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것이 초라해보이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근사해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성향은 IT에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중소 기업 인수합병은 어쩐지 허겁지겁 이뤄진 것처럼 저평가된다. 반대로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기업의 인수합병은 철저히 계획적으로 했을 거라 짐작한다. 과연 그런 걸까?

 


레노버



2014년 1월 31일, 중국의 IT 업체 레노버(Lenovo)는 구글이 가지고 있던 모토로라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전통 있는 미국 IT기업이 중국 기업에 흡수되는 사례이기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대부분 언론은 레노버의 이번 인수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해줄 거라 예상했다. 레노버가 모든 계산을 마치고 막대한 이익을 보기위해 계획적으로 모토로라 인수를 했다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레노버는 최근 미국 IBM의 PC, x86 서버 사업부를 인수했다. 그리고 휴대폰 업체인 모토로라까지 구글에서 사들였다. 인수 금액은 29억1천만 달러였다. 17개월 전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할 때 지불했던 125억 달러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얼핏 본다면 매우 헐값에 토로라의 기술과 판매망, 특허와 인력을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

 

레노버가 얻은 것 가운데 첫번째는 세계 주요시장 소비자에게 익숙한 ‘모토로라’ 브랜드다. 다음으로 모토 X(Moto X), 모토 G(Moto G), 드로이드(DROID) 울트라 시리즈와 같은 스마트폰 제품 라인업이 있다. 구글이 팔지 않고 간직한 것은 모토로라 모빌리티 특허 대부분이다. 최근 모토로라의 스마트폰에 대한 시장 평가와 판매실적이 신통치 않은 점을 감안해보자. 레노버는 중국냄새가 나지 않는 세련된 상표와 최소한의 기술을 보호해줄 특허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구글이 이 거래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지속적으로 커다란 적자를 내고 있는 모토로라 하드웨어 사업부문을 포기함으로서 얻는 재정적 이익일 것이다. 몇년 전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했을 때 특허만을 노린 것이냐, 하드웨어 제조를 통합해 애플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뜻이냐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 의도가 무엇이었든 모토로라는 구글에게 특허만 제공해준 셈이 되었다. 앞으로도 레노버는 스마트폰을 제조할 때 관련 특허사용료를 구글에게 지불해야 한다.

 

레노버와 구글의 CEO가 이번 인수에 대해 언급한 말을 들어보자.

 


레노버



레노버 CEO 양 위안칭은 “전설적인 브랜드와 혁신적인 제품 포트폴리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글로벌 팀의 인수로 레노버는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올라섰다. 우리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모바일 영역에서 강력한 글로벌 업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며,  “레노버는 현재 시장의 잠재력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평했다.

 

구글 CEO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레노버는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안드로이드 에코시스템에서 주요 업체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성과 입증된 사례가 있다. 이번 계약으로 구글은 전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안드로이드 에코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CEO특유의 세련된 어조로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어쩐지 ‘레노버는 모토로라란 고급 브랜드를 얻었고 구글은 적자덩어리 하드웨어 회사를 털어냈다’란 의미로도 들린다. 그런데 이번 인수가 두 회사의 상세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걸까?

 

만일 철저한 계획이 있었다면 최소한 레노버에서 이후 모토로라의 기존 스마트폰에 대한 AS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과 향후 글로벌 유통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인수가 발표된 후 나는 레노버측에 이런 부분을 질문했다.

 

그런데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레노버 관계자는 “현재 각 나라별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지는 않다” 면서 “올해 목표는 전세계적으로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것”이란 대답을 해왔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건 이번 인수에 '두 회사의 긴밀한 협력과 철저한 계획'이 부족하다는 염려를 갖게 만든다.

 


레노버



물론 레노버는 만만히 볼 회사가 아니다. 이전에 레노버가 IBM의 PC사업을 12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을 때도 많은 우려가 있었다. 씽크패드 시리즈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사용자들의 걱정도 있었다. 그렇지만 레노버는 이후 씽크패드 라인업을 잘 살려냈고 글로벌 IT회사로 획기적인 성장을 거뒀다. 모토로라의 스마트폰 사업인수 역시 성공사례로서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모토로라의 모토 시리즈는 IBM 씽크패드와 상황이 다르다. 씽크패드는 IBM이 레노버에 넘기기 직전까지도 품질과 비즈니스 사용성이 좋은 노트북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며 제법 잘 팔리고 있었다. 반면에 모토로라의 모토 시리즈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판매량도 시원치 않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이후 운영 계획이 확실하지 않으면 레노버의 이번 인수는 실패사례로 남을 수 있다. 레노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모토로라의 기존 판매제품에 대한 관리와 제품 유통계획을 착실히 마련해서 다시 한번 성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