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절대음감이나 절대미각을 가지고 나오는 주인공이 있다. 예를 들어서 귀가 무척이나 민감해서 딱 한번 들은 것만으로 기억한다든가, 그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음감이다. 이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도리어 일상생활이 힘들지 않을까? 지나치게 민감한 귀는 소음이나 불편한 소리를 무시하고 자기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음질을 민감하게 느끼면 조악한 싸구려 스피커나 저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의  낮은 품질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하이파이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들처럼 수천만원짜리 장비로 무장해야 그나마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돈이 워낙 많기 전에는 그런 사람이 되기 무서울 정도다.




나는 아주 다행히도 그런 절대음감이나 절대미각은 고사하고 상당히 둔한 청각과 미각을 가졌다. 아무거나 잘 듣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 아주 찢어지는 소음만 없으면 들을 만한 음질로 느끼고, 정말 맛없지 않으면 그럭저럭 잘 먹는다. 아마도 이런 것이 대부분의 서민에게는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나는 소리를 듣는 장치에 큰 돈을 써본 적이 한번도 없다. 고등학교 때 비교적 비싼 카세트 플레이어를 장만했지만 이어폰은 그냥 만원도 안 되는 싸구려를 썼다. 불만은 없었지만 색다른 세게에 빠져들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어폰이나 스피커 등에 비싼 돈을 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눈에 확 들어오는 좋은 디스플레이나 커다란 텔레비젼을 사는 사람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차이도 나지 않아 보이는 소리를 위해 장비를 바꾸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 몰랐다. 물론 가끔 체험관 등에서 들어보는 닥터 드레 등의 소리는 좋았지만 그 가격을 보면 구입해서 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지 경험하기 나름일 것이다. 사람의 눈과 귀는 낮은 품질에서 높은 품질에 익숙해지기는 쉽다. 하지만 반대로 높은 품질에서 낮은 품질로 내려오기는 어렵다. 요새 스마트폰에서 슬슬 불고 있는 고품질 번들 이어폰 열풍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불어오는 중이다.


아마도 시작은 LG전자 옵티머스G에 딸린 이어폰인 쿼드비트였을 듯 싶다. 종래에 스마트폰에 딸린 이어폰은 회사에 상관없이 그냥 싸구려였다. 그런데 쿼드비트는 몇만원짜리가 십만원이 넘는 고급 이어폰의 음질을 내준다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어서 아이폰5가 이어팟을 번들로 내놓았다. 삼성도 조만간 번들 이어폰의 음질을 확 끌어올린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우연히 아이워크(iwalk)의 이어폰인 아무르(Amour)를 체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아이워크란 회사는 그동안 주로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외장 배터리를 취급해왔다. 이전에 한번 그런 외장배터리를 리뷰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어폰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브랜드만 보고는 이 제품에 대해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제품의 선전문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고음의 명료도, 풍부한 대역폭 - 차원이 다른 최상의 음질!


뭔가 상투적 문장 같아서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 외관으로 봤을 때 다소 크기가 크면서도 정갈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엄청난 음질이 뿜어나올 것 같은 포스(?)는 없었다.




포장은 상당히 예쁜 편이었다. 이어폰이라기보다는 선물이나 예물 같은 포장인데 나름 고급제품으로서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또한 기본적으로 칼국수줄이라고 부르는 넓적한 줄이어서 꼬임이 잘 발생하지 않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거기다가 휴대를 위한 파우치도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다. 브랜드만 보고 다소 실망하던 나도 이런 패키지 내용물을 보고는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 그래. 어차피 이어폰은 다 필요없고 음질이다. 소리만 훌륭하게 내준다면 그게 굳이 젠하이저나 닥터드레 같은 브랜드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마침 비교할 만한 대상이 있었다. 아이폰5와 함께 쓰고 있는 이어폰인 이어팟이다. 나름 애플에서 만든 물건 답게 디자인도 뛰어나면서 좋은 음질을 내준다. 이제까지 이어팟으로 아이폰5로 많이 들어온 음악을 아무르 이어폰으로 들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이 제품-아이워크 아무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오면 음악이 아니었다. 명확히 살아있는 드럼의 저음이 느껴지고, 중간 영역에서도 음성과 악기 소리가 분리되어 또렷하게 들렸다. 고음에 있어서는 더 맑은 느낌이 풍겼다.


이것이었다. 이제까지 고급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 귀가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였다. 더구나 늘 듣던 평범한 음악에서 느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바로 이런 느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가의 이어폰을 기꺼이 사는 것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조금 자세히 말해보자. 아이폰에 딸린 이어팟은 상당히 표준적인 음색을 내준다. 저음이 둥둥 하고 울리는 느낌도 적고, 고음이 휘어감기듯 감칠맛을 내주지도 않는다. 오래 들어도 크게 귀가 피곤하지 않을 무난한 음이 나온다. 거기다 이어팟은 결국 삼만원 정도 하는 저가 이어폰이다.



그에비해 이 제품은 압도적으로 풍부한 음색부터가 다르다. 마치 음장효과를 켜놓은 듯 박력 넘치는 소리가 나온다. 단순히 저음만 강조해서 그런 소리를 만들면 고음이 약해지거나 뭉개지지만 그것도 아니다. 고음은 더 맑게 귀에 감겨든다. 중음에서는 악기와 음성이 뚜렷이 구별된다. 




이 제품이 쿼드비트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있는데 쿼드비트를 체험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사실 같다. 이런 박력과 소리의 분해능력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따로 음장효과를 켜지 않은 기기를 통해서 말이다.


나 정도의 둔감한 귀로도 차이를 이렇게 금방 느낄 수 있다는 건 대부분의 소비자가 차이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맥북에어를 비롯해서 여러 기기를 통해서 소리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로 매력이 있는 이어폰이었다. 



아직 이 제품은 국내 시판이 되지 않는 듯 하다. 아이워크사의 영문 홈페이지에 이 제품은 79달러의 가격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쨌든 비싸지 않은 제품임에도 내주는 음질은 흘륭하다. 


현재 쿠팡에서 정식판매를 개시했는데 3만 8천원의 가격이라고 한다.

 



클래스를 뛰어넘는다는 말이 있다. 소형차인데 중형차의 승차감을 낸다든가, 경차가 소형차의 출력을 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워크의 이어폰 아무르는 저렴한 가격대 제품으로서 몇십만원의 고급 이어폰 정도 음질을 내준다. 가격과 성능 두가지를 전부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