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평론가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대한 해설? 제품이나 업체의 움직임에 대한 짧은 예상? 아니면 머나먼 미래의 IT기술에 대한 예상? 이런 것들만 충실히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IT에 관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 이것이 보다 긍정적이고 높은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근래에 들어서 IT분야는 뚜렷한 이중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발표되고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열광한다. 사람들은 편리한 IT기술을 쓸 때마다 미래가 우리를 보다 희망적으로 만들 거란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 사람들은 한쪽에서 IT기술이 낳은 부작용을 너무도 확대해석한다.

게임에 대한 편견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청소년 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체들은 그 원인을 하필이면 게임에서 찾는다. 왕따를 시키고 누군가를 때리며 돈을 빼앗는 사건의 배후에는 생각없이 칼질을 해서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면 사이버머니가 들어오는 게임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뜻이다. 

웃기는 일이다. 그런 식이라면 컴퓨터 게임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의 범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폭영화와 드라마가 지나치게 조폭을 미화시키기에 조폭이 되었다는 보도는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괴도루팡을 읽고 감명받아서 도둑이 되었다든가, 로빈훗 이야기에 빠져서 강도짓을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없을 리가 없겠지만 누구도 그 원인을 책이나 소설에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소설과 책을 금지하면 읽을 수 있는 게 무엇이 남을까?



다큐멘터리 '볼링포 콜롬바인' 에서 마이클 무어는 말했다.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범행 얼마전에 볼링을 즐겼다. 그렇다면 총기난사의 원인은 볼링탓이냐? 라고 말이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을 가져다 붙이기 때문에 그렇다.

얼마전 한국에서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뭐 두 말 할 것도 없이 철저한 수사와 정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보도하는 매체들이 아동포르노의 문제점을 짚는 것까지는 좋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포르노 그 자체를 다루는 시선이 매우 걱정스럽다. 예컨대 이런 식의 보도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출처)

오늘은 어디에서 또 무슨 끔찍한 사건이 터질까 뉴스를 접하기가 두렵다. 곳곳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성폭행과 살인사건에 모두 진저리를 친다. 이같은 세기말적 사회현상을 놓고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성욕과다(very sexualized)’열병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성인 사이트는 미국에서부터 호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 사이트가 많다. 한국어 포르노 사이트가 세계 2위인 셈이다. 언어가 아니라 국가별로 치자면 한국이 세계 1위라고 해도 할말이 없다. 인터넷 포르노의 번창은 막대한 외화 유출 뿐만 아니라 성(性)문화의 타락을 재촉해왔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는 물론 노소를 가리지 않고 각종 포르노 동영상에 매몰되고 있다. 


아동 포르노를 제외한 성인 포르노는 비록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합법의 경계에 들어가는 영상물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범죄와 이런 콘텐츠를 연관시켜서 보도하고 있다.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이 포르노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으니 이번 기회에 포르노를 없애야 한다는 식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셧다운제의 진짜 목적은 자녀들에게 공부를 더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증오에 있다. 게임을 아예 없애버렸으면이라는 목적이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게임을 원흉으로 삼아버린다. 게임셧다운제를 해서 남는 시간에 자녀들을 잠 한 시간이라도 더 재우거나 건전한 운동을 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절대로 아니다.

컨텐츠와 범죄에 얽힌 불편한 진실은?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한다. 성범죄를 포함한 모든 범죄의 근원에 해당  컨텐츠가 있다는 이런 주장은 틀렸다.  그런 식이라면 성에 엄청나게 관대한 일본이나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구의 관련범죄는 엄청나게 높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대로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회교국가는 범죄가 거의 없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범죄를 발생시키고 흉폭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인간성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만일 모든 사람이 우려하는 것처럼 게임에 빠지고 왕따를 시키며 아동포르노가 유통되고 성폭행이 빈발한다면 이런 요소들은 서로 연관관계를 가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단 하나의 연관을 가진다. - 바로 한국 사회 자체가 돈만 알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보자.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지는 건 그것을 대신해줄 만한 따스한 인간관계를 사회가 가져다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따가 만연하는 건 성인 사회가 이미 그런 약육강식과 몰인정한 풍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동포르노가 유통되고 성폭행이 만연한다면 그건 사회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게을리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진실은 숨기고 눈에 보이는 컨텐츠를 공격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컨텐츠는 원인이 아니다. 컨텐츠는 결과이다. 천사들이 몰려사는 사회에서는 천사에 맞는 컨텐츠가 나올 것이고 악마들이 몰려산다면 악마에 맞는 컨텐츠가 나올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나쁜 컨텐츠를 공격하면서 정작 그 컨텐츠를 낳은 한국 사회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안타까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