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전기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 동국여지승람 등 옛문헌에 기록된 지도는 너무도 추상적이고 간략했다. 그래서 김정호는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 방방곡곡을 직접 돌아다니며 직접 측정하고 그려서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목판에 이 지도를 새겨서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구글글래스


그런데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흥선대원군은 자세한 이 지도가 도리어 오랑캐에게 이용될 것을 걱정해서 오히려 탄악했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호의 목판을 압수해서 파기하고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려 했다며 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원통했는지 모른다. 백성을 위한 큰 뜻을 정치가들이 이해해주지 않고 오히려 누명을 씌우려는 것이다. 물론 후에 들은 말에 따르면  김정호가 만든 지리서와 지도가 오늘날 전해진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거짓일 가능성도 많다고 한다. 



구글글래스


그런데 오늘날 다시 그와 비슷한 일이 있다. 바로 구글 글라스를 둘러싼 지도 데이터 논란이다. 구글 글라스가 한국에 들어오면 그냥 안경으로나 쓸 수 있을 뿐, 핵심기능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지형을 식별하고 지도 데이터와 대조하는 과정을 한국의 법률에서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CBS 라디오의 <시사자키 백원경입니다.>에서 나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단순한 현상분석 말고도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제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수락하고 인터뷰를 했다.



구글글래스


<시사자키 백원경입니다.> 해당부분 듣기 


이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답변지를 소개한다.



1. 구글 글라스라는 제품, 어떤 제품인가요?


구글이 개발한 안경 형태의 차세대 스마트 기기입니다.  카메라에 비친 영상과 위치정보, 각종 데이터를 결합시켜 다시 증강현실을 통해 표시해줍니다 . 


예를 들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GPS의 위치정보와 결합해서, 이 결과를 지도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면 눈앞에 있는 사물이나 건물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설정하면 현재 위치와 교통 상황을 종합해 최적 경로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기능도 쓸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이제품이 우리나라에선 별무소용이라는 지적, 이참에 지도데이터의 해외 반출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의 법률상 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측량 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측량법)에 따라 국내의 지도 데이터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 없이 국외로 반출할 수 없습니다. 현재 구글은 지도 서버를 미국 등 해외에 두고 서비스를 운영하기에 국내 지도 데이터를 이용하지 못합니다.


3. 지도 반출을 금지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쓰는 스마트폰에 이미 지도 기능이 들어 있잖아요, 스마트폰은 되는데 왜 구글 글라스는 안되나요?


이번 구글글라스의 지형 데이터가 곧바로 해외서버로 전송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는 '국가 안보상 중대한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5년째 이 데이터의 반출 승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글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애플 등 다른 세계적 서비스 업체들도 마찬가지 사정입니다. 이들 업체가 해외 서버로 반출을 요청한 지도 데이터는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이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국의 검토를 거쳐 민감한 정보는 이미 제외돼 있습니다.


구글 글라스는 실시간 서비스입니다. 지형을 보고 곧바로 서버와 대조해서 결과값을 표시해줘야 합니다. 따라서 그 사이에 데이터에 대한 당국의 검열을 거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스마트폰 서비스와 달리 해당 지도기능이 금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글래스


5. 안보를 이유로 지도 데이터 반출을 금지한다? 충분히 수긍을 하는 청취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나요?


구글의 서비스 가운데 특정지역의 지형정보를 신청하면 얼마후 위성촬영을 통해 어디든 생생한 지형사진을 얻을 수 있는 지도 서비스가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은 규제가 실제적으로 효력이 없습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세계 어디서나 국내 포털을 통해 아무 제약없이 볼 수 있는 것이 지도 데이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조치는 실제로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글글라스처럼 새로운 기술 서비스를 막는 장애물 역할만 한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6. 안보에 민감한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닐텐데, 해외에선 이미 예전부터 지도 반출이 용인되나 봅니다?


이 문제는 기술에 대한 법의 자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금지된 몇몇을 빼고는 기술적인 시도에 대해 법이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법이 대단히 포괄적인 문구로 광범위한 행동을 제한합니다. 따라서 참신한 기술적인 시도는 대부분 법조항이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7.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도 국내의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도입이 많이 늦어지지 않았나요?


애플 아이폰도 처음에는 국내법 때문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국내 출시 단말기에는 위피를 탑재해야 한다는 법이 첫번째였고요. 두번째는 위치정보를 다루려면 국내 위치사업자로 등록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입니다. 


결국 낡은 법을 바꾸라는 목소리가 높아져 관련법이 개정된 뒤에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문에 2년 남짓 도입이 늦어졌습니다.


8. 구글 글라스, 특정회사에서 나온 특정 제품이고 아직 본격 상용화가 된 것도 아닙니다만... 이런 규정때문에 성장이 어려운 분야나 상품, 또 뭐가 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구글 글라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법규제에 의하면 앞으로 나올 무인 자동차, 시각장애인 안내시스템 등 차세대 혁신적 기술이 모두 한국에서는 제대로 개발할 수 없습니다. 지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각종 콘텐츠 사업과 지리공간사업 등 산업 발전도 힘들게 됩니다. 창조경제라는 새 정부의 정책방향이 무색해지는 상황입니다.



구글글래스


또한 외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국내에서 쓸 수도 없으니 글로벌 사업화도 불가능합니다.  구글 글라스가 상용화된다면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제품을 쓸 때 해당기능이 차단되거나 정상동작이 안되는 상태로 쓰게 됩니다. 네비게이션도 받을 수 없고 건물 인식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구글 글라스, 한국에서 쓰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문제는 아주 단순하다. 한국의 정보기술(IT) 관련법이 너무도 포괄적으로 규제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발전에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다. 따라서 국가안보라는 커다란 목적이 무색하게도 그저 쓸데없고 불합리한 장애물로만 작용하는 것이다. 구글 글라스를 한국에서 쓰지 못하는 이유는 슬프게도 맨 위에서 소개한 대동여지도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기보다는 소극적으로 지키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보를 포기하란 말이냐? 라는 말을 할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 맨 마지막에 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9. 정부가 잘 대처할 거라고 보세요? 조언 한다면?


구글 글라스에 관련된 이런 법을 하나 개정하는 것도 물론 시급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꼭 필요한 규제만을 담는 법으로 바꾸어야합니다. 


예컨대 이번 측량법이 '국토안보에 필요하다고 대통령령에서 규정한 장소의 데이터 해외반출을 금지한다.'라고만 되어 있어도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의 합리적인 조치를 기대하겠습니다.



구글글래스


바로 이것이다. 중요한 군사시설이나 국가 전략시설의 정보가 걱정된다면 그 부분을 법에서 확실히 별도로 지정해서 규제하면 된다. 지금은 그런 시설의 정보만 지키는게 아니라 별 것도 아닌 서울의 맥도널드 햄버거 위치나 압구정 지하철역의 출구 위치 정보 같은 것까지 국가안보 때문에 묶여있는 것이다. 


어서 이런 불합리를 해결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를 향한 법을 만들어 기술에 대응하기 바란다. 그것만이 대동여지도에 얽힌 한심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