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의 세상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건 비즈니스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사를 둘러보면 외교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 아무리 한때 격렬히 증오하고 싸웠던 상대라도 지금 내가 다급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대라면 태연히 또 손을 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위기를 넘긴 후에는 다시 적이 될지, 아니면 아군으로 남게 될 지는 모른다.


애플을 중심으로 놓고 보았을 때 적과 아군은 상당히 자주 바뀌는 편이다. 그것은 애플이 IT의 역사를 여는 선구자였다는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다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제품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애플이 그나마 동맹이라고 칭할 수 있는 글로벌 회사가 있을 지를 꼽아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얼마전까지는 구글이었지만 이제 구글은 최대의 적이나 다름없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번 삼성-애플의 평결 이후 미국에서 애플을 둘러싼 IT업계에 대해 전망을 내놓았다. (출처)



“삼성은 크게 한 방 맞았고 애플은 만세를 부르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뒤에서 웃고 있다.”

 삼성과 애플 간 ‘세기의 재판’에 대한 미국 배심원 평결이 나온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간)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슬래시기어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온라인 IT 매체 시넷은 아예 “(삼성전자가 아니라) 구글이 가장 큰 패배자”라며 “IT업계의 아마겟돈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모바일 영토전쟁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구글과 애플은 앙숙이지만 MS는 애플과 상호 특허사용 계약(크로스 라이선스)을 체결하는 등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대표주자인 삼성은 MS 윈도폰에서도 우등생이다. 제조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MS의 딜레마가 있다. 당장은 구글이라는 ‘공동의 적’ 때문에 애플과 손을 잡고 있지만, 이후 윈도폰의 성공을 놓고 애플과 경쟁하는 상황이 온다면 삼성만큼 좋은 협력 대상은 없다. 업계에서 “세 진영의 싸움이 어떤 형태로 전개돼도 삼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서 거론된 삼성,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각각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른 업체다. 삼성은 기본적으로  부품제조의 우위를 이용한 완제품 하드웨어 판매 업체다. 애플은 운영체제와 디자인의 우위를 이용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유통업체이다. 구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색서비스를 기반으로 해서 광고와 각종 서비스에서 이익을 내는 서비스 업체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이용해서 각종 플랫폼을 만들어 파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이런 회사들이 서로 이익이 얽힐 일은 사실 별로 없었지만 최대의 격전지인 스마트폰 시장을 둘러싸고 그만 그 이익이 완전히 충돌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리더쉽 스마트폰을 앞세운 애플이 전략적 선택을 통해 격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MS 를 넘나드는 애플의 선택은?

현재 기묘하게도 애플은 MS와 동맹을 맺고 있다. 작년에 상호 기술에 대한 크로스라이센스를 체결했다. 한때 맥 OS와 윈도우를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인데다가 공개적으로 MS를 카피캣이라며 비난하던 애플이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 이라는 신흥 카피캣이 등장하고 구글 카피캣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삼성이란 존재가 떠오르자 자기편을 만들 필요를 느낀 모양이다.

기업 구조상 스마트폰이란 시장만 아니라면 애플은 삼성과 싸울 필요도 없고, 싸워서도 안된다. 삼성의 최대강점은 하드웨어와 생산력에 강한 업체란 점이다. 애플이든 구글이든 MS든 하드웨어 기술력이나 공업 생산력은 거의 없다. 따라서 누가 승자가 되었든 삼성을 필요로 한다. 대만이나 중국 레벨에서는 따라오기 어려운 품질에 대한 능력을 가진게 삼성이며, 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현재 기울어지는 중이다.

아이폰 전문 업체처럼 기업수익구조가 바뀐 애플로서는 아이폰 수익을 갉아먹는 어떤 업체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삼성을 적으로 삼고 MS를 동지로 돌렸다. 갤럭시S 시리즈는 현재 아이폰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안드로이드폰의 선두주자이다. 반면 MS의 윈도폰은 미미한 점유율로서 거의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다. 



그러나 만일 미국에서의 이번 평결로 향후 MS의 윈도폰이 아이폰의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치자. 그래봤자 아마도 그 윈도폰을 제조해서 잘 판매하는 회사는 역시 삼성이 될 확률이 높다. 어떤 운영체제든 안정되고 인기만 얻으면 하드웨어 우위로 마케팅 성공을 거두는 건 삼성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도 과연 애플이 계속 MS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결국 애플의 선택은 '궁극적으로는 나만 빼고 모두 적' 이다. 내 예상으로는 윈도폰이 의미있는 경쟁자가 되면 애플은 MS와의 동맹을 깨고 다시 공격에 나설 것이며 그 무기는 역시 특허가 될 것이다. 다시 애플과 삼성, MS가 법정에서 싸우는 모습을 우리가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제 법정에서 스마트폰을 두고 싸우는 모습은 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애플이 좋은 제품으로서 싸워주길 바란다.