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북 픽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유명한 서양의 명언 가운데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란 말이 있다. 한글로 번역해놓으니 좀 어색한 말이 되었는데 좀더 의역해서 말하자면 아마도 '실현해주면 믿을 수 밖에 없다.' 는 정도가 될 것이다. 어떤 이론이나 구상을 말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당신 의견은 현실성이 없어서 믿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구상한 사람이 그것을 눈앞에 현실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누구라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영어시간에 이 말을 배웠을 때 나는 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번역한 말이 어색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 말에 반대되는 문구를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면 '보인다고 전부 진실은 아니다.' 같은 것 말이다.
IT제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폰4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들고 나왔을 때 강조한 것은 눈이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밀도의 픽셀이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눈은 이런 화면을 종이에 인쇄된 것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시력의 한계이지만 분명 사실이었고 현실로 구현되었다. 이후 뉴 아이패드와 맥북 레티나를 거치며 이런 고밀도 픽셀은 미래를 여는 또하나의 기술로 우리 생활에 자리잡았다.
구글이 생산하고 있는 차세대 노트북 플랫폼인 크롬북에 갑자기 초고해상도를 탑재한 모델이 나왔다. 크롬북 픽셀이라고 명명된 이 노트북 발표를 둘러싸고 의도가 무엇인지 많은 말이 나오고 있다.(출처)
구글이 2월 21일(현지시간) 손가락 터치로도 작동할 수 있고 해상도가 노트북 중 가장 높은 ‘크롬북 픽셀’(사진)을 미국과 영국 구글플레이(온라인 가게)에 내놓았다.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적합한 ‘클라우드 방식의 노트북’으로 가격이 140만원을 넘는다.
이 제품은 인치당 화소수가 종래 최고인 애플 ‘맥북에어 레티나’(227개)보다 많은 239개다.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태블릿처럼 터치 기능을 갖춰 손가락으로 앱을 실행하거나 사진을 편집할 수 있다. 터치패드가 유리로 돼 있어 손가락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안테나 위치도 최적화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 문제점도 개선됐다. 구글은 크롬북 픽셀 구매자에겐 1테라바이트(TB) 저장공간을 제공한다. 4메가(MB) 사진을 25만장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크롬북은 각종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클라우드(서비스 사업자의 서버)에 저장해 놓고 인터넷으로 접속해 이용하는 ‘클라우드 노트북’이다. 크롬북 픽셀은 대만 업체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구글에 공급한다.
철저한 기술기업인 구글이 하는 일이니 아무런 생각이나 계획이 없는 제품은 아니다. 분명 노리는 것이 있는 데 그 의도를 쉽게 읽어내기 어렵기에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크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잊혀져가던 크롬북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벤트이다.
2. 애플의 레티나 맥북 프로에 대항하기 위한 모델이다.
3. 크롬북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런 의견들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모든 의도를 조금씩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이런 의도를 구현하기에 다소 빈약한 하드웨어 스펙과 마케팅으로 인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가격만 해도 140만원을 넘는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다. 대체 크롬북 픽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크롬북 픽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크롬북 픽셀은 우선 초고해상도의 선명한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말에 의해 우리는 애플 말고도 다른 업체에서 충분한 기술력으로 이런 화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런 화면을 터치패널로 조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이런 크롬북 픽셀을 보게 되어서 우리는 무엇을 믿게 되었을까? 엄청난 고해상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크롬북이 추구하는 클라우드 컴퓨터의 쓸모가 없다는 점?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제품은 비쌀 수 밖에 없다는 점? 그것도 아니라면 크롬북 픽셀은 마치 탈옥한 아이패드처럼 다른 운영체제-리눅스나 윈도우를 깔아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점?
어쩐지 크롬북 픽셀은 모터쇼에서 미래형 자동차라고 기술력을 과시하며 내놓은 컨셉카 같은 느낌이다. 분명 실현되었기에 이런 걸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 비싼 가격표를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제품 말이다. 정작 우리는 좋은 구경 했다는 생각 밖에 없다.
크롬북 픽셀의 미래는 오히려 이제부터이다. 어쨌든 제품은 팔기 위해서 나왔다. 우리 눈앞에 발표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 초고해상도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솔루션과 콘텐츠를 보여주어야 한다. 매끈한 글자폰트, 커다란 사진의 빠른 가공, 초고해상도를 지원하는 게임 등 많은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크롬북 픽셀은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레티나 맥북에 대한 또 하나의 경쟁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클라우드 컴퓨팅이 돈 없는 소비자가 할 수 없이 하는 선택이 아니란 점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런 콘텐츠와 솔루션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저 발표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 라는 말을 상기하자. 나는 크롬북 픽셀의 고밀도 화면이 좀더 많은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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