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은 일찍이 그의 소설 '1984'에서 인간이 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받는 세계를 그렸다. 그 세계에서는 매일같이 단어의 의미가 통제에 적합하게 변색된다. 텔레비전과 카메라가 통합된 기계에 의해 사람들의 삶은 감시당한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서 단결과 증오를 외치며 그들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의 눈길은 어디에서든 번뜩이고 있다.



빅데이터(출처: 영화 1984)


이런 소설의 내용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 이것은 냉전체제 한쪽의 독재정권을 상징하는 것이라 보았다. 철의 장막을 친 소련이나 죽의 장막이라 불린 중국 같은 곳 말이다. 그래서 이런 세상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기념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굿바이 미스터 오웰'은 매우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지오웰의 이런 예언은 아직 그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빅브라더란 감시의 존재를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아니라 은근하고 지능적인 기업의 탐욕과 첨단기술이라고 바꿔보자. 무엇인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게 없는가? 여기 빅데이터를 둘러싼 뉴스 하나가 있다. (출처)   



빅데이터(사진출처: TV조선)



빅데이터(Big Data)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다. 어디서 카드를 쓰는지, 봤던 책이 무엇인지, 다녀온 여행지는 어딘지 등 이제까지 정리되지 않았던 개인 정보가 착착 정리되고 있다. 최근 한 카드사는 최고경영자와 청담동 며느리의 추천 맛집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거지역과 소득수준, 카드사용액 등을 데이터로 소비자들을 세분화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마케팅 대상이 세분화되는 것만큼 반가운 일은 없다.


문제는 세분화된 정보가 새어나갔을 때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빠져나간 정보가 기껏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인터넷 아이디 정도였다면 앞으로 빠져나갈 정보는 카드 이용내역, 병원 이용내역, 주활동 지역, 가족 현황 등 구체적인 생활이 드러나는 정보가 된다. 좀 더 치명적인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신종호 숭실사이버대학교 정보보안학과 교수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정보에는 직업과 소득, 생활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서 "이런 것들이 유출돼 악용된다면 피해 정도가 현저하게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현재 마구잡이로 정보를 빼가던 해커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 선별해서 콕콕 찍어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빅데이터


특히 계속되는 해킹사태는 이런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 20일 KBS와 MBC를 비롯한 방송사들과 신한은행, 농협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들이 해커들에게 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이 해커들의 공격을 받는 일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다. 


2008년 1800만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옥션 해킹사건에 이어 2011년 SK커뮤니케이션즈 3500만명,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 1322만명 등 수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이미 털려 있는 상태다. 손상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는 "빅데이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정보의 소유권 문제는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최근의 보안사고도 이런 문제의식의 부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인터넷이란 기술을 통해 기업에 제공되었고, 그것이 다시 합법,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악용하려는 세력에 제공되고 있다. 그 사람들은 그런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신상을 알뜰하게 파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기업들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개인 사용자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취향과 소비성향을 제대로 파악한 정보를 얻으려 한다. 그렇게 해서 개인이 무엇을 살까? 고민하기 전에 나타나서 재빨리 자기 회사 제품을 제시함으로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빅데이터


빅데이터인가, 아니면 빅브라더인가?


누군가는 이것은 미래세계의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런 빅데이터를 통해서 돈을 버는 기업에 근무하는 사업가나 기술자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나는 어제 네가 무엇을 사고 무엇을 탔는지 알고 있다.' 라는 공포영화 수준의 데이터 추적을 당하게 된다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그런 끈질긴 추적과 분석의 결과는 정치적 폭압이 아니라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빅데이터란 이름을 한 빅브라더를 다시 맞아들이게 되는 셈이다. 몇몇 기업이 사용자의 모든 행태를 분석해서 중앙서버에서 콘트롤하면서 모든 소비자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그런 데이터 제공에 동의하면서 말이다. 21세기의 빅브라더는 IT기업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


우리의 정보 소유권을 지켜야 한다. 기업의 탐욕은 자발적으로 절제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단호하게 '여기까지는 안돼!' 라고 말해야 한다. 최근 구글 글래스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생활 침해 논란은 이제 기업의 '빅브라더'가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당신이 원하는 것은 빅데이터인가? 아니면 빅브라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