고 기대하는 만큼의 수익을 내면서 동시에 폐쇄적이지 않은 구조를 가지게 할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



결국 잡스는 새로운 제품부터는 기능과 방식에 제한을 걸면서 천천히 폐쇄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독자 CPU 파워PC를 이용한 아이맥을 비롯해 아이튠즈를 거치지 않고는 어떤 콘텐츠도 넣고 뺄 수 없는 아이팟, 앱스토어의 철저한 관리 통제를 전제조건으로 건 아이폰과 USB단자, 플래시가 없는 아이패드 등은 모두 이런 잡스 비즈니스 모델의 산물이다. 점유율 자체가 낮고 너무 폐쇄적이어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매킨토시를 제외한 이후 애플의 제품은 일정한 폐쇄성을 그 기본으로 깔게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어지는 후속편에서는 과연 왜 잡스가 스스로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개인취향까지 거스르며 그토록 비지니스 모델을 필요로 했는가?  근본이유를 짚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